[최보식이 만난 사람] "검찰이 법원을 수사… 法治 무너뜨린 최종 책임은 김명수 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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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4.29. 오후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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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우 前 대한변협 회장


하창우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전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 25일 '법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을 받지 못했다. 대한변협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후보 1순위로 그를 법무부에 추천했으나 또 배제된 것이다.

"2016년 2월 야당이 '테러방지법'에 반대해 192시간 '필리버스터(국회 의사 진행 방해)'를 했던 걸 기억합니까. 제가 대한변협 명의로 찬성의견서를 국회에 보낸 것 때문이지요. 그걸로 찍힌 것이지요."

전직 변협 회장에게 훈장을 주는 것은 관례였다. 그는 서울변협과 대한변협 회장으로 일하면서 '법관평가제''검사평가제'를 도입했고, 전관(前官) 비리를 막기 위해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그게 훈장 받을 자격은 꼭 아니겠지만,"공적 심사 기준을 더 엄격 적용해 관행적으로 나눠 먹는 식의 서훈을 지양했다"는 법무부의 설명은 치졸해 보였다.

하창우 전 변협 회장은 “청문보고서 채택 안 된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은 그 전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작년에는 3순위 후보로 추천된 민변 회장 출신 이석태 전 세월호특조위 위원장이 훈장을 받았지요?

"대한변협은 처음에는 이석태씨를 추천하지 않았어요. 법무부에서 거꾸로 요청이 와 3순위로 올렸다는데, 1순위였던 저는 탈락시키고 그에게 훈장을 줬지요. 5개월 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됐습니다."

본인의 훈장 탈락 이유가 '테러방지법'에 대한 찬성의견서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제가 찬성의견서를 보낸 뒤 당시 민변을 주축으로 진보 성향 변호사들이 강하게 반발했어요. 1000명가량이 항의 서명을 했어요. 훈포장을 담당하는 법무부 인권국장(개방직)이 민변 출신인데 그 항의서에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잘릴 수밖에 없는 거죠. 이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어요."

대한변협의 찬성의견서가 제출되고 며칠 뒤 테러방지법이 통과됐지요. 하지만 회원들의 의견 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의견서를 냈다고 시끄러웠는데.

"대한변협은 매년 1000건에 달하는 국회 법안에 대해 검토 의견을 냅니다. 정식 절차를 밟으려면 시간이 너무 걸려 통상 법제이사 등과 상의해 의견서를 냅니다. 테러방지법에 반대한 민변 등에서 이를 문제 삼아 압박했지요. 결국 제가 사과했습니다만…"

테러방지법이 국민에 대한 무차별 도·감청 등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며 반대했지요?

"반대하는 쪽에서 법안을 제대로 읽어 봤는지 모르겠어요. 이 법은 기존의 통신비밀보호법을 원용해 만들어졌습니다. 도·감청을 제한하는 안전장치가 다 있었어요. 국정원과 관계되니 반감이 있었던 거죠. 정권이 바뀌니까 재미있는 게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테러방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국민 보호에 기여하는 꼭 필요한 법이다. 이 법뿐만 아니라 사이버테러방지법도 제정해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렇게 반대하던 민주당이나 민변 쪽에서 아무 말이 없었어요."

민주당이 다수 여당이 됐으니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작년 11월 난민으로 가장해 들어와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상을 퍼뜨리던 시리아인이 처음으로 이 법의 적용을 받았지요… 사실 제 훈장 문제는 별거 아니고, 요즘 법조계가 다 망가졌어요. 서로 견제를 해야 할 사법부와 법무부, 검찰이 한패처럼 됐어요. 무엇보다 사법부 붕괴가 걱정스럽습니다."

어떤 계기로 사법부의 붕괴를 느끼게 됐습니까?

"사법 적폐 청산을 한다며 판사 100여명을 검찰에 불러 조사했다는 보도를 보고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형사사건에 한해 검찰은 피고인과 다투는 위치로 법대(法臺) 밑에 있습니다. 그런 구조인데 검찰이 법원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어요. 이는 법치 체제를 무너뜨린 겁니다."

판사가 법대에 앉는다고 해서 성역은 아니지 않습니까?

"판사의 개인 비리 문제라면 수사를 받아야 합니다. 법 위반을 했으면 처벌받아야지요. 하지만 지금은 사법부의 운영과 관행이 법에 어긋난다고 수사하니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법원행정처에서 재판 진행 상황을 물어오면 어느 판사가 답변을 안 합니까. 이를 직무상 비밀 누설을 했다고 합니다.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한 성창호 판사에 대한 수사가 그런 경우입니다."

지금 사법부의 위기는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上告) 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한 의혹이 불거져 '과연 사법부를 믿을 수 있느냐'는 근본적 문제가 제기된 것이지요.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같은 것을 말하는데, 이는 판결 내용을 거래한 게 아니라 절차적으로 재판 선고를 연기하도록 한 겁니다. 법정 안에서 판결 거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재판의 결론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일제 강제징용 건은 피해자가 패소한 하급심 판결을 2012년 대법원에서 파기해 환송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올라오자 대법원에서 5년이나 묵혔습니다. 제가 변협회장 시절 '피해자가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빨리 판결해주라'는 성명을 낸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재판 연기 이유에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가 있었던 거죠."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상의한 사실만으로 사법부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 아닌가요?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에 올인하면서 행정권 남용 등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당시 상고법원에 반대했던 저에 대해 '수임 사건을 조사해 국세청에 통보하라'는 등의 압박 방안 문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 거래'를 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현 정권이 그런 식으로 몰아가 국민에게 사법부 불신을 조장한 게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다수 판사에 대한 검찰 조사와 기소로 이어진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키운 최종 책임은 대법원장에게 있습니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을 말합니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말합니까?

"김명수 대법원장이지요.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법관과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는 게 우선입니다. 외부 압력으로부터 방파제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 적폐 청산을 하라'고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잘못됐습니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다'는 현 정권에서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대법원장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몇 단계 뛰어넘어 대법원장에 임명될 때부터 이미 정권의 임무가 주어진 게 아닐까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어도 대법원장 자리는 사법부의 수장입니다.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 적폐를 청산하라'고 말하면 '그건 행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3권분립을 침해한다. 사법부가 자체 감찰 기능으로 하면 된다'고 했어야지요.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과거 법원에 문제가 많았다'며 검찰에 자료를 넘겨주고 수사하도록 만들었어요.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자초한 겁니다."

대법원장이 약체여서 그런지, 요즘 사법부는 청와대와 여당 등 정치권력에 거의 예속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 동기입니다. 조용한 성품이나 강한 면도 있습니다. 사법권 불신의 최종 책임은 결국 대법원장에게 있으니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합니다."

사법부 불신에는 판사 개개인의 책임도 있습니다. 과연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인지 판사의 직업윤리에 대해 국민은 의문을 표시하고 있지요.

"사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일반 법관들은 자기 본업을 잘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깥에서 사법부 전체를 그렇게 보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어떤 판사는 '재판이 곧 정치다'라고 떠듭니다. '코드 이념 재판'이라는 말도 나오지요. 판결이 법리와 증거가 아닌 판사의 성향으로 이뤄진다고 보는 겁니다.

"어떤 재판에도 판결의 공정성 시비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법부 전체가 공정한가, 어떤 이념에 편향돼 있지 않은가 하는 불신에 직면해 있어요. 이를 벗어나려면 그런 성향을 드러내거나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가입한 적 있는 판사들이 정치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념 편향이 가장 심각한 기관은 헌법재판소일 겁니다. 문 대통령은 논란이 된 이미선 후보를 전자 결재로 임명해버리더군요.

"임명은 대통령 권한이겠지만, 헌법과 법률의 정신에서 보면 안 맞습니다. 장관 후보자의 경우 청문보고서가 채택이 안 돼도 임명을 해왔지만 헌법재판관의 경우에는 임명한 적이 없었습니다. 헌법에 관한 최고 재판관인데 자격이 되는 사람을 임명해야 국민이 그 판결에 수긍할 수 있지 않습니까."

가결 정족수인 헌법재판관 6명이 정권과 같은 코드로 채워졌습니다. 이제 정권의 뜻에 맞춰 위헌(違憲) 결정으로 쟁점 법안을 폐기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반발해 자유한국당이 장외(場外)로 뛰쳐나갔는데, 사흘 지나 선거제와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논란이 터져 잊혔습니다. 변협 회장 시절 '공수처 설치'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지요?

"정권 편에 서는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왔지만 공수처는 아프리카 몇 나라를 빼면 세계에서 없는 기구입니다. 검찰도 그렇지만 공수처장의 최종 임명권자도 대통령입니다. 공수처가 기대만큼 정치적 중립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당초 공수처법의 대상에는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의원, 국무총리, 행정기관의 정무직 공무원, 대통령 비서실의 3급 이상, 대통령 가족 및 친·인척 등이 포함됐지만 슬금슬금 다 빠졌지요. 지금은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게만 해당됩니다.

"청와대가 사법부·검찰·경찰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공수처를 쓸 수도 있겠지요.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왜 이런 법을 내놓고 난장판을 만드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최보식 선임기자 cong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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