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잊고 가자'는 자들이야말로 세월호 침몰의 책임자다

배영학교 운동장이었을 땐 넓디 너른 마당이었는데 어째 손바닥만 해졌는가. 머시마들이 돌멩이 두 개 벌여놓은 것으로 골대 삼아 축구팀 두 개가 섞여 씨근덕거리며 후차댕기던 마당이다. 한쪽에선 딸아이들이 마주든 고무줄을 무릎께에서 어깨까지 오르내리며 ‘사까다찌’를 하던 광경이 아직도 선연하다. 담장 가 플라타너스 그늘엔 철봉대 나란히 섰고 분꽃, 다알리아, 채송화 심어진 화단 명색이 포실했다. 그러고도 여백이 많은 마당이었다. 하마 소년의 시절엔 그 모든 것이 그리도 컸던가. 우체국 옆에 소방서 다음엔 경찰서 그리고 교회를 지나며 만화방과 탁구장을 끼고 배영학교와 중안학교가 일렬로 나란히 섰던 곳, 그중 빨간 벽돌에 담쟁이가 타고 오르던 배영학교 교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들어선 교육청이 번듯하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그 공골 마당에 땅거미가 지니 바람깨나 스산하다. ‘세진모’가 새겨진 노란 앞치마를 두른 낯익은 얼굴들이 사람들 틈으로 가만히 눈 맞추고 지나며 촛불을 나눈다. 배가 바다에 빠지고 생때같은 아이들이 아직 올라오지도 못한 채 맞은 1주기 즈음부터 ‘차 없는 거리’에서 집회를 시작한 세진모(세월호 진실찾기 진주시민모임)가 마련한 5주기 추모 모임이다.

늘어선 점방에서 호객을 노리고 경쟁적으로 틀어대는 굉음의 틈바구니서 치르던 일상적 집회완 다르게 주말 저녁 통행 한산한 관공서 마당에 사람이 모여든다.

백 명이나 될까. 아님 200명? 시민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고른 화음이 시작을 열고 각계각층의 시민 발언이 이어지고 수곡초등 감자반 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짓는 분방한 동작에 박수가 쏟아진다. 차츰 불어나는 사람들을 보며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시민 된 자의 각성과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사람을 조직하고 집회를 끌어온 사람들. 돈을 내고 양초를 사고 품을 들여 천막을 치고 그리고 생면부지인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여 주말 저녁에 동내 가운데의 빈터에 둘러앉은 사람들.

“아직도 세월호냐.” “돈을 10억이나 받았다매.” 한쪽 구석에선 어김없이 들려오는 저 소리. 참으로 들어내기 힘든 잔인한 말이다. 아예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거나 공감력 제로 상태의 냉혈한이라면 모르되 어찌 저런 생각이 머리에 고일까. 더구나 제 자식 거두는 사람이 차마 저런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나 자식을 돈으로 환산해 바꿀 에미 에비가 있을까. 그러나 “거지, 노숙자, 시체장사, 돈벼락을 맞았다. 없는 집구석에 자식이 효도하고 갔다.”라는 능멸과 모욕은 끊이지 않았다.

“집에 앉아 있을 수만 없어 무작정 왔다는 자원 활동가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울면서 무슨 일이든 했다. 피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며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슬픔과 분노 무력감을 호소하면서도 유가족들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말이다. 그녀 또한 “자격증의 성체 안으로 찾아온 환자에게 확고한 주도권을 쥔 전문가”의 근엄함을 내려놓고 참혹한 트라우마의 현장으로 달려간 활동가다. 세진모를 비롯한 그들의 진정은 아이 잃은 슬픔을 조롱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자들에 의해 영혼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고통을 느끼는 유족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결정적 위로를 한 치유자다.

5년이다. 벌써 그리되었다. 엊그제 TV에 나온 어떤 아이가 초등 6년에 세월호 침몰을 봤는데 지금 그 형들 나이가 되었다고. 우리에겐 쏜살같이 날아간 시간이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났는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로 이어졌는가에 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어이없이 ‘조사만 5년째’다. 박근혜 시절, 갖은 곡절 끝에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으나 조사는커녕 노골적인 훼방만 받고 시한을 넘겨 2차 특조위가 꾸려졌지만 수사 권한이 없는 빈껍데기니 결과를 얻긴 어렵다.

정치인, 공무원, 전문가, 언론인의 이름으로 “잊고 미래로 가자”라 말하는 자들이야말로 세월호 침몰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며 자신의 이익에 손상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자들이다. 그자들에 의해 덮고 조작한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사악한 자들에 의해 우롱당하는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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