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읽다] (13) 대전광역시 - 승강장 가락국수의 추억 어린 ‘만남의 장’…사람 향기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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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동서남북을 실핏줄처럼 촘촘히 연결하는 대전역은 하루 13만명이 오가는 만남의 공간이다. 과거 승강장 매점에서 황급히 가락국수 한 그릇을 먹던 재미는 사라졌지만 대전역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0시50분~” 대전 하면, 구슬프고 애잔한 ‘대전 블루스’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이 고요하게 잠들어도 기적소리 울리며 밤새워 달려야 했던 목포행 완행열차. 완행열차는 이제 없지만 대전을 찾는 발걸음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 9월 현재 하루 대전역을 오가는 유동 인구는 12만9000여명. 무궁화와 새마을호, KTX와 SRT까지 228대의 열차가 동서남북을 실핏줄처럼 오가고 있다. 전국을 그물망처럼 촘촘히 연결하는 만남의 도시가 바로 대전이다.

■ 만남의 도시 대전

“옛날 대전역 승강장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해치우던 시절이 그립다고들 합니다. 기차가 방향을 바꾸는 10분 동안 열차에서 황급히 뛰어내려 퉁퉁 불은 국수를 한입에 넣던 짜릿함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해요. 가락국수를 파는 매점도, 기차에서 잠깐 내리는 승객도 없지만 대전은 여전히 사람 향기 가득한 도시입니다.” 양승렬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사는 “한(큰)밭, 대전(大田)은 사람과 사람, 서울과 지방,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만남이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대전이 만남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들어서면서부터다. 1914년 경부선 대전역이 호남선과 만나면서 역 주변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넘쳐났다. 고기와 생선, 건어물과 야채 등 전국을 오가는 싱싱한 먹거리들이 대전을 거쳤다. 서울의 경동시장처럼 한의원과 한약재 특화골목도 생겨났다. 해방 직후 12만명이던 대전 인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100만명 이상으로 10배가량 늘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애타게 찾는 종이들이 ‘대전의 큰다리(목척교)’를 가득 메웠다.

대전역에서 나와 목척교가 있다는 중앙시장을 찾았다. 강원도와 충청도를 통틀어 중부권에서 가장 큰 장터이자 ‘만물백화점’이다. 여기저기 골목골목을 걷다가 시선이 멈춘 것은 흥미로운 간판들이었다. 음악, 마임, 연극, 화가, 공예가, 국악이라고 쓰인 창작실이 대흥동 일대에만 100개가 넘었다.

“드로잉 콘서트라고 들어보셨나요. 시를 노래로 만들고, 노래를 시로 그리는 컬래버레이션(협업)이지요. 최근에는 대전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원도심 예술인행동’이라는 협의체를 만들었습니다. 딱딱한 갤러리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감성으로 만나는 예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창작공간 ‘주차장’을 운영 중인 시인 박석신씨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실시간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예술도 시공간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경계와 벽을 허무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대전이 앞장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내친김에 대전 출신 세계적인 작가 이응노 화백(1904~1989)의 미술관을 찾았다. 대전 음악당과 공연장이 모여 있는 한밭공원으로 들어서는데 건축물이 인상적이었다. 이 화백의 미술관은 열린 공간이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대나무가 훤히 보이는 전시관이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 교육의 도시 대전

조선시대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지리>에서 “갑천, 대전 일대는 영원히 대를 이어서 살 만한 지역”이라고 적었다. 태조 이성계는 대전을 한양과 함께 도읍 후보지로 검토했다. 대전은 풍수지리학적으로도 명당이었다.

대전역에서 차로 1시간쯤 달려서 만난 뿌리공원의 족보박물관은 기대 이상이었다. 어르신들이나 찾겠지 했지만 젊은이들이 여럿 보였다. 10대 성씨 도표를 보면, 2015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5285개의 성이 있는데 김씨가 20.66%로 가장 많고 이씨(14.12%), 박씨(8.10%), 최씨(4.51%), 정씨(4.16%) 순이었다.

우암 송시열이 후학을 지도했던 남간정.


인구 150만명의 대전은 광역시 중에서 녹지비율이 가장 높다.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고 하니 교육에 힘쓰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을까. 대전이 교육도시로 명성이 자자한 것은 카이스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주진 대전시 문화해설사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지도하던 곳이 바로 대전 옛도심이라는 것이다. 대전역에서 3㎞ 정도 떨어진 ‘우암 송시열 사적공원’으로 향했다. 시내버스 311번이 다니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가다 골목을 끼고 5분 정도 오르자 고즈넉한 한옥이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 효종의 북벌정책 추진에 앞장섰던 송시열은 숙종 9년(1683) 이곳에 직접 남간정(대전시 유형문화재 4호)을 지었고 유림과 제자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했다. 남간정은 소박했고 이끼가 가득한 연못은 고요했다. 오래 묵은 느티나무와 왕버들나무가 내주는 그늘에 서니 기국정이 눈에 들어왔다. 기국정은 원래 대전 옛도심 동구 소제동에 있던 송시열의 별당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대전역 뒤편 소제동에 2만5000평에 달하는 맑은 호수가 있었습니다. 우암이 기국정을 지을 만큼 자연풍광이 뛰어났죠. 1927년 일본이 호수를 강제 매립한 뒤 철도관사를 세우면서 안타깝게도 근대식민지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안여종 대전여행협동조합 대표와 소제동을 사진 한 장에 담기 위해 ‘전통 다래원’ 옥상에 올랐다. 목욕탕, 이발소, 이용원, 교복센터, 슈퍼…. 허름한 일본식 다다미집들이 바둑판처럼 빼곡한 낡은 동네였다. 까맣고 날렵한 일본식 지붕들이 초고층 철도공사 쌍둥이빌딩과 대조를 이뤄 도드라져 보였다. 옛집을 허물지 않고 도시재생사업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대전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도시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두루두루’ 즐기고 ‘칼국수’로 마무리

빵덕들의 성지 대전역에 들어선 유명 빵집 성심당.


대전은 매년 4월 칼국수 축제를 열 정도로 칼국수집이 가장 많다. 오징어와 두부를 매콤하게 요리하는 두루치기도 유명하다.

‘대전칼국수’(042-471-0317)는 칼국수와 어울리는 수육, 두루치기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수육을 매콤달콤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칼국수 6000원, 수육 2만5000원, 두루치기 1만5000원.

‘오씨칼국수’(042-627-9972)는 대전 토박이들이 자주 찾는 맛집. 물총조개와 파전도 일품이다. 번호표를 받고도 30여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 대전 옛도심 삼성동에 있다. 손칼국수 5500원, 물총조개 9000원.

‘진로집’(042-226-0914)은 원조 두루치기집. 담백한 두부와 오징어에 매콤한 양념을 얹어낸 두루치기를 매운맛 또는 부드러운 맛으로 즐길 수 있다. 두부두루치기 1만원.

‘숯골원냉면’(042-861-3287)은 4대째 이어오는 평양식 냉면 전문점. 닭고기로 우려낸 진한 육수에 순메밀로 만든 면발을 말아내는데 일반 냉면집과는 다르다. 토종닭을 부드럽게 삶은 백숙을 냉면과 많이 찾는다. 냉면 8000원, 왕만두 6000원, 백숙 3만5000원.

‘사리원면옥’(042-256-6506)은 오랜 전통을 가진 대전음식점 등록 1호점. 냉면도 맛있지만 수육을 볶음김치와 버무려내는 김치비빔이 대표 메뉴다. 냉면 8000원, 김치비빔 1만5000원, 고기만두 7000원.

‘옛곰국시’(042-862-2096)는 칼국수와 어울리는 전골 수육이 인기. 전통방식으로 고깃국물을 우려내 야채를 넣어 끓여먹는다. 서리태콩으로 만든 콩국수도 유명하다. 전골칼국수 7000원, 서리태콩국수 8000원.

‘솔밭묵집’(042-935-5686)은 김치와 함께 육수에 말아먹는 채묵이 잘나간다. 최근 묵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 북대전IC 근처 관평동에 있다. 채묵 7000원, 닭백숙 3만6000원.

‘정식당’(042-257-5055)은 서대전역 인근 닭볶음탕 전문점. 매콤달콤한 국물에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닭고기 식감이 오래 남는다. 닭고기를 다 먹고 나면 밥을 볶아주는데 볶음탕만큼 인기가 있다. 닭볶음탕 2만3000원.


<대전 |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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