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진칼럼] 김혜자의 그 대사, 꼭 한번 다시 듣고 싶었습니다
배우 김혜자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 55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양문숙 기자
[서울경제]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단 한 장면을 위해 달렸던 12부였다. JTBC ‘눈이 부시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사 한 줄에 모두 담겨있었다. 오늘의 삶, 하루의 가치, 산다는건 행복한 일이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무방비 상태로 TV 앞에 앉아있던 시청자들은 그저 울기만 할 뿐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완벽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어려웠으며 안될 기획이었다. 어느 제작사와 방송사가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12부작 드라마로 편성할까. 병원에서도, 법정에서도, 수사하다가도, 독립운동 하다가도 연애해야만 하는 제작시스템에서 ‘시간 이탈 로맨스’라는 홍보문구는 눈속임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말이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이렇게 후려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김혜자(한지민/김혜자)와 이준하(남주혁)의 로맨스는 판타지였다. 시공간을 초월한 주인공과 멋진 남자의 사랑.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면 ‘미녀와 야수’에서 그랬듯 혜자는 다시 제 모습을 찾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갈수록 이야기는 요상해져갔다. 혜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 이따금 어색해하는 오빠와 엄마. 그리고 세상 물정과는 담 쌓은듯한 친구들. 여기에 준하를 구하기 위한 노(老)벤져스의 활약까지 등장했을 때 도무지 이 작품의 장르가 무엇인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너무 갔구나’ 싶었다.
맹점이었다. 보고 있되 보지 못했던 보통의 시각. 10화 마지막에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라고 혜자가 말하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 했다. 단 한마디로 모든 상황과 시각이 뒤바뀌는 반전은 그 어떤 추리극의 결말보다도 가슴을 강하게 때렸다. 그리고 작품은 남은 2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모조리 다 쏟아냈다.
주인공 이름이 김혜자였기에 보는 이들은 김혜자를 김혜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갑자기 할머니가 된 혜자, 준하에게 애정을 쏟는 혜자, 그를 구해내려는 혜자, 모든 것을 잊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은 혜자. 이 모두 대배우 김혜자였기에, 그가 진심으로 역할을 받아들이고 표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JTBC ‘눈이 부시게’ 마지막회
그래서 더 따뜻했다. 젊은 시절 요절한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 아들이 넘어질까 눈만 오면 골목을 쓸던 빗자루질. 모두 누가 알아주지 않는 자신만의 삶 일부였으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모든 기억을 잊어도 그것만큼은 잊지 못하는.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난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다. 온 동네가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하고, 그때 아장아장 걷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 그럼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진다.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그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일하다 퇴근하고 씻고 밥먹고 TV보다 잠드는 일상. 아주 이따금씩 하늘을 보면 ‘오늘은 미세먼지가 좀 줄었네’ 하고는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의 삶에 김혜자가 던진 돌은 아주 깊고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과거에 대한 쓸데없는 미련, 현실의 각박함,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별것 아닌 하루라도 살 가치가 있다’고, ‘오늘을 살아가라’고 말했다. 이남규, 김수진 작가와 김혜자가 손잡고 다정하게 건넨 말에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엄마의 다독임 같은 위로를 받았다. 아주 따스하게. 그리고 김혜자는 시청자들이 꼭 한번 다시 듣고자 했던 그 말을 아주 큰 무대에서 다시 꺼냈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경제]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단 한 장면을 위해 달렸던 12부였다. JTBC ‘눈이 부시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사 한 줄에 모두 담겨있었다. 오늘의 삶, 하루의 가치, 산다는건 행복한 일이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무방비 상태로 TV 앞에 앉아있던 시청자들은 그저 울기만 할 뿐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완벽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어려웠으며 안될 기획이었다. 어느 제작사와 방송사가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12부작 드라마로 편성할까. 병원에서도, 법정에서도, 수사하다가도, 독립운동 하다가도 연애해야만 하는 제작시스템에서 ‘시간 이탈 로맨스’라는 홍보문구는 눈속임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말이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이렇게 후려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김혜자(한지민/김혜자)와 이준하(남주혁)의 로맨스는 판타지였다. 시공간을 초월한 주인공과 멋진 남자의 사랑.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면 ‘미녀와 야수’에서 그랬듯 혜자는 다시 제 모습을 찾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갈수록 이야기는 요상해져갔다. 혜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 이따금 어색해하는 오빠와 엄마. 그리고 세상 물정과는 담 쌓은듯한 친구들. 여기에 준하를 구하기 위한 노(老)벤져스의 활약까지 등장했을 때 도무지 이 작품의 장르가 무엇인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너무 갔구나’ 싶었다.
맹점이었다. 보고 있되 보지 못했던 보통의 시각. 10화 마지막에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라고 혜자가 말하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 했다. 단 한마디로 모든 상황과 시각이 뒤바뀌는 반전은 그 어떤 추리극의 결말보다도 가슴을 강하게 때렸다. 그리고 작품은 남은 2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모조리 다 쏟아냈다.
주인공 이름이 김혜자였기에 보는 이들은 김혜자를 김혜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갑자기 할머니가 된 혜자, 준하에게 애정을 쏟는 혜자, 그를 구해내려는 혜자, 모든 것을 잊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은 혜자. 이 모두 대배우 김혜자였기에, 그가 진심으로 역할을 받아들이고 표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JTBC ‘눈이 부시게’ 마지막회
그래서 더 따뜻했다. 젊은 시절 요절한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 아들이 넘어질까 눈만 오면 골목을 쓸던 빗자루질. 모두 누가 알아주지 않는 자신만의 삶 일부였으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모든 기억을 잊어도 그것만큼은 잊지 못하는.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난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다. 온 동네가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하고, 그때 아장아장 걷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 그럼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진다.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그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일하다 퇴근하고 씻고 밥먹고 TV보다 잠드는 일상. 아주 이따금씩 하늘을 보면 ‘오늘은 미세먼지가 좀 줄었네’ 하고는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의 삶에 김혜자가 던진 돌은 아주 깊고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과거에 대한 쓸데없는 미련, 현실의 각박함,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별것 아닌 하루라도 살 가치가 있다’고, ‘오늘을 살아가라’고 말했다. 이남규, 김수진 작가와 김혜자가 손잡고 다정하게 건넨 말에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엄마의 다독임 같은 위로를 받았다. 아주 따스하게. 그리고 김혜자는 시청자들이 꼭 한번 다시 듣고자 했던 그 말을 아주 큰 무대에서 다시 꺼냈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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