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어린 의뢰인’ 있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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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의뢰인’은 지난 2013년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으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열 살 난 여자아이가 힘없이 울고 있다. 얼굴은 멍투성이고 목엔 새빨간 손자국이 선명하다. 할 수 있는 건 “살려 달라”고 비는 것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울다 지쳐 쓰러진 아이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춰진다.

2013년 ‘칠곡 아동학대사건’ 모티브

남매에게 상습 학대 가한 계모

일곱 살 남동생 맞아 죽자

대신 살인죄 뒤집어쓴 열 살 누나

소외된 아이들에 더 많은 관심 가져야

이달 개봉하는 영화 ‘어린 의뢰인’에는 이렇듯 가볍지 않은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겁에 질린 아이와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부모, 다른 이에게 무관심한 이웃의 모습이 번갈아 가며 흐른다. 영화는 지난 2013년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 만 10세 미만의 아이에겐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른 엄마가 자신의 죄를 딸에게 뒤집어씌운 일이다. 아동학대 관련 법안인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을 통과시킨 직접적 사건이기도 하다.

‘칠곡 아동학대 사건’ 바탕으로 제작



영화는 오직 출세를 바라던 변호사가 누구보다 사이좋던 친동생을 죽였다고 자백한 소녀를 만난 뒤 마주한 진실을 그린다. 메가폰을 잡은 장규성 감독은 “촬영을 하며 가슴이 아파 창피할 정도로 울었다”고 했다. 주요 인물은 열 살 소녀와 그의 동생인 일곱 살배기 남자아이, 그리고 소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다. 남매는 계모에게 상습적으로 가혹한 학대를 받는다. 이유는 아주 사소하다. 젓가락질이 서툴러 식탁에 음식을 흘린다거나 잠이 안 온다며 뒤척여서다. 여느 또래 아이들이라면 배움의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실수. 하지만 이 아이들에겐 절대 해선 안 되는 ‘금기 행동’이다. “종이비행기를 백번 잘 날려서 우리에게도 엄마가 생겼다”고 좋아하던 아이는 결국 엄마에게 맞다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느낌은 무엇이냐”고 묻던 소녀는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가 울음을 삼키며 탄원서를 베껴 쓰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칠 땐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른들에 묵직한 메시지 전하는 작품

‘어린 의뢰인’은 지난 2013년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으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극 중 열 살과 일곱 살 남매를 연기한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단연 인상적이다. 첫째 ‘다빈’은 최명빈이 연기했다. 다빈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오히려 동생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인물. 최명빈은 아이답지 않은 깊은 감정 연기로 극을 힘 있게 이끈다. “나쁜 일 생기면 경찰 아저씨한테 가라고 배웠는데 제가 잘못한 것이냐”고 할 때나 “부모가 바라지 않았는데 태어난 아이는 이렇게 맞으며 자라야 하는 것이냐”고 물을 땐 어른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민준’을 연기한 이주원도 빼놓을 수 없다. 귀여운 바가지머리를 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누나를 졸졸 따라다닐 땐 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천진난만한 아이는 계모에게 맞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다. 장이 파열돼 자신의 배가 잔뜩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 “누나, 나 너무 많이 먹었나 봐. 배가 엄청나게 빵빵해”라고 말할 땐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여전히 부족한 아동학대 관련 법안



영화는 여전히 부족한 아동학대 관련 법안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어두운 곳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 사회의 작은 변화도 기대해 볼 만 하다.

앞서 실제 사건을 다뤘던 영화 ‘도가니’ ‘재심’ 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광주 청각 장애인 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조명한 ‘도가니’는 개봉 이후 사건 재수사를 불러와 연루됐던 인물들에 징역형을 선고한 계기가 됐다. 이뿐 아니다.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심’ 역시 그렇다. 오랜 시간 제자리걸음이던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수사에 가속이 붙어 억울한 누명을 썼던 당사자가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아이의 실제 변호를 맡았던 이명숙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완성됐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로 변하길 바란다”는 마음에서다. 영화는 과연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까.

남유정 기자 bstoda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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