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작은 마을의 풍광에 젖어…여유 한 아름을 얻었네 ‘시코쿠섬 도쿠시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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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9.22. 오전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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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미지의 자연을 만나다

이야 계곡 주변엔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찾기 힘들지만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단순한 즐거움이 있다. 가즈라바시 노천탕 한편에 마련된 건식 사우나에서 한 여성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호텔 가즈라바시 제공


가을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훼사를 놓는 여름의 꼬리가 길다. 그래도 좋다. 예기치 않은 여행의 행운이 내게로 왔다. 목적지는 일본 동부의 시코쿠(四國)섬 도쿠시마현.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다. 인천공항에서 1시간30분을 날아가 내린 곳은 도쿠시마현이 아니라 이웃한 가가와현 다카마쓰공항이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 자연을 찾아가는 여정은 설렘의 연속이었다.

■“큰 걸음이든 작은 걸음이든 험난한 곳”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첫 행선지인 도쿠시마 미요시시(三好市)에 있는 오보케 협곡으로 향했다.

“오보케 협곡이 속한 ‘오보케 고보케(大步危 小步危)’는 쓰루기산 국립공원의 대표 명승지예요.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시코쿠 산맥을 넘기 위해선 반드시 이 산길을 지나야 했어요. 오보케 고보케는 ‘오보케=큰 걸음, 고보케=작은 걸음’이라는 뜻이에요. 높은 절벽과 급류 때문에 큰 걸음으로 걷든, 작은 걸음으로 걷든 험난하다고 해서 그리 불렸다고 해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2시간쯤 달리자 오보케 협곡이 나왔다. “와~” 입이 절로 벌어졌다. 햇살에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강물, 분명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왔는데 오보케 협곡의 요시노강은 평지의 강처럼 수량이 엄청났다. 선착장에 닿자 중년의 뱃사공이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로 반겼다. 물의 농도가 조금 탁해 보이는 건 얼마 전 내린 비의 영향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땐 투명한 비췻빛이라고 했다.

“이 배는 약 100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유람용이지만 처음엔 고기잡이용이었죠. 협곡 수심은 5~6m, 깊은 곳은 10m에 달합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판을 겹친 듯한 결정편암에 조약돌이 섞인 함력편암 지대라는 점이에요. 도쿠시마현의 천연기념물이죠. 지층은 보통 아랫부분의 연대가 오래된 것이지만 오보케에선 오래된 지층이 새로운 지층 위에 놓인 역전현상이 관찰됩니다. 이러한 지층구조는 일본 내에서도 유일하죠.” 뱃사공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강 양옆으로 함력편암이 위풍당당하게 도열하고 수목이 울창하다. 유람 시간은 30분이었지만, 조금 과장하자면 30년은 기억에 남을 비경이었다.

■후들후들 ‘이야의 넝쿨다리’

이야 계곡을 가로지르는 넝쿨다리. 멀리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올라서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보케를 빠져나와 이야 협곡으로 향했다. 협곡 사이에 허술해 보이는 흔들다리가 놓여 있다. 일명 ‘이야의 넝쿨다리’. 주민들이 협곡을 건너기 위해 넝쿨줄기를 이어 만든 다리로, 일본 내 ‘3대 기이한 다리’의 하나다. 넝쿨 교체 주기는 3년인데 마지막으로 바꾼 게 2년 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굵은 넝쿨은 한 손에 잡히지 않고 나무디딤판은 듬성듬성하다. 발 아래 나무판 사이로 협곡의 푸른 물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도무지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다리를 건너는 5분 동안 ‘할 수 있다’를 수십번 중얼거렸다. 사실 넝쿨은 굵은 케이블선에 감아둔 것으로 끊어질 가능성은 없다. 나무판의 간격도 발이 빠질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두 다리는 넝쿨다리를 건넌 후에도 한참 동안 후들거렸다.

이야 계곡 절벽 위에 세워진 ‘오줌 누는 아이 동상’.


이야 협곡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봉우리에 올랐다. 말발굽 모양의 계곡이 산을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 계곡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묘한 동상이 서 있다. ‘오줌 누는 아이 동상’이다. 절벽 위에서 아이가 ‘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건 뭐지 하며 갸웃거리는데 동상 아래 사당처럼 생긴 집이 보였다. 손바닥만 한 그 집 안엔 사탕과 동전들이 놓여 있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왔었던 이곳에 동상을 세운 걸까? ‘슬픈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옛날에 이 지역 아이들은 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절벽 위에서 ‘오줌싸기 대결’을 즐겼다고 한다. 훗날 마을 사람들이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동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다소 황당한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니 오히려 동상이 사랑스럽다.

■천공의 노천탕, 료칸 가즈라바시

산골의 해는 짧았다. 료칸식 호텔 가즈라바시에 짐을 풀었다. 이 료칸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의 산과 들이 한눈에 보이는 노천탕이라고 했다. 처음 보는 이들과 노천탕을? 호기심이 부끄러움을 이겼다. 다다미방에 놓인 유카타로 갈아입고 노천탕으로 향했다. 한 평 크기의 작은 집이 나왔다. 집에 들어가 초록색 버튼을 누르자 ‘뎅뎅뎅’ 소리가 나더니, 철커덩하며 위로 움직인다. 노천탕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였다. 만난 지 10시간도 안된 일행은 노천탕에서 ‘자연인’으로 재회했다.

노천탕의 크기는 아담했다. 잉어가 노니는 작은 연못, 대나무 물레방아 시시오도시 등 ‘일본스러운’ 조경이 온천하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탕 밖으로는 이야 계곡의 수림과 그 품에 안긴 작은 마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천공의 성이 라퓨타라면 ‘천공의 탕(湯)’은 가즈라바시였다. “혹시 저 마을에서 여기가 보이지 않을까요?”라고 묻자, 일행 중 한 사람이 “보이더라도 그 몸이 그 몸이라, 누가 누군지 모를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하하하하” 농담과 웃음이 탕 안에서 보글거렸다.

■“얏토사” “얏토 얏토” 함께 춤을 춰요

아와오도리회관 전속팀의 공연.


이튿날 도쿠시마 전통춤인 아와오도리를 보러 도쿠시마시에 있는 아와오도리회관으로 갔다. 아와오도리의 역사는 400년 정도. 사미센(일본 전통 현악기)과 종, 피리, 큰북, 작은북. 다섯 종류의 악기 연주에 맞춰 춤이 시작됐다. 공연 시간은 대략 40분. 마지막 공연이 끝나자 해설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와오도리 음악인 오하야시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춤추는 바보, 구경하는 바보다. 같은 바보인데 추지 않으면 손해로다.’ 어차피 모두 바보이니, 여러분 함께 춤을 추실까요?”

두 박자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왼팔과 왼발, 오른팔과 오른발을 함께 드는 게 포인트. 관람객 모두가 무대에 올라 커다란 원을 만들고 춤을 추면서 빙빙 돈다. 춤이라기보단 팔다리를 휘젓는 수준이지만 열심히 따라 한다. 두세 바퀴 돌고 나자 잠자고 있던 ‘흥 DNA’가 들썩거렸다. 칼군무는 아니어도 아와오도리의 떼군무에는 기(氣)가 솟는 매력이 있었다. 춤을 추면서 “얏토사” “얏토 얏토”라고 추임새격인 소리를 지르는데 얏토사(ヤットサ)는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얏토 얏토(ヤット ヤット)는 ‘잘 지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로의 안부를 끝없이 묻고 답하는 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빙글빙글 돌면서 머릿속에 맴도는 물음이었다.

■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소용돌이

가끔 그런 꿈을 꾼다. 해일이 밀려오는 꿈. 무서운 속도의 쓰나미가 아니라, 점점 물의 양이 불어나고 급기야 온몸이 바닷속에 가라앉는 꿈. 무방비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잠기는 꿈에서 깨어나면 두려움보단 당혹감이 더 컸다. 내 무의식 속의 바다는 낭만보다 공포에 가까운 것 같다.

나루토 소용돌이를 보러 가는 버스 안에서 그 꿈이 생각났다. 팸플릿에서 배를 삼킬 듯한 소용돌이 사진을 본 탓이다. 긴장감이 엄습했다.

나루토시와 아와지섬을 잇는 오나루토 대교 아래서 유람선을 탔다. 출항한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물결이 달라진다. 낮게 출렁거리던 파도가 잦아들고 수면이 평평하게 당겨진다. 나루토해협의 조류는 세계 3대 조류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조수 간만의 차는 최고 1.5m, 조류의 속도는 시속 15~20㎞. 이 거대한 에너지로 인해 크고 작은 조류들이 생겨나고, 그 조류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용돌이를 만든다. 소용돌이가 클 때는 지름이 20m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간 날에 무시무시한 소용돌이는 없었다. 상상했던 광경을 볼 수 없게 되자 실망감이 밀려왔다. 승선 전의 긴장감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감이었나보다. 엄청난 소용돌이는 못 만났지만 그래도 소용돌이가 생기는 모습은 신기했다. 너무 큰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나루토해협의 소용돌이는 한 번쯤 볼 만한 기이한 자연체험이 될 것이다. 도쿠시마 여행 문의 일본정보관광국(JNTO) 홈페이지 www.jroute.or.kr.


■여행정보

▶길

인천공항에서 다카마쓰공항으로 주 3회 운항하던 아시아나항공은 10월부터 에어서울로 노선이 이관된다. 운항횟수도 주 5회로 늘어난다.

▶맛

아유(은어)와 당고꼬치구이


오보케 협곡에서 잡히는 아유(은어)는 이 지역 단골 메뉴.

스다치(초귤)


회로 먹든, 구워 먹든, 빠지지 않는 게 스다치(초귤)라 불리는 열매로, 생선살 위에 즙을 뿌려 먹는다. 두부, 곤약 , 고구마 등을 꼬치에 꽂아 된장 양념을 바른 당고(인형이란 뜻)도 별미다.

▶배

나루토해협의 소용돌이


오보케 협곡의 유람선 이용료 어른 1080엔. 나루토 소용돌이 유람선은 하루 18회 출항하고 뱃삯은 어른 1550엔. 조수간만 차가 가장 큰 물때에 맞춰 승선하기를 권한다.

▶잠

천공의 료칸 가즈라바시 http://kazurabashi.co.jp/


<도쿠시마(일본) | 글·사진 손버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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