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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M 1 - 한국 근현대 군사사 프로젝트 타임라인 M 1
김기윤 지음, 우용곡 외 그림 / 길찾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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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동아시아 3국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서구적 근대’라는 완전히 새로운 파고를 맞닥트렸습니다. 오항녕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피로) 보편화하는 과정”이었던 서구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일본은 엄청난 피를 수반하며 적응하여 제국주의 열강이 되었지만, 조선은 생존하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한 결과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1866년부터 1910년까지의 ‘구한말’로 통칭되는 역사를 열등감과 피해의식의 시대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 ‘서구적 근대’를 특권화하고 근대 이전을 ‘전근대’란 이름으로 낙인찍는 정서가 한국인의 심성에서 내면화되었고, ‘서구적 근대’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 당시의 조선은 모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심성은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를 막론하고 당대인들에게 성행했고 지금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시대에, 생존이 최우선이 되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남을 희생시켜도 상관없다는 야만이 보편화된 그런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은 망각되고 식민통치를 당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오직 그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옛 사람들에 대한 혐오만 남았습니다. 지도층의 무능함과 부정부패, 옛 사상에 대한 집착이 망국에 이르게 했다는 단순화된 인식, 그리고 서구인 관찰자의 당대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만이 대다수 비전문가 대중에게 뿌리 박혔고 그 뿌리는 제거될 줄을 모릅니다. 서구인 관찰자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 시선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는 사람은 얼마 없어 보이며, 역설적으로 그러한 단순화된 인식이 그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는 “유교적” 역사인식의 소산임을 아는 자들은 더욱 없어 보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결정과 인식의 배경과 전개에 대해서는 알고 이해하려는 사람은 소수 연구자 뿐, 그 외 사람들은 그러한 인식에서 헤어나오지들 못합니다.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고 공부하려 하는 사람은 대다수 대중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일본의 위대한 한국사학자이자 동아시아 사학자이며 ‘유교적 근대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비유를 새겨듣고 있습니다. 미야지마 교수는 ‘백지에 새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쉽지만 원래 그려진 그림을 고치는 것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유교적 근대’가 막 진행중이었던 일본의 비교적 원활한 서구적 근대 전환과 이미 ‘유교적 근대’에 도달하였고 오랫동안 정착한 청과 조선이 그러기 힘들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미야지마 교수의 담론입니다. 미야지마 교수의 이 비유는 명쾌히, 그리고 기존의 담론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구한말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 서평에서 초점이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여하간 이 시대는 위에서 말한 전망, 학술적으로 말하면 ‘회고적 전망’의 시기입니다. 조선은 어차피 식민지로 귀결될 나라였으니,. 그 시대의 파고에 대한 당대의 대응은 무엇이 있었던 간에 의미가 없다는 의식입니다. 그 때문에 그 당시를 면밀히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학계에 있는 소수 연구자들에 불과합니다. 대중은 그 연구자들과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고, 방송이나 드라마, 소설, 교과서, 또는 천박한 대중교양서나 인터넷 밈이 진부하게 재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안이하고 게으른 당대사 인식에서 벗어 나지를 못합니다. 거기에 벗어나는 다른 말을 하면 감히 누굴 옹호하려 드냐며 증오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이런 구한말 인식을 그대로 가져와 국제적으로 외교적 변동이 있으면 1987년 이후 언제나 현재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데도 구한말을 끌어다 온다고 국방대학교 박영준 교수가 한탄한 바가 있습니다. 이는 사회 전반에서 오랫동안 구한말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진 연구자 김기윤 씨의 저서이자 앞으로의 시리즈물이 될 『타임라인M』은 학계와 대중 사이를 연결해 주며, 기존의 게으르고 공부하지 않으려 드는 인식에 신선한 충격을 가하는 크나큰 도전, 마치 1917년의 10월 혁명과 같이 구체제를 무너트리는 것과 같은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기윤 씨는 정식으로 사학교육을 전공한 분으로 "오로라의 공상" 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며 재야에 머무르면서 어마어마한 사료와 연구를 축적한 ‘늑대’님의 도움을 통해 막대한 1차사료 및 기존 연구를 가지고 인터넷상 구한말 인식을 뒤집을 귀중한 글들을 써 오신 분입니다. 




김기윤 씨의 글은 망국과 식민지화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린 다음 감정배설만 일삼고 그 인식을 밈으로 만들어 소비만 하는 양상에 당당히 그게 틀려먹은 것임을 밝히며 징치의 회초리를 가감없이 내리치고 있습니다. 이에 덕산 스님의 몽둥이에 맞거나 임제 스님의 “할!”을 들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감화된 많은 이들이 김기윤 씨에 의해 눈이 새로 뜨였습니다. 그 중에는 저도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의 증오의 감정을 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김기윤 씨와 그리고 역사 그림에서 뛰어난 명성을 쌓고 있는 우용곡 님, 금수 님, 초초혼 님이 삽화가로 참여한 이 타임라인M 시리즈는 한국근현대군사사 프로젝트라는 야심찬 기획입니다. 이 책은 1867년 병인양요부터 1894년 제1차 동학농민운동에 이르는 개항기 조선군의 구조, 무기, 전술 변화와 그것이 실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오항녕 교수의 표현을 빌려 근대화를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보편화하는 과정"이라 하였지만,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서 그런 과정을 받아들이며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당대인들의 고민이 『타임라인M』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드러나는 것은 역사학이 계속 당대에 물음표를 던지는 “왜?”와 “어째서?”입니다. 그것의 답이 “누가 무능해서 그렇다.”또는 “누가 기득권이라서 그렇다.”정도에 그치면 그야말로 게을러 빠진 것입니다. 진정한 역사 탐구자는 그 정도 수준에서 벗어나서 끊임없이 “왜?”와 “어째서?”를 던지며, 김기윤 씨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김기윤 씨의 저서는 역사학의 기본적인 목표이자 전제인 “당대를 가장 많이 설명해 줄 수 있게 재현하는 것”에 충실하게 당대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현상과 구조가 어째서, 왜, 어떠한 배경에서 형성되었는지,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가장 넓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성실한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망국의 역사라는 점 때문에 자칫 감정적으로, 또는 감상주의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부분에서도 저자는 냉철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의 목표는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으로 당대를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누굴 악마화하지도, 누군가에게 당대 일어난 사태의 책임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안이함에 넘어가지 않는 지적 성실성이 이 책의 기반입니다.



저자의 서술은 기존에 블로그에서 쓴 것보다는 더 부드럽지만,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정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의 인식에 대단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의 서술에 눈을 감고 누굴 옹호하려 드냐며 이빨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 중에는 그의 신선함과 지적 성실성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만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대가 정말 어떠하였는지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 『타임라인M』은 더할 나위 없는 선물입니다.



특히 여러 사람들이 가장 냉철함을 잃기 힘든 동학농민전쟁 서술에서 이 책의 장점은 가장 드러납니다.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흡사 중국 문화대혁명기의 ‘조반유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19세기 민중운동사 인식은 당대의 현실과 무관하게 봉기를 일으키면 근대중심주의적 사고에 의해 어떻게든 현대의 민주주의와 연결시켜서 그것에 과한 감정이입이 있는 서술이 많습니다. 게다가 다른 구한말 역사처럼 동학농민운동사도 그때를 면밀히 들여다보기보다는 기존 인식에 머무르는 것도 모자라서 소설(송기숙의 소설이라던지) 속 내용이 실제 역사라고 믿는 등 대중적 인식에 문제가 많은 당대사이기도 합니다.



김기윤 씨는 그 부분에서 냉철함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동학군의 기동 및 전투와 경군 및 지방군의 진압작전 및 전투에 대해 철저히 군사적으로 당대사를 서술합니다. 김기윤 씨의 서술은 어느 쪽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며 당대를 가장 많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의 블로그에 동학농민혁명을 폄훼했다고 분노하는 몇몇 사람들이 처들어오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당대를 최대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현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을 어쩌겠습니까?



명나라 때의 격언집에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어 흐르고(長江後浪推前浪) 새 인물이 옛 사람을 대신한다.(一代新人煥舊人)”고 하였습니다. 김기윤 씨는 학계의 연구들과 대중들이 모르는 자료들을 넷상에서 오랫동안 전달해 주며 낡은 넷상 담론을 레닌이 구체제를 파괴하듯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역사가의 길을 걷는 신진 연구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기윤 씨가 격언에 걸맞는, 앞선 물결을 밀어내는 장강의 뒷물이자 새물결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으며 타임라인M의 일독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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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
마크 갈레오티 지음, 이상원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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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적지 않은 러시아사 통사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시판되고 있는 것을 포함해 과거 출간되었다 절판된 저작까지 포함하면 10권은 넘을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그 분량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인 관계로 입문용으로 읽거나 가볍게 교양용으로 읽을 만한 저서는 『이야기 러시아사』나 『러시아사 100장면』 정도 외에는 초심자가 읽는데 다소 인내심을 요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통사보다는 개별 소재(소비에트 작전술과 그 배경)에 집중하는 사람이라 통사류는 많이 읽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러시아사라는 더 큰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 나름대로 읽었다고 자신합니다.



대체적으로 그러한 통사류가 다소 옛날 시기에 출간된 관계로, 이번에 출간된 영국 저자인 마크 갈레오티의 저작은 괜찮은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제 A Short History of Russia인 이 책은 바로 작년인 2020년에 출간된 관계로 이제까지 서구에서 축적된 러시아사 연구경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어판 제목대로 "짥고 굵은" 통사입니다. 300쪽도 되지 않는 분량에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접할 수 있는 정보량이 결코 적지 않은 이 책은 키예프 루시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러시아사를 정치사 위주로 빠르게 흩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서술의 내용은 짧고 문장도 어쩔 수 없이 단정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알찬 내용이 압축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피식 웃게 하는 저자의 위트 덕에 책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대공과 차르와 서기장과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의 치세에 대해 다루는 전통적이지만 그래서 익숙한 방법을 취하여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도 빠르게 이 책의 내용을 습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 아쉬운 것이라면 책의 군데군데 "왜 현대의 러시아는 우리(서방)에 적대적으로 행동하는가?"라는 틀 안에서 러시아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타자화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러시아를 러시아 자체로 이해하기 보다는 서구에 대비되는 적대적 존재의 행동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러시아사를 본다는 목적의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타자로서 연구되고 조명되는 것입니다. "아시아적 전제"라는 거슬리는 표현도 보이고요. 서구 저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국내 출간된 러시아사 통사의 절대다수가 서구인이나 한국인 저자가 저술한 것임을 미루어 보면, 그리고 국내의 러시아 관련 보도가 항상 서구 언론을 거쳐서 보도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우리가 그런 저작들을 통해 보는 러시아는 서구세계를 통한 러시아일 뿐 러시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인이 쓴 저작들이 더 많이 출간되면 극히 기울어진 인식의 균형추가 그나마 좀 잡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인명경시"와 "교환비"의 공고하기 이를 데 없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해체하기에는 대단히 늦긴 했지만요.



아무튼 책 자체는 아쉬운 점을 제외하고는 충분히 볼만한 책입니다. 물론 독자들은 이 책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연구서적들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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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 - 세계를 바꾼 사소하지만 중요한 188가지 사건 하룻밤 시리즈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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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시리즈는 일본에서 시작되어 2000년대 중반부터 서점가에 돌았던 대표적인 대중교양서 브랜드입니다. 대체적으로 가벼운 교양용으로 구성된 이 책들 중 저는 한국사, 조선사, 세계사만 어린 시절에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보면 한국사는 신라 흉노기원설이 유력한 것처럼 달려있고 조선사는 원균옹호론이 달려있는 등 문제가 적지 않았었지요;;

여튼 대체적으로 그냥저냥 볼만한 "하룻밤에 읽는..."는 시리즈 중 대체적으로 거시적인 맥락에서 다루지 않는 미시적이고 소소한 소재들을 다룬 게 『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입니다. 이미 2005년에 출간된 적이 있으며 여러 차례 재판되었는데 이게 가장 최신의 판본입니다. 시시콜콜해보일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은 탐고하고픈 소재인 음식 등의 작은 소재들을 다루는 이 책은 다양한 주제들을 일종의 다이제스트 식, 박람강기식으로 열거하며 다루고 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시리즈라는 특성상 정말 하룻밤도 안되어 1-2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단간단하게 쓰여져 있어서 기초적인 교양지식을 얻고 싶은 분이 펼쳐보면 나름대로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꽤나 아쉬운 책이었습니다. 책의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주제들을 다루려다 보니, 각 주제 당 할당되는 페이지 수가 단 두 페이지, 지도가 있는 경우 세 페이지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는 사실 "하룻밤에 읽는..." 시리즈의 특징인 관계로 한국사나 세계사에서도 그렇게 구성되긴 하였지만, 그 책들은 더 작은 폰트를 사용해 제한된 분량에도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담았던 다른 책에 비해 이전 시리즈에 비해 더 큰 폰트를 쓴 이 책의 소재당 서술분량이 더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2005년에 본 기억이고 이후 개정된 판본은 달라졌을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 이후는 이 책들을 안봐서;;)

예를 들어 오호츠크해의 어원을 다룬 한 대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오호츠크해는 겨울철에 아무르강(헤이룽강)이 얼믐이 시레토코 반도에서 네무로 해협에 이르는 광활한 해역으로 흘러드는 '유빙의 바ㅏ'로 알려져 있다. 이 바다는 캄차카 반도와 시레토코 반도를 잇는 쿠릴 열도를 경계로 태평양과 구분된다. 오호츠크해는 수렵민과 어민에 의한 교류의 바다였는데 17세기 무렵 모피를 찾아나선 러시아인이 동시베리아로 진출해 이 땅에 중심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항구 이름이 바다 이름이 되었다.

오호츠크항은 바다로 흘러드는 강 주변에 만들어졌는데 퉁구스계 원주민은 그 땅을 그냥 단순히 '오카타(강)'이라고 불렀다. 러시아인은 그 말을 '사냥터'를 뜻하는 러시아어 '오호타'로 읽고 러시아어의 지명 접미사 '스크'를 붙여 '오호츠크(오호타강의 도시)'라고 불렀다. 그와 더불어 항구 앞에 펼쳐진 바다도 오호츠크해로 불리게 되었다.

서유럽풍의 새로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러시아 해군을 창설한 표트르 1세는 죽기 직전 한 인물에게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미국) 사이에 있느 넓은 바다를 탐험하고 동아시아 해역에 존재한다고 여겨진 금은도를 탐색하라고 명했다. 그 인물이 바로 덴마크 출신 해군사관 베링이다.

그는 배를 만들기 위한 자재를 가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오호츠크항에서 탐선선을 건조했다. 이후 베링은 캄차카 반도로 건너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는 바다를 탐험하고,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 사이에 해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바다와 해협을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베링해, 베링 해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출처 입력

이러한 소략한 서술이 책 전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대다수의 소재들이 검색엔진에서 검색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라 더욱 아쉬움이 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후 책은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보다 더 귀하고 심도있는 정보를 주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색 딱딱 몇번 하고 클릭 몇번 해서 아는 것 이상의 정보를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처럼 더 깊은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간단한 정보라도 검색해서 얻기 보다는 책장을 넘기며 읽는 즐거움과 함께 얻는 분이라면 다과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는 괜찮을 책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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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캠페인 - 미국을 완전히 바꿀 뻔한 82일간의 대통령 선거운동
서스턴 클라크 지음, 박상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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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역개루 카페와 모던아카이브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응모하여 썼음을 알려 드립니다.


로버트 프랜시스 케네디(이하 RKF)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가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이하 JFK) 대통령의 친동생이자 최측근으로 정실 인사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법무장관 자리에 올랐으며,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소련이 그를 JFK의 핵심 측근으로 파악하고 비선 접촉을 하며 사태를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게 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RFK는 당시 경험을 다룬 회고록 『13일』을 출간하였고 한국어판으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RFK가 1968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으며 불행이도 암살당했다는 것은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75년에 첫 저작을 출간한 베테랑 미국 언론인이자 논픽션 작가인 서스턴 클라크의 『라스트 캠페인』 (모던아카이브, 2020)은 저의 지적 공백을 매워주기에 좋은 저작이었습니다.


RFK가 대선에 출마한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68혁명이 맹렬한 기세로 사회 곳곳을 뒤흔들었고, 프라하의 봄은 바르샤바 조약군에 진압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1.21 사건과 푸에블로호 피격 등의 북의 무력도발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 또한 최악의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되었고, 상류계급 사람들은 군복무를 빠져나가며 하층민에게 불리한 징병제도는 격렬한 반전운동을 일으켰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며 흑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2008년에 미국에서 The Last Campaign: Robert F. Kennedy and 82 Days That Inspired America(New York: Holt Paperbacks, 2008)으로 출간된 『라스트 켐페인』은 이 시점에서 RFK는 이 시점에서 민주당 경선출마를 선언한 RFK를 자세히 보여줍니다. 저자 클라크는 RFK의 경선출마부터 그가 6월에 암살당할 때까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그의 선거운동과 연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RFK가 암살당한 후 미 전국을 뒤덮은 추모 열풍부터 시작하며, 어쨰서 RFK가 그렇게 전국적인 사랑을 받았을 수 있었는지 그의 선거운동 과정을 재구성하며 보여줍니다.

클라크가 중점에 둔 것은 RFK가 보여주는 무모할 정도의 솔직함이었습니다. 클라크의 책에서 재구성된 RFK는 핵심 지지층을 어떻게 챙길 것인지, 민주당의 핵심 표밭에서 기존 표가 이탈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는 솔직히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자신이 믿는 바를 사전에 계산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갈파하였습니다. 빈민가의 끔찍한 현실에 눈돌리지 않고 그곳으로 가서 눈물을 흘리고, 그 또한 백인 도련님에 불과하다며 증오심을 드러내는 흑인들과 한 자리에서 킹 목사를 같이 추모하여 인디애나폴리스의 흑인 폭동을 진정시키고, 대학생의 징병유예를 대학생들 앞에서 비판하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에 당장 무력보복을 가해야 한다는(아마 푸에블로호 사건 떄문?) 상류층 대학생에게 "먼저 입대하세요."라고 하는 신랄함을 보이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힘들고 짐진 자들의 친구이자, 그들의 삶을 개선시켜줄 수 있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 나옵니다.


책 속의 RFK는 절대 보좌진들이 꾸미고 이것저것 고려한 연설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보좌진들의 우려를 살 정도로 즉흥적으로 발언하고, 그것에 마음을 담으며, 뛰어난 유머감각 덕에 반대자들도 비호감을 품지 않게 만드는 사람으로 재현됩니다. 그의 행동은 어느 계층에서건, 그를 위대한 정치인 "바비(로버트의 애칭)"로 보며 찬성하건, 그저 철모르는 이상주의자 도련님으로 보며 반대하건 간에 충분히 진정성 사람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책 속에 드러납니다. 그 점에서 RFK가 정말 책에 묘사된 것처럼 오직 심장만으로 즉흥적으로 행동한 건지, 아니면 그 즉흥성도 극히 정교하게 계산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RFK의 열띤 모습이 책 속에 워낙 생생하게 드러나는지라, 감정이입을 잘 하는 독자분은 책 속의 RFK 지지자들처럼 "바비!", "우리는 바비를 원한다!"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논픽션이지 연구서가 아닙니다. RFK가 당시 구사한 선거전략과 정책의 현실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보다는, 그가 보여준 열정에 뜨거운 감각을 느끼는 걸 더 선호하는 사람에게 맞는 책입니다. 그만큼 논픽션의 가장 큰 미덕인 현장감을 갖춘 책으로, 당시의 열기를 느끼고 싶은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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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들의 행진 - 유교인의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
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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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연구에서, 유림은 소외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소위 "근대화" 물결에 반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 수구세력이자 "봉건"(조선왕조가 봉건제를 시행하지 않았음에도!) 세력으로 낙인찍혔고, 위정척사만 내세워 비좁은 세계관에 갇혀 개혁세력에 반대하려 한 집단으로 기술되었습니다.


유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들이 주도한 1910년대 의병항쟁에 대한 인식도 훼손했습니다. 평민 의병장인 신돌석을 양반 의병장들이 소외시켰다는 소설 속 이야기가 기정사실로 둔갑했고, 13도 창의군의 수장 이인영이 부친상 때문에 한성 진공을 포기했다는 표면적 사실이 무슨 유림의 한계인 것처럼 비춰졌습니다. 13도 창의군의 한성 진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진공을 멈추어야 했던 상황에서 부친상을 명분으로 삼았던 것은 고려되지 않고 말입니다. 유림의 의병항쟁은 그것을 삐딱하게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구체제 기득권 세력의 저항 정도로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영훈과 박노자가 의병항쟁을 보는 시선이 공통분모를 이루는 시선이 위와 같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유림의 활동 또한 그런 식으로 비춰졌습니다. 간재 전우가 승려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3.1운동에 참여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무슨 유림 전체가 다 산 속에 파묻혀 현실도피나 했다는 식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식민지 지배세력이 구체제 기득권 세력을 포섭하고 이용해 식민지의 근대화를 방해한다는 레닌주의의 이론에 따라 유림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고려되지 않은 채 그들을 지배체제에 순응한 '친일지주'로 낙인찍는 경향도 생겼습니다.


또한 유학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적 특성이 독재체재를 옹호한다는 공격과, 실제 일제의 이른바 '황도유교' 및 박정희 정부가 유학의 몇몇 개념들을 독재체제 국민만들기에 적용하면서 유학은 민주주의 사회와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매도되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잡서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그 대표일 것입니다.


이러한 서사는 근대중심주의의 산물입니다. 서구적 근대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들을 없어져야 할 것들로 규정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역사의 중심서술에서 제외하는 근대중심주의는 역사서술에서 많은 자들을 소외시켰습니다.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개화파와 계몽운동가들의 시선과 당시대 비판이 주로 소개되었고, 이들에 대한 유림의 반박은 제대로 된 고찰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유림은 피상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인 존재로만 기억 속에 남았고 그들이 과연 그때 무엇을 하였는가는 망각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래의 『아리랑』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 서사에서 유림은 계몽주의적이고 진취적인 주인공이 일제와 더불어 맞서야 할 대상으로 기술되었습니다. 각종 삼류 대체역사물에서 유림은 소위 "근대화" 방해물이란 이유로 학살 수준으로 쓸려나가고, 저급하고 자극적인 것만 찾는 한심한 독자들은 이걸 '사이다'라고 추잡스런 욕망을 충족시킨다며 좋아합니다. 무지함과 지적 태만이 자아낸 참으로 끔찍스러운 단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림이 5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나라를 이끌어 왔으며,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당대 평범한 백성들에게 강고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들에 대한 소외와 무시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심지어 해방 이후까지의 역사를 제대로 재현할 수 없게 만듭니다.


조선의 유학사를 보면, 소위 "유교 탈레반"이라는 끔찍하고 천박하며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비하성 발언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대의 지배적 학문인 성리학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용되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중화론의 대두는 공자, 맹자, 주자의 가르침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변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렇게 하였던 퇴계, 율곡에 대한 탐구로 독자성을 띄게 되었으며, 하층계급의 성장으로 인한 신분질서의 해체는 중화와 오랑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것지 않고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낙론 성리학으로 변용되었습니다.


또한 19세기 초 세도정치기에 유림은 민란의 주체이기도 하였습니다. 임술농민봉기의 주역인 류계춘을 비롯한 자들은 농민들을 지도하고 무장시킬 재력과 명망을 가진 양반 지주들이었고, 이들은 정조 시대 수령권력 강화와 세도정치가 결합된 관의 수탈에 맞서 무장봉기를 주도하였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을 때, 전라도의 유림들은 봉기가 일어날 만 했다며 봉기를 옹호하는 상소를 조정에 올렸습니다. 이들은 결코 민중과 유리된 존재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들과 가까이 지내는 자들이었습니다. 동학의 교리와 논리 또한 유학의 구호와 표현들을 담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전개를 볼 때, 당대 유림이 일제강점기의 폭압 앞에 어떻게 저항했으며, 그러한 저항이 1960년 4.19 혁명까지 연결되는 연속성을 탐구한 저서가 바로 『군자들의 행진』입니다.


제목 "군자들의 행진"은 4.19 혁명의 상징적 장면 중 하나인 교수단 데모를 말합니다. 경찰의 학생시위 유혈진압에 교수들이 4월 25일에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가두행진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저자 이황직 교수는 이러한 행진이 일제강점기 유림의 저항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임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유학이 현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느냐의 여러 논쟁들을 보고, 이 논쟁들이 유학의 이론에 대한 분석에 집중되었으며 실제 유림이 서구적 민주주의의 등장에 어떻게 반응하고 변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연구서를 집필했습니다. 이 저서는 심산 김창숙을 비롯한 유림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강점기, 해방전후, 그리고 이승만 독재시기에 어떻게 저항하고 정치적 활동을 하였고, 그들의 논리는 무엇이었으며, 변화하는 시대상에 따라 유학의 논리를 어떻게 변용하였는지 고찰하고 있습니다.


저자 이황직 교수는 유학의 근본 사상인 민본주의가, 당대 유림에게 민주주의로 변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의병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일시적으로 잠잠해졌으나, 3.1운동 이후 진행된 파리 장서 사건으로 결합하여 강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이 학맥의 네트워크에 속한 여러 유교인들은 신간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 참여하거나 위당 정인보를 중심으로 조선학연구를 주도하며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며 일제에 유무형적 저항을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부분이 어땠는지는 저도 책을 본지 시간이 흐른 관계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들의 행동이 어느 종교 못지 않게 치열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해방전후 김창숙의 유도회총본부로 집결한 유림 인사들은 임정봉대운동을 비롯하여 민족주의 진영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며 일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유교적 이상국가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유교인들와 아나키즘 운동가들의 결합이었습니다. 국가주의, 권위주의적이라는 유교와 권위를 파괴하고 저항하려 하는 아나키즘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냐고 놀랄 사람들이 많겠지만, 본디 공자와 주자가 국가권력이 개인의 생활에 깊숙히 개입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해 왔음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니겠습니다.


이러한 유림의 강한 정치의식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승만의 강력한 반대자 중 하나였던 김창숙이 적극적으로 독재에 저항한 것은 유명합니다. 그리고 4월 25일 교수단 데모에 나선 교수들은, 조선유도회의 네트워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대 유림의 학맥적 후예들로 여전히 존재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시위 일선에 나서며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 내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로서 미국적이고 기독교적이고 "근대인" 독재자인 이승만은, 한국적이고 유교적이고 "전근대인"들이 참여한 민주화운동에 끌려 내려와 하와이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근대/전근대의 공고한 도식이 허물어지는 광경인 셈입니다.


이황직 박사의 이 책은 최근의 역사에서 소외된 유림을 편견과 천박한 비난에서 벗어나 다시 제 자리로 돌리는 훌륭한 저작입니다. 이 책이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소개하니 다들 일독을 권합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시간적 배경이 4.19까지라 그 이후에 유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서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후 유학 운동의 쇠퇴와 비정치화가 원인이라긴 하지만, 언젠가는 이 부분도 탐구한 연구가 나온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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