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文정부 초대 감사원장 최재형

입력
수정2019.05.14. 오후 8:51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감사원 때문에 관료들 일 못한다는 말 나오지않게 하겠다"

대담 = 채수환 정치부장

최재형 감사원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감사원 본관에서 북악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 원장은 "나 자신도 판단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래서 매사에 종합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호영 기자]
취임 1년5개월을 맞은 최재형 감사원장(62)은 30여 년간 판사로 재직해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법조인이다. 업무에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지만 온화한 성품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신망이 두텁다. 국회의 임명 동의를 얻기 위한 인사청문 과정에서 알려진 미담도 화제가 됐다. 최 원장은 부인과 사이에 두 딸이 있지만 두 아들을 입양했다. 고등학교·대학교와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업고 등하교를 같이했던 일화도 남겼다. 적폐청산을 국정과제로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은 감사원장 적임자를 찾고자 고심했고, 당시 사법연수원장이던 최 원장을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했다. 취임 때부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을 천명했던 최 원장을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에게 힘이 되는 감사원을 만드는 것이다. 불신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감사를 하도록 직원들에게 당부한다. 적극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과오는 과감하게 면책하고, 사후 감사 부담도 덜 수 있도록 올해부터 사전 컨설팅 제도를 도입했다.

―국가정보원을 감사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어떤 의미가 있나.

▷국정원을 비롯한 이른바 권력기관은 각 기관의 특수성이나 법령상 제한 등으로 외부 통제가 취약했다. 국정원의 조직·인사·회계 등 기관 운영 전반을 감사했다. 내용은 자세히 공개할 수 없지만 예산과 조직 운영 면에서 의미 있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에는 대통령 비서실과 대검찰청에 대해서도 감사를 실시했다. 권력기관도 언제든지 감사원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다.

―앞으로 탄생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감사하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 감사에 관한 특별한 조항은 확정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감사원은 모든 국가기관의 회계를 검사한다. 수사 기능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 기관 운영 감사를 실시하는 검찰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최근 청와대 업무추진비 감사를 두고 야당에서 '면죄부 감사'라고 지적했는데.

▷청와대도 다른 기관과 동일한 잣대로 감사했다. 조사받는 직원들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업무추진비의 사적 사용 여부, 예산 집행 지침 부합 여부, 소명 내용이 사실인지까지 철저히 점검했다. 외관상 부적절한 집행이라는 의심이 가는 일부 지출이 있었지만 집행 내용에 대한 소명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는 예산 집행 지침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와 최근 환경부 조사위의 보 해체 방안이 상반된다는 지적도 많은데.

▷감사원이 한 성과 분석은 보 설치와 관련된 4대강 사업 전후 상태를 비교해 분석한 것이다. 환경부 분석은 보의 철거와 개방으로 인한 효과를 산출한 것이어서 내용이 다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문제점들이 4대강 보 개방 또는 해체 여부 결정 과정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늘어나고 있는데.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는 것이 감사원 감사도 면제한다는 뜻은 아니다. 큰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보는 것은 감사원 본연의 업무다. 현재는 예산이 배정되거나 사업이 진행 중인 단계는 아니므로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감사 활동에 대해 직접적인 지시를 하는 경우가 있었나.

▷그런 경우는 없었다. 감사원의 독립성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감사 대상과 범위를 감사원이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를 지키고자 노력하겠다.

―감사 활동이 거세지면 공무원 사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감사원을 취임 당시 목표로 제시했다. 유능하고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되 비리 행태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히 감사하고 엄단하겠다. 소극 행정도 비위와 마찬가지로 엄중히 조치하겠다.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어떤 제도를 도입했나.

▷적극 행정 면책 제도와 사전 컨설팅 제도다. 사전 컨설팅 제도는 감사원 내부에서도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적극 행정을 지원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극 행정이 발생하기 쉬운 분야에 대해 기관이 사전 컨설팅을 신청하면 컨설팅 결과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고, 개인적 비위가 없는 한 면책하는 제도다. 오히려 소극 행정을 조장하거나 감사원의 지나친 업무 개입으로 비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운영하고 있다.

적극 행정 면책은 공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처리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감경하는 제도다. 요건도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없는 한 면책하는 것으로 크게 완화했다.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최소한 감사원 감사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 공직사회에서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

―실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한 공단 시설 내에서 운영 중이던 유치원이 폐원하게 됐다. 그러자 학부모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컨설팅을 받고자 했다. 감사원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회신했고, 개학 전에 유치원이 정상화될 수 있었다. 또 다른 공단은 승강기 공사를 하면서 부품 호환이 가능한 기존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는 법규를 어기게 됐다. 감사원은 이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 행정으로 보고 면책 결정을 내렸다.

―회계감사를 넘어 잘잘못을 따지는 정책감사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라 정부의 모든 활동은 원칙적으로 감사 대상에 해당된다. 다만 감사원은 정책적 판단을 존중해 정책 결정 자체의 당부는 감사하지 않고 있다. 작년 4월에 명시 규정으로 '정부의 중요한 정책 결정과 정책 목적의 당부'는 감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책 결정의 기초가 된 사실 판단, 자료·정보 등의 오류,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적정 여부로 감사 대상을 한정했다.

―개헌을 통해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감사원 소속을 어디에 둘지는 국민적 공감대와 헌법적 결단이 필요한 사항이다. 다만 2018년 정부 개헌안 초안과 같이 독립기관화하면 독립성 측면은 강화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감사 결과의 실효성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감사원 구성원들의 직무상 독립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감사 역량 제고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감사 활동에서 가장 강조하는 철학이 있다면.

▷관행에 따라서 하는 '편한 감사'보다는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감사'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피감기관과 소통하면서 무엇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길인지를 함께 고민하려 한다.

―남은 임기 동안 목표는.

▷국가 재정 운용의 건전성을 높일 수 있도록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재정사업을 꼼꼼히 점검하고, 정부의 재정 관리 제도의 개선점을 대상 기관과 함께 모색해 예산 낭비와 비효율을 걷어내는 데 감사 역량을 집중하겠다. 국민 생활의 안전을 지키는 데도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

두아들 입양…학창시절엔 다리 불편한 친구 업고 등하교
'미담 자판기'별명 얻은 최원장, 아버지로부터 강직한 삶 배워

최재형 감사원장이 감사원 집무실에서 직접 원두를 갈아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기자들에게 커피를 따라주고 있다. [김호영 기자]
최재형 감사원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 원두를 직접 그라인더로 갈아 기자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줬다. 은은한 커피향을 좋아한다며 감사원을 방문하는 손님들이나 직원들에게 가끔씩 직접 원두커피를 내려 제공한다고 한다.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원두를 갈고 있는 최 원장 모습은 차가운 법조인이 아니라 무척 따뜻해 보였다. 그의 인간 면면을 알아보는 질문도 몇 개 던졌다.

―법관 재직 시절 중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

▷상이군인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참전한 기록도 있고 이후 장애가 남은 것도 틀림없었다. 하지만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었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인정해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엄격했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판단했을까 싶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잘못 재판한 사건도 많이 있을 것이다. 재판관이 평생 감당해야 할 짐이다.

―두 아들을 입양하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입양은 아이에게 사랑과 가정의 울타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일 뿐이다. 여느 부모와 자식 간 관계가 그렇듯 갈등이 없지는 않지만 특별할 것도 없다.

―인생 좌우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의연이다. 매사에 의연해야 한다. 우선 자기 하는 일에 실력과 정의감이 있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되 교만하지 않는 그런 흔들림 없는 자세,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오랜 공직 생활에서 롤 모델이 되는 인물이 있다면.

▷어렸을 때는 아버지였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군인(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었다. '청렴하고 강직한 삶'이 무엇지 보여주셨다. 승진이나 보직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산다는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법조인 중에서는 초기 사법부에서 활동했던 김홍섭 판사다. 사건만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닮고 싶었다. 어마어마하게 청렴하게 사셨다. 좋은 일화도 많고 수많은 판사가 존경한다. 역사 인물 중에서는 이순신 장군이다. 당시 해전의 승리는 철저한 대비와 자기 관리 덕분이지,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니다. 공과 사 구분에 엄격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사사로운 정에 끌리지 않은 점을 존경한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중요시한 철학은.

▷나 자신이 판단에 오류를 범할 수도 있고 법과 원칙에 어긋난 처신을 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항상 생각했다. 또한 재판이나 감사에서 다루는 사안들은 여러 상황과 가치가 혼재한 복잡한 다면체와 같기 때문에 어느 한 편에서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종합해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건강 유지를 위해서나 취미 삼아 하는 활동은.

▷원래는 테니스를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탁구를 즐긴다. 감사원에서는 일과 후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탁구 레슨도 받는다. 직접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아 마시는 커피도 즐긴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1956년 경남 진해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과대학 △사법시험 23회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장 △사법연수원 교수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장 △2018년 1월~현재 감사원장

[정리 = 정우성 기자]

▶네이버 메인에서 '매일경제'를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매콤달콤' 구독 ▶무궁무진한 프리미엄 읽을거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