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임경선 "사랑을 대할 때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

황경상·송윤경 기자

인생은 유한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작가 임경선씨는 그래서 사랑에 대해 취해야 할 단 한 가지 태도가 있다면 ‘관대함’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 사랑만한 ‘사치’는 없기에,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의 결핍까지 끌어안아야 하고, 때로 이별의 순간에도 멀어지고 싶은 상대의 마음까지 이해해야 한다. 관대함은 사랑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 자신이 우선 단단해져야 이런 관대한 태도를 지닐 수 있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은 작가 임경선씨가 ‘사랑의 태도’를 주제로 진행했다. 일과 사랑, 인간관계와 삶의 태도에 관한 다양한 글쓰기를 보여준 작가는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지난 11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상담을 받아 오기도 했다. 최근 내놓은 <태도에 관하여>(한겨레출판)라는 에세이가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를 다뤘다면 이날 강연은 ‘사랑하는데 가장 중요한 태도’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에서 임경선 작가가 ‘사랑의 태도’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상대에게 바라거나 기대기보다 내가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먼저 사랑에 대해 기꺼이 관대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에서 임경선 작가가 ‘사랑의 태도’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상대에게 바라거나 기대기보다 내가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먼저 사랑에 대해 기꺼이 관대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함정

강연에서 꼭 받는 질문, 아니 하소연이 있는데요. “사랑하면 상처받을까봐 두렵다. 나 좋다는 사람은 싫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연애를 안 하고 평생 혼자 살자니 그렇고, 눈 낮추고 주변을 둘러봐도 멀쩡한 사람은 다 기혼이다. 대체 괜찮은 남자들은 왜 없냐? 어디 가서 찾아야 하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화를 막 내세요. (웃음) 저는 거꾸로 여쭙고 싶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기 전에 당신은 스스로를 사랑하냐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냐고. 그러면 또 고개를 갸우뚱, 우물쭈물 ‘잘 모르겠다’고 하세요.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쨌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보다 더 이해하고 사랑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명제를 너무 미화하는 건 아닐까요.

가령, 요즘 나오는 감성에세이들을 보면 “너는 하찮은 사람이 아니야” “넌 사실은 좋은 점을 많이 가진 매력적인 사람이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줘”하고 위로하잖아요. 분명 인생 어느 시점에선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됐을 테죠.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말은 정말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잠시 나를 위로하는 용도로 쓴다면 모를까, 언제부턴가 이 말이 아무 것도 안 하려는 스스로에 대한 변명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요. “이게 나야, 어쩔래?” “난 이런저런 상처가 있어서 지금 이럴 수 밖에 없는 거야” 라면서 지금 나의 지질한 점, 못난 점을 합리화하는 데 쓰고 있진 않은지요.

이렇게 사랑에 있어서 자발성, 능동성이 발휘되지 않으면 대신 자존심이나 자의식이 작용합니다. 저는 자존심 내세우는 건 모든 사랑하는 관계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자존심 내세우는 관계 자체가 의미가 없잖아요. 대체로 이런 불필요한 모습들을 보이는데요.

첫 번째, 자기는 껍데기에서 한걸음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으면서 내심 누군가가 껍데기를 깨고 들어와 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또 막상 깨고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왜 하필 너야 라며 화내죠.(웃음)

두 번째, 자신의 문제를 상대에게 투영하거나 내가 채우지 못한 결핍을 대신 채워줄 상대를 기다립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싫어하는 점을 상대에게서 발견하면 못 견디고 고치라고 강요하기도 하죠.

세 번째, 상처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줍니다. 조금 불안한 기미가 보이면 그 무엇보다도 내가 버림받을 거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내가 차이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면 관계가 기승전결이 없어집니다. 제대로 시작하고 제대로 끝나본 적도 없이 그저 연애의 단맛만 맛보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늘 관계에 깊숙이 발을 넣기보다 항상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거죠.

‘있는 그대로의 나’가 매력적일 때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고 싶어지는 경우는 딱 한 가지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죠.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자’ 같은 자기암시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요즘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좀 거창하게 취급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른 게 아닌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직시하고 주제파악을 한다는 건데 주제파악이라고 해서 자기비하가 아니라, 나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직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좀 더 잘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죠. 타고난 것이나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나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 일상 속의 꾸준한 성실함이 자존감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기본적인 삶의 태도죠. 저는 이런 성실한 자존감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냐면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하는 상대의 결핍이나 불완전함을 이해할 포용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임경선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줘’ 같은 말이 언젠가부터 아무 것도 안 하려는 스스로에 대한 변명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점가에 진열된 힐링 서적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임경선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줘’ 같은 말이 언젠가부터 아무 것도 안 하려는 스스로에 대한 변명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점가에 진열된 힐링 서적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사랑도 중요하지만, 내가 더 중요해

사랑은 완제품처럼 보이는 잘나고 강하고 멋진 사람을 어떻게 내 사람으로 만들까 연애기술을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저 사람의 약한 점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을까, 저 사람 때문이라면 기꺼이 상처를 입어도 좋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기꺼이 항복하게 만드는’ 감정이 절로 일 때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죠. 사랑은 이기거나 성공하기는커녕 어떻게 보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기꺼이 내가 먼저 ‘져 주는’ 일입니다. 흔히 ‘사랑에 실패했다’는 표현을 쓰는 데요, 차였다는 것을 실패라고 표현한다면 저는 반대입니다. 차라리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하게 걸쳐놓는 것이 실패라고 할 수 있겠죠.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했는데, 이별의 형태로 끝났다면 그건 실패가 아닙니다. 뭐든지 끝까지 깊숙이 가봐야 그 끝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밀당’(밀고당기기)도 하지 마세요. 마케팅에 비유하자면 제품력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비유가 좀 뭣하지만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팔리게 돼 있어요. 프로모션이나 광고, 유통망이 중요한 게 아녜요. 마케팅 안 해도 유통망이 제한이 있어도 제품이 좋으면 소비자가 알아서 찾아가서 제발 팔아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니 상대를 어떤 ‘기술’로 사로잡으려고 잔머리를 쓸 시간에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차피 사람은 단독자로 살아갑니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와 살아가는 기간이 제일 길죠. 기왕이면 매력적인 ‘나’와 살아가고 싶습니다.

예전에 <라디오천국>이라는 라디오프로그램에서 DJ 유희열씨와 격하게 공감한 것이 있습니다. 음악이 돌아가는 동안 우리끼리 한 얘긴데요. 솔직히 다 필요 없고, 이성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본인들 자체가 이성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여자라면 남자를 참 좋아하고, 남자라면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투명하게 티내는 사람들. 보통 이성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밝힌다, 헤프다 이런 선입견이 있는데, 저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굉장히 기쁨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만 보면 사랑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더라고요.

첫째로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잘 반합니다. 좋아하는 감정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고, 사랑을 주면서 행복해 합니다. 선물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죠. 물론 준다는 것은 줬을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들어있죠. 하지만 주면서도 본전 생각을 안 합니다. 좋아하는 감정 자체에 충분히 만족하는 거죠.

둘째로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안에서 자기만이 발견하는 장점을 찾아내고 그걸 소중하고 애틋하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의 이런 멋진 부분은 나밖에 모른다’는 거죠. 주변에서는 ‘그 사람이 뭐가 좋냐’ 그러지만, 본인에게는 유일무이한 사랑인 겁니다.

세 번째,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의 결핍도 사랑합니다. 보통 장점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쉽습니다. 만난 지 3개월쯤 되면 그 사람의 단점이 드러나고, 나와 안 맞는 부분이 보이면서 그때 많이들 흔들흔들하죠. 내가 생각했던 그 남자, 그 여자가 아닌데,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하나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사랑이 깊어지면 어느덧 그 사람의 결핍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고 포용하게 되는 거죠. ‘이 사람의 이런 못난 모습은 나밖에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사람의 이런 점 정상인가요,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요’라는 상담 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상, 비정상이 어디 있을까요. 슬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경지까지 가면 그 사람의 결핍을 내가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상대방의 결핍이 나를 공격하는 도구로 쓰인다면 그 남자든, 여자든 멀리해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 자체의 결핍이면 내가 같이 품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랑, 우리 시대의 가장 호사스런 사치

그런데 또 우리는 주변의 이런 소리에 시달립니다. “너무 잘해주지 마. 너를 만만하고 당연하게 생각할거야.”

주변 사람들은 자존심을 지키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워야 해?”라고 반문합니다. 상대를 더 많이 좋아한다고 해도 관계의 약자라고 생각하면서 미리 두려워하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연민에 빠지고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을 네가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너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 경우도 누굴 좋아하면 다 표현하는 편이었어요. 내가 더 좋아하면 남자들이 먼저 떠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또 어느 순간 뒷걸음질 치지 않는 남자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게 지금의 제 남편이라는 게 함정이지만.(웃음)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얼마 전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생겼다는 말을 했어요. 그러면서 엄마도 짝사랑을 해 본 적 있냐고 물어요. 있다고 하니까, “기분이 어땠어?” 그래요. 제가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행복한 기분이 더 커서 괜찮았어.”라고 했더니 그 작은 입술로 깊은 한숨을 푸욱 쉬면서 “응. 나도 알아…” 그러는 거에요. 그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네가 바보짓하는 것도,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줬어요. 그러니까 안심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마음이 아프더라도,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중요합니다. 연애할 때는 아끼지 말고 다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하고 단단한 사람들은 사랑할 때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 있습니다. 진짜 약한 사람들은 오히려 상처받지 않으려고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거나 내가 상처입기 전에 도망치거나 내가 먼저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는 가혹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우선 내가 인정하고 받아주지 않는다면 누가 그렇게 해줄 수 있겠어요? 정말이지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사랑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입니다. 저는 항상 얘기합니다. 사랑에 관대해지자, 살아있을 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것, 그 자체처럼 근사한 일은 없으니까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라고 생각해요. 물질적 성취나 이런 것들도 행복을 줄 순 있겠지만, 사랑할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르죠. 사랑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집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을 확인했을 때, 첫 키스를 나눴을 때, 사랑을 나눌 때 등 그런 극치감은 일생에서 많지 않습니다. 그 기회가 왔을 때는 무조건 누려야 합니다. 세상사 중에 그만큼의 기쁨을 날로 먹는 순간이 별로 없어요. 너무 이상적이라고요? 사랑에 이상을 품지 않으면 세상살이 중 그 어떤 것에 우리가 이상을 품을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것이 주는 기쁨이 있다면, 그 위에 지적인 기쁨이 있을 것이고, 그 위에 본능적인 감각적인, 심장이 주는 기쁨이 있다고 봐요.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시대의 가장 호사스런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경제도 안 좋고, 상황이 안 좋으니까 사랑 하나만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 하나 없이 감정 하나만으로 보듬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딸 결혼식에 가서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늘 뭔가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결혼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라는 축사를 했다. 사진은 이 글이 실려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표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딸 결혼식에 가서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늘 뭔가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결혼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라는 축사를 했다. 사진은 이 글이 실려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표지

■ 우리가 가장 관대해야 할 때는?

그렇다면 사랑에 있어서 ‘관대한’ 태도가 가장 필요할 때가 언제일까요?

첫째는 어떤 사람에게 내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할 때죠.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나의 존재를 알려줘야 합니다. 말로만 고백하지 않고 그 외의 모든 방법으로 호감을 표현해도 됩니다.

둘째,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서 변화시키고 싶을 때죠. 그런데 사람은 웬만해서 잘 안 변합니다. 내가 변한다면, 어쩌면 영향받아서 조금 가능할 수도 있어요. 역으로 억지로 너를 위해서 맞춰줄게, 이런 것도 하지 말아야 하겠죠. 변화시키려고 굳이 애쓰지 말자, 혹은 변했다 라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이해해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셋째, 두 사람의 체온이 다른 것을 못 견뎌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열정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다르다고 봐요. 어떤 사람은 담백하고 어떤 사람은 격합니다. 왜 내가 원하는 이만큼의 정열로 왜 안 맞춰 주냐 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원래 체온이 다른 거라고 이해했으면 해요.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최대한으로 체온을 끌어올린 거구나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결혼 생활에 있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딸 결혼식에 가서 이런 축사를 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늘 뭔가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결혼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그 말이 정말 맞아요. 안 좋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하면 됩니다. 이 문제를 자꾸 키우기보다 연애 외의 내 생활, 내 인생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게 없다면 나는 연애상대에게 내 인생을 의탁한 게 됩니다.

넷째, 그 사람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싶을 때가 있죠. 연락 강박이라든지, 기념일 챙기기 등 연애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 있잖아요. 이런 것들에 너무 치우치지 말았으면 해요. 최대한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고 두 사람 사이에 통풍이 되게끔 해주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관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랑이 끝날 때, 바로 이별할 때입니다.

이별은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이 타 들어가고, 가슴이 찢어지고,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 시시때때로 시큰시큰 아리고 먹먹합니다. 관계가 완전한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이래저래 부침을 겪습니다. 떠난 사람이 의도치 않은 희망고문을 주기도 합니다. ‘지금 뭐해?’처럼 과거의 여느 일상을 연상시키는 다정한 말투, 뜬금없는 ‘잘 지내?’ 같은 안부문자, 괜히 블로그에 의미심장한 댓글을 남기는가 하면 SNS에는 치고 빠지듯 관심글을 찍고 좋아요를 누릅니다. 차인 쪽의 상처는 까진 데 또 까져서 만신창이가 돼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딱 끊어주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쁩니다. 정말 자상해서, 천천히 이 관계를 정리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찬 것이 나쁜 게 아니라 제대로 차지 않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별을 입에 올렸다고 해서 나쁜 것도, 가해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이별하기를 거부한 사람이 피해자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헤어지려는 사람이나 붙잡으려는 사람이나 둘 다 감정에 솔직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식기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사람이 만나서 헤어지는 데에는, 아프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원한다면 그를 놔줘야 합니다. 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차인 여자분이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면서 물어봤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접어야 하냐고. 정말 미치겠는데, 잠도 안 오고. 저도 알죠. 저도 일주일간 밥을 하나도 먹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접어야 한다는 것만 알지 ‘어떻게’는 매번 나도 생소했다고. 하지만 딱 한 가지 진실이 있다, 진부한 말이지만, 당장에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할 것 같아도 반드시 해결해준다고.

계속 칼을 갈면서 상처를 자양분 삼는 사람들은, 이미 그 연애와 관계없이 상처에 의존하면서 나는 피해자라는 상황에 안주하는 겁니다. 어떤 시점이 지나면 그 어두컴컴한 방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정말 고통스럽지만, 고통스러울지언정 나의 아픈 마음을 보듬는 만큼 상대의 마음을, 상대가 나한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니까. 어차피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사랑의 본질이니까. 그것만 인정할 수 있어도 우리는 사랑의 소멸을 정면으로 애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랑에 대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어요. 왜 저는 계속 가장 중요한 사랑의 태도가 ‘관대함’이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첫 번째는 인생의 유한성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 몸이 아팠던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기회가 되면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젊음이 긴 시간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둘째는 인간이 정말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저는 연민이 사랑의 베이스에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할 땐 너무나 완벽해 보이지만, 저 사람도 내 결핍이나 불완전만큼 취약하고 아픈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것을 보기 시작하면, 많은 것들이 용서가 되는 것 같아요. 나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만큼 상대방의 결핍과 불완전함도 인정하는 거죠.

사랑의 이별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 뭘까요? 정말 성장하기는 할까요? 실제로는 씁쓸해지고 더 철벽치고 마음이 약해지고 꼬이고 후퇴하는 인간이 되는 건 아닌지. 그런데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성숙해진다는 말은 거창한 게 아녜요. 나를 이해하는 만큼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별의 상처나 고독, 고통을 겪어도 시간이 되면 우뚝 일어서서 나는 나대로 인생을 걸어나갈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성장인 것 같아요.

아울러서 사랑 그 자체가 내 인생에 온 것을 소중히 여기는 순수한 마음, 그 사람들에 대한 좋은 마음, 또 이 사랑이 끝나도 새로운 사랑이 내게 도래할 거라는 당연한 믿음, 그런 게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바로 그 순간이 슬픔에 아름다움이 깃드는 순간일 겁니다.

상대에게 바라거나 기대기보다 내가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먼저 사랑에 대해 기꺼이 관대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계산하고 재게 되고, 인내심도 부족해지고, 못 견뎌하는 게 많아지고 있어요. 우리, 그 정도로 약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우리에겐 본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겁니다. 그 본능을 믿어주세요.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에서 청중들이 임경선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강연 뒤에도 청중들은 1시간여 가까운 시간 동안 각자 품고 온 고민들을 임경선 작가에게 풀어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에서 청중들이 임경선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강연 뒤에도 청중들은 1시간여 가까운 시간 동안 각자 품고 온 고민들을 임경선 작가에게 풀어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질의응답

-소개팅에서 마음이 드는 오빠를 만났어요. 말로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 버렸는데, 다음날 만나서도 고백에 대해선 얘길 안 해요. 화가 나서 확답을 듣고 정리하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그냥 편하고 좋은 동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저를 여자로 생각해서 한 행동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저한테 자기 잘 나온 사진을 보내기도 하고 그래요.

“대개의 남자분들은 자기 좋다는 여자 굳이 안 내칩니다. 우쭐하고, 기분 좋거든요. 여자의 맘은 확실히 알았고 쉽게 안 바뀔 거고 내가 부르면 나올 거고 남자 입장에서 얼마나 편리합니까. 여자 입장에서는 야속하고 분노하면서도 어느새 그가 부르면 택시 부르고 있죠. 자아분열하지 마시고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이 남자가 나를 어떻게 취급하든, 어쨌거나 나는 이 남자가 너무너무 좋다, 그러면 나가서 만나세요. 내 기쁨을 위해서 이 남자를 소비하겠다는 심정으로. 언젠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래도 보겠다는 마음으로. 혹은 지금이라도 이 남자와의 관계에 균형을 맞추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잠시 그의 주변에서 사라져있는 거죠. 그가 궁금해하고 더 내게 다가온다면 어쩌면 가능성은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마음 이미 보여줬는데 그냥 마음가는 대로 하시면 안 될까요?”

-전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제가 다 퍼줬어요. 빚도 갚아주고 대학 등록금도 대주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제가 어느 순간 감당하지 못하고, 마음이 식더라고요. 자신을 보호하면서 사랑을 해야 하는 건지, 사랑은 받을 걸 생각 않고 해야 하는 건지.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리를 하신 거네요. 무리를 하면 부하가 생기고 내가 무리한 만큼 상대에게 기대하게 되죠. 마음 나눠도 됩니다. 몸 나눠도 됩니다. 물론 피임은 완벽해야 하고요. 하지만 돈은 절대 나누는 것 아닙니다. 원래 돈이 끼면 잘 될 수가 없어요. 질문하신 분의 잘못이 아니라 돈이 악마적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 과거를 미화시킬 필요도 자학할 필요도 없이 그땐 내가 돈의 속성을 경시했다고 정리하고 흘려보내면 안 될까요? 과거의 일을 사랑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일만 없으면 괜찮습니다. 돈이 얽히지 않은 사랑이라면 얼마든지 다시 하실 수 있습니다.”

-3년 전 건강진단을 하러 갔다가 말기 임 선고를 받았어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지금 여기 있는 것처럼 잘 치료가 끝났어요. 그런 드라마틱한 일들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고 나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알았어요. 문제는 뭐냐면 제가 말기 암환자였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서 너무 감사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부분에서만은 주저하게 되고 자신감이 없는 느낌입니다. 두렵고 무섭달까요. 임경선 선생님도 아프셨던 경험이 있잖아요. 그런 상황이나 두려움에 대해서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으시다면?

“고종석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하나는 고통을 겪고 난 이후 나만 당할 순 없다는 억울함에 남에게 더 가혹해지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 또 다른 하나는 고통을 겪음으로 인해서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훨씬 더 민감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 관용과 사랑을 발견하게 된 사람들. 우리는 후자여야만 하고 아마도 후자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아까 계속 말씀드렸던 사랑의 관대함이라는 부분과 닿아있어요. 아까 인생의 유한함 때문에 제가 선택한 사랑의 태도가 관대함이라고 했잖아요. 사실 건강할 때는 인생의 유한함, 죽음에 대해서 생각 안 하는데 아프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많은 것들이 더 다르게 다가와요. 내가 조금 더 마음을 넓게 가져야지, 먼저 사랑해야지, 안 그럴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줄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어떻게 보면 잃을 것도 없으니까 이런 맘도 있고. 누가 나한테 뭐라고 그럴 거야, 다 덤벼 그런 느낌(웃음)? 재생력은 우리에게 용기를 가져다 줘요. 용기가 생기면 포용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요. 네가 날 이해해줘야 해 이런 게 아니라, 나는 이미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걸 겪고 소화해냈기 때문에 너의 아픔을 이해해줄 수 있어, 그리고 너를 결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런 너그러운 마음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이죠. 그건 저희가 고통을 담보로 얻은 선물이라고 봐요. 질문하신 분을 앞으로 만나실 그 분은 완전 행운아라고 봅니다. 완치하셔서 정말 잘 됐어요. 박수 한 번 쳐 주세요.”

<황경상·송윤경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심리톡톡’ 시즌2 - 사랑에 관하여](5) 임경선 "사랑을 대할 때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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