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life 제661호 (19.01.08)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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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인공지능 아닌 가상 현실에 있다 『가상 현실의 탄생』

재런 러니어 지음 /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실리콘 밸리의 구루’로 평가받는 재런 러니어의 신작 ‘가상 현실의 탄생’이 출간됐다. 리니어는 1985년 VPL 리서치사를 설립해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고안한 인물. 현재는 다트머스대 방문 교수, 마이크로소프트 학제간 과학자로 재직 중이다. 그는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사람이 가상 세계를 탐험하는 첫 프로그램과, 그러한 시스템 안에서 이용자를 대표하는 최초의 ‘아바타’를 개발했다. ‘가상 현실의 아버지’라는 별칭은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는 “VR은 우리 시대의 과학적, 철학적, 기술적 첨단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이 철저한 환상의 수단이야말로 “인지와 지각의 관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가장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VR이 경이로운 건 모든 것을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러니어는 VR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지 상상했으며 영화, 재즈, 프로그래밍의 교집합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가 30년 전 최초로 고안한 고글과 장갑이 지금까지도 VR의 도구로 사용되는 건 놀라운 일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중간중간에 그는 VR의 정의를 무려 52가지나 제시한다. VR의 발명 이후 등장한 SF 영화 ‘인셉션’이나 ‘매트릭스’ 등은 VR을 디스토피아의 재료로 사용한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는 “이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이토록 소름 끼치는 매체는 일찍이 없었다”고 표현한다. VR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 수 있다는 비판에도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게 해주는 매체이자 (바라건대) 공감을 늘리는 길”로 묘사할 만큼 그는 절대적으로 VR의 미래를 긍정한다.

반대로 ‘VR=-AI’라고 정의할 만큼 인공지능의 가능성에는 회의적이다. 인공지능(AI)은 인간 경험을 집적한 것에 불과하다며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AI는 우리가 만드는 것에 씌우는 포장지로 생각한다”며 AI가 도달할 특이점과 AI의 지배를 송두리째 부정한다.

소셜 미디어에 대해서도 뉴욕 타임스와 같은 진짜 뉴스를 쓸모없게 만들고 이용자의 주의를 잠깐 끄는 것이 아니라 온종일 끄는 것으로 돈을 버는 기업일 뿐이라고 묘사한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이렇게 푸념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다 VR을 합치면 필립 K 딕 소설이 되겠네. 이거야 원. 미래는 완전 지옥이군. 천국이자 지옥이지.”

궁극적으로 러니어가 바라는 궁극적인 미래상은 인간이 기술에 소유되지 않고 인간이 기술을 소유하는 세상이다. VR 기술을 통해 현실 속의 기적, 우정, 사랑을 더 의미있게 만든다면 눈부시고 경이로운 미래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학으로 1960년대 서울을 다시쓰다 『서울 탄생기』

송은영 지음 / 푸른역사 펴냄
“서울에 가고 싶어요, 단지 그거뿐예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주인공 윤희중이 틀어박혀 있던 바닷가의 집에서 하인숙과 사랑을 나눈 후, 하인숙이 처음 꺼낸 말이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인 저자는 이 대화를 예로 들며 “이는 일반적인 연인들이 정사 후에 할 만한 말은 결코 아니다”면서 서울에 대한 맹목적 동경 혹은 서울중심주의를 보여준다고 부연한다.

이 소설을 통해 저자는 현재 서울의 도시 경관, 시민들의 삶과 욕망이 1960~1970년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1966년 이후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과거와의 ‘단절’과 ‘망각’, 이를 바탕으로 한 빠르고 항상적인 변화가 어지럽게 진행되었다는 설명이다. 강북의 도심 재개발, 판자촌 철거, 신개척지 강남의 개발 등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 책은 문학연구자가 쓴 역사서다. 문학과 역사가 만난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하며 서울의 탄생을 그려낸다. 최인훈의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1968년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지고 입석버스가 등장하는 풍경이 그려지고, 하근찬의 『삼각의 집』에는 미아리고개 위에 지은 판잣집을 배경으로 고단한 서울살이가 그려진다.

저자는 서울이 현대도시로 탄생하는 역사적 과정을, 문학이라는 탐침을 이용해 촘촘하게 파헤쳤다. 그렇게 현대성을 향한 지향, 발전주의 이데올로기, 일상과 문화의 아메리카니즘, 그리고 공적 폭력이 뒤얽힌 서울의 ‘변신’에 대한 흥미롭고도 생생한 풍경화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글 김슬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1호 (19.01.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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