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희의 맛있는 술 이야기>‘와인 애호가’ 나치 2인자 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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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제를 통해 만 35년간의 수탈과 착취를 경험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병탄하기 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위해 통감부를 설치했고 수탈과 착취를 위한 계획들은 총독부로 이어지면서 일제가 망할 때까지 우리나라의 자원들을 수탈해간다. 이러한 수탈과 착취는 당시에 만연해 있던 제국주의의 본모습이었다. 모든 식민지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자행됐다.

한때 아프리카의 서북부를 시작으로 대륙의 내부까지 점령하고 영국과 파쇼다 사건을 일으켰던 유럽의 강국 프랑스. 식민지 쟁탈전에서 국력을 뽐내며 많은 식민지를 차지했던 나라. 수탈과 착취를 이어가던 이 나라에도 강대국의 면모가 순식간에 식민지로 바뀌는 일이 발생한다.

유럽의 본국이 히틀러의 독일에 점령당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 성공신화는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1940년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탈했듯이 프랑스의 수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을 비롯, 프랑스인들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술을 수탈하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와인이 유명한 나라다.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 산지인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와인을 비롯, 샴페인으로 유명한 샹파뉴 지방과 와인을 증류해 만드는 브랜디의 고장인 코냑 지방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군에게 속절없이 고급술을 강탈당했다. 또다시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이번에는 자신들의 술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사용됐다. 작게는 벽장에 숨기거나 땅을 파서 묻기도 하고 주변 여건이 가능하면 동굴을 찾아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공간이 넓은 곳은 술을 보관하던 저장고에 새로운 벽을 쌓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선별된 최고급 술을 안전하게 보관했다. 공간의 여유가 없어 미처 숨기지 못한 술은 지키지 못하고 독일군에게 빼앗겼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프랑스를 대표할 만한 최고급 명품술은 안전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자부심으로 평가받던 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와이너리와 레스토랑들은 독일군에게 적지 않은 술을 빼앗기게 된다. 갑자기 많은 술을 빼앗기자 술의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프랑스인들은 정작 자기 나라 술을 맛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많은 술을 가져간 히틀러는 정작 본인은 즐기지 않았다. 식사하면서 술을 가볍게 마시는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술은 베르히테스가덴이라는 소도시의 독수리둥지에 보관됐다.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지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보관되는 와인은 높은 가격으로 해외로 판매돼 독일이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전비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히틀러는 와인을 확보하는 임무를 와인애호가였던 헤르만 빌헬름 괴링(Hermann Wilhelm Goring)에게 맡긴다. 괴링은 히틀러에 이어 독일의 2인자였던 인물로, 독일군에서 원수의 자리에 있던 장군이다. 특히 보르도와인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괴링은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자마자 고급 와이너리와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에 술 감별사를 파견하면서까지 고급술을 찾아내 본국으로 옮겼다. 괴링의 이런 유별난 와인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이 점을 이용해 구하기 힘든 와인을 선물하면서 접근, 자신의 출세와 이권을 위한 뇌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괴링의 와인이 1만5000병에 이르렀다고 한다.

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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