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오른손잡이가 왼손도 쓰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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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일상 죄다 한 손 쓰기… 멀쩡한데 대놓고 안 쓰는 기관… 오른손잡이의 왼손뿐
뇌졸중, 뇌 좌우 어디든 생겨… 오른손잡이 오른손 못 쓰면 최악
평소 양손 쓰면 우뇌·좌뇌 자극… 노인 기억력, 치매 예방 등 좋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일본 재활 병원에 가면 구조가 똑같은 두 화장실이 나란히 있다. 남자 화장실 둘, 여자 화장실도 둘이다. 하나는 오른손으로 문을 여는 화장실이고 다른 하나는 왼손으로 연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한쪽 팔다리를 못 쓰는 편마비 환자들을 위한 배려다. 뇌졸중은 뇌 왼쪽 오른쪽 어디든 생길 수 있다. 불행 중 불행이 자기가 주로 쓰던 손을 뇌졸중으로 못 쓰게 된 경우다. 오른손잡이는 왼쪽 뇌에 뇌경색이 생겼을 때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못 쓰니 생활이 너무나 불편하고, 기능 회복이 더디다. 동맥경화로 뇌혈관이 좁아져 뇌혈류가 차단되는 뇌경색은 왼쪽 뇌에 약간 더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뇌경색으로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잃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왼손잡이가 스포츠 분야에서 유리하기에 TV 중계에 많이 보일 뿐이지 왼손잡이는 전체의 10% 정도만 태어난다.

일본 병원의 '왼손 화장실'에서 영감을 받아 오른손잡이로 살아온 필자는 왼손을 써보기로 했다. 평생 잘 해왔던 것을 병 얻어 못 할 때를 대비하자는 거룩한 의도라기보다는 왼손 쓰기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조작이 쉬운 것부터 시작했다. 왼손으로 문을 열고 컵을 들고 리모컨을 누르고 신문을 넘겼다.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렇지만 날짜가 지날수록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왼손으로 포크를 들고 젓가락을 잡아 식사했다. 스마트폰 화면도 가능한 한 왼손으로 누르고 돌리고 컴퓨터 마우스도 바꿔 잡아 보았다.

반복은 익숙함을 낳는 법.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먹게 되고, 라면발도 건져 올리게 됐다. 한국인은 쇠젓가락을 찌르고 자르는 칼과 가위처럼도 쓰는데 왼손 젓가락질로 배추 김치 중간을 찔러서 벌린 후 반으로 찢어 먹거나 구운 생선을 젓가락으로 먹을 만큼 도려내고 발라내는 건 '초보 왼손잡이'가 하기엔 고난도 동작이다. 최종 목표는 왼손으로도 글을 쓰는 건데 손 글씨는 거의 모두 대외용이기에 써먹을 정도가 되려면 한참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이철원

왼손을 쓰면서 그동안 오른손을 혹사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과 일상이 죄다 한 손 쓰기다. 그릇 닦기, 물건 잡기, 병 마개 돌리기, 식재료 다듬기, 밀폐 용기 열기 등 이 모든 수(手)작업을 오른손이 도맡아 한다. 그러니 주부들에게 오른손 손목 터널 증후군이 많다. 손가락과 손목 인대를 과사용하면서 붓고 염증이 온 탓이다. 온전히 왼손에 맡긴 작업은 오른손 손톱을 깎을 때가 유일하지 싶다. 지하철 출입구 승차권 태그도 오른손으로 하게 되어 있다.

기실 오른손잡이 몸에서 왼손만큼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인체 기관이 없다. 우리 몸에 있는 두 신체 장기들은 둘 다 똑같은 역할을 한다. 눈, 귀, 콧구멍, 난소, 고환. 콩팥 등이 그렇다. 폐는 왼쪽 폐가 심장 때문에 크기가 조금 작을 뿐 하는 일은 같다. 축구 선수가 아닌 이상 걷고 뛰는 데 양 발을 골고루 쓴다. 대칭 신체 기관 중 유난히 한쪽만 많이 쓰는 일은 다른 한쪽에 문제가 생겼을 때만이다. 멀쩡한데도 대놓고 안 쓰고 있는 것은 오른손잡이의 왼손뿐이다.

왼손에는 부정의 은유도 있어 왔다. 믿음직한 아랫사람을 "나의 오른팔이야" 하지 왼팔이라고 하지 않는다. 영어 숙어에 '나는 왼발이 둘이다(I have two left feet)'라는 표현이 있는데, 춤을 못 추는 '몸치'라고 말할 때 쓴다. 야구나 권투에서 오른손 선수는 '오소독스'(orthodox), 정통파라고 부른다. 반면 왼손 선수는 사우스포(south-paw)로 하는데, paw는 통상 동물의 발톱 달린 발을 칭한다. 악수도 오른손으로만 한다.

의학적으로 핸드·브레인 커넥션이라는 말이 있다. 태아 단계에서 손과 뇌는 같은 원시 세포 줄기에서 시작해 자랐고, 손 동작과 뇌는 서로를 자극하고 교류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손을 많이 쓰는 수공예 취미를 가진 노인이 기억력이 좋고, 치매도 적다. 오른손과 연결된 왼쪽 뇌는 주로 언어와 수리, 과학적 사고를 담당한다. 왼손의 오른쪽 뇌는 영감, 창의적 사고, 공간 인식 등을 맡고 있다. 양손을 쓰지 않는 것은 좌우 뇌를 100%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두 손이 합쳐야 기도가 이뤄진다. 되도록 양손을 쓰면서 살자.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doct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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