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오늘은 성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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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0.09. 오후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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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우리 교실에는 매일 아침 1교시 수업 시작 전 ‘아침 독서 시간’이 있다. 아이들은 관심 가는 책을 골라 책상에 앉아 읽는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각자 읽고 있는 책 세상으로 몰입한다. 누구는 탐험하고, 누구는 책 속 주인공이 되어 여행을 떠난다. 그때 내가 담임으로서 일종의 의식처럼 행동하는 것이 하나 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학급 모든 아이들의 머리를 한 명씩 쓰다듬어주며 지나간다.

5분 남짓이면 우리 반 25명 아이들의 머리를 도닥여주기에 충분하다. 교실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적어도 최소 한 번쯤은 누군가의 관심을 받았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표현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처음 며칠 동안, 아이들은 담임인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나갈 때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나를 올려다봤다. 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거나 부끄러운 시선으로 겸연쩍은 미소를 짓곤 했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아이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늘 있었던 일상의 한 단면이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읽고 있는 책에 빠져들어 집중한다.

한데 아이들이 의식하지 않고 책에만 빠져 있는 듯 보여도,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한번은 내가 실수로 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고 지나갔다. 잠시 후 아이가 뒤에서 나를 부른다.

“선생님, 왜 전 그냥 지나가요?” 아이들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듯했다.

어느 날은 평소처럼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1교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잠시 쉬는데, 영희가 담임 책상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한마디 한다.

“쌤, 오늘은 머리 쓰다듬어주시는 데 성의가 없네요!” 순간 무슨 말인가 했다.

“응? 이상하다~. 선생님은 평소처럼 똑같이 머리를 도닥여주고 지나갔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분명 늘 하던 대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지나갔지만, 평소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나의 손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보듬는 무게감은 분명 똑같았겠지만, 그날 내 머릿속은 온통 교장 선생님께 결재 맡을 급한 교육청 공문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의 직관적 사고는 무섭도록 정확하다. 그들은 손끝을 통해 마음의 무게를 읽는다. 자신들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무언가에 시선이 가 있는 순간을 정확하게 잡아낸다. 비록 그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고개 숙인 채 있어도, 그런 모습이 부모나 보호자인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그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건네주길 바란다.

아이들의 자존감은 어른들의 마음 가는 시선에 따라 결정된다. 교사, 엄마, 아빠, 양육자의 마음속에 정말로 아이가 있지 않으면, 그들은 ‘소외됨’을 바로 알아차린다. 아이들은 표면상 보이는 것에 속지 않는다. 그들은 진짜를 원한다.

오늘부터 아이와 함께 있을 땐, 아예 딴생각을 하지 말자. 정말 귀신같이 알아낸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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