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더 뱅커’ 채시라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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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5.23. 오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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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새 여성 캐릭터 창조한 배우 채시라
“저도 고3 엄마”…일과 가정 균형은 철저한 분리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아직 못 해봐
늘 대중과 소통하는 배우 되고파


당당한 여성 캐릭터를 확립한 배우 채시라.
지난 16일 종영한 드라마 <더 뱅커>(MBC)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 등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 한수지는 남성들이 판치는 금융권에서 고졸 출신으로 부행장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단단한 ‘유리 천장’의 단면을 보여줬다. 한수지 역을 맡은 배우는 올해 데뷔 37년 차인 채시라. 그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김상중, 유동근 등 실력파 배우들과 멋진 앙상블을 이룬 그의 연기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1982년 잡지 모델로 연예계를 발 디딘 그는 <서울의 달>, <여명의 눈동자> 등 시청률 40% 훌쩍 넘은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를 지난 16일 김성일 스타일리스트가 만났다. 정리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김성일(이하 김) 고등학생 때 데뷔했잖아요. 당시 놀라웠지요. 오현경, 김혜수, 하희라와 같은 최고의 여배우들 역시 광고 모델로 데뷔하던 시기였죠. 어떻게 데뷔를 하게 된 건가요?

채시라(이하 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운명은 타고 난 것 같다’고 답해요.(웃음) 그 시절, 올리비아 핫세(영국 배우)가 별책부록 표지인 잡지를 샀어요. 경품에 응모했는데, 당첨된 거예요. 상품을 타러 갔다가 캐스팅됐어요.

부모님이 굉장히 엄하셨을 거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일, 추억 삼아 한번 해 봐라’고 하시더라고요. 의외였는데, 그게 계기가 됐죠.

아무래도 전성시대 시작은 롯데제과의 ‘가나 초콜릿’ 광고였죠. 지금도 패러디할 정도로 당시 인기가 대단했어요. 연기는 1985년 <한국방송>(KBS)의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시작했죠?

그 광고는 제 인생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드라마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이죠. 잘할 자신도 없었죠. 선배들 연기 보고 많이 배워야겠다고만 생각했죠.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심했어요. 모든 것은 결국 정신력의 문제인 것 같아요.

<문화방송>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를 빼놓을 수 없어요.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죠. 우스갯소리로 방영 시간에는 도로에 차도 안 다녔다고 하잖아요. 시청률이 50% 넘었죠.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촬영한 2년 내내 다른 작품에는 출연하지 않고 집중했던 게 성공 요인이 아닐까 싶어요.

주인공 윤여옥은 당시 여성상과는 달랐어요. 어떤 계기로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모든 것이 다 우연이었어요. 방송국에 갔다가 다른 스태프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어요. 그 드라마 배우를 모집하는데, 엄청난 기회가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며칠 뒤 신기하게도 출연 제의가 온 거지요. 대학생 때라 살짝 고민했지만, 어머니께서 꼭 하라고 하셨어요.

이후 채시라는 <왕과 비>(KBS) 등에 인수대비로 출연해 사극에도 도전한다. “2011년 <인수대비>(JTBC)에서 같은 역을 했죠. 흔한 일은 아닙니다. 남성적이고 정치적인 <왕과 비>의 인수대비가 <인수대비>에선 인간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어요. 시대 변화를 실감했어요.”

드라마 <더 뱅커>에서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확립한 채시라.
드라마 <더 뱅커>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더 뱅커>에서도 그런 면이 있던 거 같은데요. 과거 작품은 물론, 지난해 끝낸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MBC)와도 달리 주도적으로 드라마를 이끄는 배역이 아니어서 놀라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 중 가장 제 분량이 적었던 작품이에요. 혼자 이끌어 가는 작품도 좋지만, 영화 <오션스 일레븐>처럼 여러 명이 하나의 인상적인 비주얼을 만드는 것도 좋더라고요.

데뷔 초기와 비교해 한국 여배우의 역할도 많이 달라졌죠?

맞아요. 하지만 이런 질문은 여전히 많이 받아요. 예전엔 결혼하면 주인공은 못 맡았죠. 나이 들면 고모나 이모 역할만 하게 되요. 이젠 아니에요. 여배우 선배들이 노력해서 우리 시대에 꽃을 피우는 것 같아요. 후배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작업하겠죠. 자신의 브랜드를 잘 관리한 여배우 선배들께 감사합니다. 저도 맡은 배역을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줬으면 해요. <착하지 않은 여자들>(KBS)처럼요.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묻자 <더 뱅커>의 엔딩 장면을 얘기한다. “한수지란 인물은 스스로 세상과 싸워 뭔가를 쟁취한 사람이죠. 행장이 못 된 게 아니라 안 한 거죠. 마지막 대사 ‘언젠가 다시 올지도...’, 그 말은 마음먹으면 충분히 더 많은 것 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난관이 와도 이겨내고 기회를 잡기를.”

채시라가 김성일 스타일리스트와 대화하고 있고 있다.


가정과 일, 균형은요? ‘고3’ 엄마라고 하던데, 스트레스도 있나요?

고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아이 둘인데, 일 안 할 때는 가정과 아이에게 전념해요. 일할 땐 집안 일을 잊고요. 철저히 구별하는 게 균형을 맞추는 비결 같아요. ‘고3’ 엄마 스트레스 당연히 있죠. <더 뱅커>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당시 작품 두 개가 들어왔는데 하나는 제가 이끄는 것이었죠. <이별이 떠났다>(MBC) 처럼요. 그걸 선택하면 엄마로서 직무유기란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후회할 거 같았어요. 세상에서 후회하는 게 가장 싫어요.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가 제 소신 중 하나랍니다.

그는 지난 월요일엔 대학입시 설명회에 갔다. 끝나고 여느 수험생 엄마들처럼 차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둘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 한 해부터 6년째 학교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주로 도서 봉사해요. 많게는 한 달에 한 번, 적게는 두세 달에 한 번, 학교 도서관 책 정리하고 스티커 붙이죠. 책 속에 있는 게 즐거워요.”

‘스승의 날’엔 명예교사로 수업도 했다. 다른 학부모가 주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면, 그는 동화책을 읽어줬다. 책은 <어린이를 위한 그릿>. “<그릿>(GRIT)을 읽고 감동해서 고른 책”이라며 “타고난 아이큐나 재능, 주어진 환경에 상관없이 내재적 동력으로 재능을 꽃필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그에게 건강관리 비결을 물었다. “아침밥을 꼭 먹는 것,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것”이라고 한다. 싱거운 답이다. 아무리 늦어도 오전 6시 전에는 일어난다는 그는 ‘아침형 인간’이다.

배우 채시라.


주변에서 ‘무한 긍정 아이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부모님이 엄청 긍정적이셔요. 아버지를 많이 닮았는데, 늘 ‘왜 해보지 않고 안 된다는 거야? 일단 해보고 안 된다고 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면 안 될 것도 되더라고요. 대학에 떨어졌을 때 힘들었지만, 이듬해 더 마음에 드는 학교에 붙었죠. 저의 이런 경험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편입니다.

문득 자녀 교육이 궁금하군요.

채 도덕성이 중요해요. 남이 보든 안 보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거죠. 리더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몸에 배여 있어야죠. 남을 속일 순 있어도 자신은 못 속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캐릭터를 소화했는데,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의외로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은 안 해봤어요. 새로운 역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늘 새롭고 특별한 ‘배우 채시라’를 보여주고 싶거든요. ‘변신에 능한 배우’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해요.

김 이미 톱스타로, 최고의 배우로 상도 많이 탔는데요, 지금도 소망하는 것이 있나요?

배우라는 직업은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는 배우로 살고 싶어요. 대중과 늘 소통할 수 있는 배우,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가장 감동한 책은 뭐냐고 물으니 “대본이 내겐 최고의 책”이라고 한다. 천생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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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시라 프로필



1982년 <학생중앙> 잡지 표지 모델로 데뷔.

1984년~1988년 롯데제과 ‘가나 초콜릿’ 광고 모델로 발탁된 뒤 롯데제과 광고 모델로 활동.

1985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연기 데뷔.

1988년 <문화방송>(MBC) 단막극 <베스트셀러 극장 ? 샴푸의 요정>에서 신애리 역.

1990년 <문화방송>(MBC) 미니시리즈 <거인> 서경진 역으로 <제26회 백상예술대상> 티브이(TV) 부문 여자 신인상 수상.

199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윤여옥 역으로 <문화방송(MBC) 방송대상> 최우수 연기상, <제28회 백상예술대상> 티브이(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수상.

1994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서울의 달> 차영숙 역으로 <문화방송(MBC) 방송대상> 대상 수상.

1995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아들의 여자> 김채원 역과 <아파트> 나홍두 역으로 <문화방송(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

1995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로 영화 데뷔.

1999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왕과 비> 인수대비 역으로 <한국방송(KBS) 연기대상> 대상 수상.

2011년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인수대비>에서 인수대비 역.

2019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더 뱅커>에서 한수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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