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아하
인수대비.
swan**** 조회수 41,636 작성일2003.08.26
잘 알려진 대비들 중에는 인수대비가 있는데..

왜 인수대비는 소혜왕후란 이름보다 인수대비란 이름으로 더 잘 불릴까요?

혜경궁 홍씨도 세자빈의 자리에 있었지만

결국 혜경궁 홍씨로 죽고 나중에 경의왕후로 추존되었죠.

정순왕후나 다른 왕후들도 대비노릇은 많이 했지만

무슨 대비..라고 불리기보다는 무슨 왕후라고 더 잘 불리고..

대비들 중에 인수대비만 유명한 이유?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ktk0****
고수
한국사 86위, 사회, 도덕 65위, 국어, 한문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왕후란 원래는 죽은 다음에 추존으로 이름(묘호)을 받게 되는데..
소혜왕후의 경우에는 남편 덕종이 추존될 때 함께 왕후에 책봉되었습니다.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들은 일반적으로 종묘에서 쓰이는 묘호로 불려집니다.
소혜왕후 한씨는 연산군과의 대결구도를 이루는 대비 시절이 부각되는 여인입니다.
현 대비인 인수대비와 현 왕인 연산군의 일화들은..
그녀를 소혜왕후 보다는 인수대비로 역사속에서 더 기억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의 경우는 경의왕후라는 이름보다는..
불행하게 죽은 남편 사도세자를 먼저 보내고, 한 서린 일생을 혜경궁에서 보냈고..
혜경궁, 바로 그곳에서 궁중문학의 대표작인 회고록 한중록이 나왔으니..
혜경궁이라는 궁호 자체가 그녀의 일생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에서 왕후보다는 대비로 더 잘 알려진 여인으로 인목대비가 있습니다.
광해군과 북인에 위해 아들 영창대군을 잃고, 서궁에 유폐 당하여..
수모의 생을 살았던 그녀는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대비에 복호됩니다.
대비라는 위호를 다시 찾았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지난 세월의 굴곡을 대변해 줍니다.

2003.08.26.

  • 채택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