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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연산군과 인수대비 대립 당시,,,,,
boyo**** 조회수 10,233 작성일2004.11.17
연산군과 인수대비의 대립당시

시대적 상황이 어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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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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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대비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 세종의 큰 아들 의경세자(덕종)와 혼인을

합니다.

후사로는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성종)이 있습니다.

아무튼 인수대비는 연산군의 할머니 정도가 되네요.


인수대비와 연산군의 대립은 솔직히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질투로

시작됩니다.


폐비 윤씨는 연산군의 생모로 성종의 눈에 들어 연산군을 낳고 중전의 자리로

까지 갑니다.

하지만 성종이 다른 후궁들의 처소에 발을 놓는 날이 많아지자 성종의 후궁들을

독살할 요량으로 극약인 비상을 숨겨두었지만 들켜 중전의 자리에서 빈으로

강등될 뻔 했지요.

하지만 성종이 세자 융(연산군)의 생모인지라 그 일만큼은 묵과를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질투는 그치지 않아 마침내 만백성의 어버이인 임금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남깁니다.

이 일은 직접적으로 윤씨의 폐출 요인이 되자 연산군과 인수대비의 대립의 빌미를

제공한다고 할 수있습니다.

아무튼 성종의 화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무었보다도 인수대비의 화는 극에

달해 있었지요.

결국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비를 시키게 되죠.

이때 세자 융은 어린 나이때라 어머니가 폐출 되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윤씨 후에

중전에 오른 정현왕후에 의해 길러지게 됩니다.

그리고 윤씨는 사가로 내려가 지내다가 후일 연산군의 재 등극을 염려한 사람들

에 의해 인수대비와 여러 후궁의 계략에 의해 결국 윤씨는 사사됩니다.

아무튼 19세,12월에 왕의 자리에 오른 연산군은 1498년 무오사화를 일으켜 많은

사림을 제거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정권을 장악한 임사홍이 윤씨의 폐비에 대한 자세한 속내를 말합

니다.

그리고 그 내막의 관련자들을 모두 제거 해 버리는 갑자사화를 일으키죠.

이때 결국 인수대비는 연산군에 의해 죽게 되고 성종의 수 많은 후궁들과 자식들

을 제거 합니다.


결국 인수대비와 연산군의 대립은 연산군의 어머니,폐비 윤씨의 죽음으로 일어나

고, 대립이 지나쳐 결국은 사화와 인수대비의 죽음 까지 연결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아무튼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이해가 안 가시는 점은 쪽지라던지 메일 보내주시면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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