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늦바람이 무섭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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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바람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절대 불어서는 안 될 늦바람인 애정과 관련한 것이 있는가 하면, 최근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영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처럼 취미 생활이나 자기개발로 젊었을 때 못했던 걸 새롭게 발견해서 즐긴다는 의미에서 늦바람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동치미’ 패널들이 겪었던 늦바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난 25일 ‘동치미’에서는 늦바람에 대한 토크와 함께, 깜짝 게스트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나이 80에 힙합을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 배우 김영옥

“연기 인생 60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맡은 역할은 할머니였다. 내 나이 서른에 처음 할머니 연기를 했고, 가난한 할머니부터 인자한 할머니, 억세고 무서운 할머니, 부잣집 할머니 등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할머니 연기를 해봤다. 그러다가 2004년 ‘올드미스 다이어리’라는 시트콤에서 욕 잘하는 할머니로 출연했는데, 그게 사람들 인상에 크게 남았는지 다들 ‘욕쟁이 할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라. 그렇게 십수 년을 욕쟁이 할머니로 살아온 나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바로 ‘할미넴’이다. 할머니와 래퍼 에미넴을 섞은 신조어인데, 2016년에 출연한 힙합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 별명을 얻게 됐다.

나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자고로 그 음악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해줄 건지 알아야 하고, 누구든지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랩은 주절거리기만 했지 당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힙합 프로그램에 내가 출연을 하게 되면서 점점 겁이 났다. 가짜로라도 박자에 맞춰서 내지르길 해야 하는데 어두컴컴한 공연장에 빠른 템포의 음악까지 더해져 앞이 깜깜했다. 그렇게 매주 경연을 해나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조금이라도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힙합이라는 음악을 조금씩 알게 됐다. 그 후 힙합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이 어떤 콘셉트로 자기 한을 토로하는지 알 것 같다. 몸에 기운이 없어도 랩을 들으면 몸을 들썩들썩하게 되더라.

그리고 도끼, 넉살, 딘딘, 비와이 등 젊은 래퍼들을 만나고 그들을 알게 됐다는 것이 내 인생의 플러스가 된 것 같다. 함께 경연하던 몬스타엑스 주헌 군은 일본 팬 미팅 중에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이전 같으면 ‘저희 엄마가 좋아하세요’, ‘저희 아빠가 팬이에요’라고 하던 젊은 사람들이 ‘랩 좀 해주세요’, ‘저희 할머니 같아요’라고 응원해준다. TV를 보는 내 또래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마음껏 해보라고 응원하고 싶다.”

‘동치미’에 등장한 깜짝 손님

대한민국‘늦바람’열풍의 주인공들


첫 번째 게스트 ‘할담비’ 지병수



▶Q. 요즘 인기 제대로 실감하고 계시죠?

종로구 관공서 직원들이 ‘전국노래자랑’에 나가면 적어도 인기상을 받을 것 같다고 해서 그냥 재미로 한번 출연했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다. 길을 지나갈 때 사람들이 알아봐 주시거나 식당에서 주인들이 반찬을 더 줄 때 인기를 실감한다(웃음). 얼마 전에 개설한 유튜브 조회수도 200만이 넘었다.

▶Q. 춤과 노래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과거에 전통무용을 했는데, 대학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와서 옷 장사, 술장사를 했다. 그때 우연히 이매방 선생님 제자인 임이조 선생님을 만났는데, 나한테 끼가 있다고 국악을 도와달라고 해서 일본에 가서 7~8년 동안 공연을 하면서 살았다.

▶Q. 그럼 계속 이쪽 분야의 일을 하셨던 건가요?

과거에 명동이랑 청담동에서 옷 가게를 해 돈을 좀 벌었다. 그러다가 IMF가 터지면서 아파트 하나 날리고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한 달에 50만 원 조금 넘게 나와서 30만 원으로 월세를 낸 뒤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고, 봉사 다니면서 조용히 살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간 이후로 방송도 하고 광고도 찍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서 정말 재미있다.



▶Q. 이슈가 되고 나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결혼을 안 해서 아내는 없다. 아마 아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양아들 둘이 있는데, 현재 52세, 49세다. 양아들과 중학교 3학년 손주랑 같이 살고 있는데, 손주가 유명해진 나를 엄청 자랑스러워 한다(웃음).

두 번째 게스트 ‘시니어 모델’ 김칠두, 최순화



▶Q. 겉으로 봐서는 나이가 가늠이 안 되는데, 실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김칠두(이하 김) 65세다.

최순화(이하 최) 77세다.

▶Q. 어릴 때부터 모델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김)어릴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아서 고등학교 졸업 후 누나 의상실 일을 도우면서 국제복장학원에 잠깐 다녔다. 1977년에 ‘한양모델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집이 넉넉지 않아 먹고 살기 위해 꿈을 접어야 했다.

(최)아버지께서 축음기를 사다 주시고 노래도 부르게 하고 잡지도 사와서 보게 하셨다. 그러면서 모델 일을 동경하게 됐고, 남몰래 워킹 연습도 하고 그랬다.

▶Q. 어떻게 모델 일을 다시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김)결혼을 한 후 돈이 되는 일은 다 했다. 쌀 도매, 연탄 배달, 과일가게 등. 그러다가 여유자금이 생겨서 순댓국집을 하다가 사업이 망했고, 빚이 생겨서 2017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더라. 그러다가 딸의 권유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

(최)60대에 지인한테 큰 돈을 빌려줬는데, 잘 안 됐다. 그 뒤로 6년 동안 간병인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고, 분노가 가슴에 들끓었다. 그때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TV에 시니어모델 학원에 대한 정보가 나와서 등록하게 됐다.

▶Q. 모델 일을 하기 위해 한 노력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또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요?

(김)모델은 체력이 좋아야 하더라. 헬스와 스트레칭으로 체력 관리도 하고 모델 워킹이나 포즈 연습도 하고 있다. 또, 해외진출을 위해 외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 세계 4대 패션위크에 한국 시니어 모델 대표로 서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영화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최)처음 모델 학원에 들어가서 5년 동안 워킹과 포즈를 배웠다. 이와 더불어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된 흰 머리를 예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아직은 시니어 모델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다. 시니어 모델들에게 많은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고, 세계무대에도 나가고 싶고,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다. 많은 무대와 방송에 나가서 ‘우리나라에 저런 시니어 모델이 있었나?’할 정도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모델이 되고 싶다.

[글 이승연 기자 자료제공 MBN]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1호 (19.06.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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