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 짜기

김동수 기자 | 기사입력 2014/12/30 [00:56]

가마니 짜기

김동수 기자 | 입력 : 2014/12/30 [00:56]
▲ 경남과기대 허익구 교수시사우리신문 논설주간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밤낮으로 가마니 짜는 것이 우리 집의 일과였다. 어른들은 가마니를 짜고 아이들은 뒤쪽에 앉아 새 끼를 꼰다. 보통은 하루에 한 죽씩 짰다. 낮에 다른 볼일이라 도 있으면 밤이 늦도록 가마니를 짜야했다.


가마니틀에 둥근 나무뭉치로 만든 바디의 구멍사이로 날줄인 가는 새끼를 끼워 걸면 가마니 짜기가 시작된다. 힘센 사람이 왼쪽에 앉아 바디 를 잡고 오른쪽에는 씨줄을 담당하는 사람이 석자가 넘음직한 대나무를 자를 들고 나란히 앉는다.


우리 집에는 언제나 아버 지께서 바디를 잡으시고 어머니는 긴 대나무 잣대를 잡으셨 다. 바디를 들어 올려 날줄이 서로 교차하도록 손잡이를 젖히 면 어머니는 팔을 벌려 긴 자의 끄트머리에 지푸라기 한 올을 접어, 바디 밑의 교차로 벌려진 날줄 사이로 밀어 넣는다. 날줄사이에 낀 씨줄은 바디로 내리쳐서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채워진다.


짚이 한쪽방향에서만 들어가면 가마니의 좌우높이가 달라지므로 한줌을 왼쪽에서 밀어 넣었으면 한줌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끌어와야 한다. 오른손으로 바디의 자루를 잡고 왼손으로는 한줌의 짚을 잡아 한 올씩 먹여주면 갈고리처럼 된 대나무자의 한쪽 끝이 재빠르게 지푸라기를 물고 낚아채서 끌어온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가끔씩 밀어 넣은 대나무자가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바디가 내려오면, 갈고리처럼 된 대나무 잣대의 뾰족한 귀에 엄지손가락이 찔려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반창고로 싸 메어져 있었다. 그때마다 아파하며 잔소리를 쉬지 않던 어머니와 아무 말 없이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감아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경스럽기만 하다.


탈진 상태로 생사를 헤매던 아버지에게 상상할 수 없는 정성으로 건강을 되찾게 한 어머니의 지아비에 대한 사랑은 헌신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뜨셨을 때 아버지께서는 늘 어머니에 대한 회환과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듯 했다. 눈물을 참고 어머니의 묘를 다듬으시며 ‘나를 살리고 임자가 먼저 갔구려!’하시는 아버지의 혼자말에서, 가마니틀 앞의 말싸움은 사랑싸움인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오늘도 수십 년이 된 낡은 가마니바디를 닦으며 어릴 때는 몰랐던 가르침이 없는 교육을 가만히 되씹어본다.<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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