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의 시대에 재발견되는 절밥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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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현주 기자, 부처님 오신 날 앞두고 사찰 음식 체험하다

육신을 유지할 정도만 먹고

재료 재배, 요리·식사까지

절제의 미학이 지배하는 음식

사찰 음식 강의마다 매진 사례


은평구 진관사에 오르면 마당 한켠에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가 손님들을 맞는다.


얼마 전 지인 어머니가 급성 위염으로 새벽에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고 했다. 며칠 입원 끝에 담당 의사는 “(종교를 떠나) 평생 본인이 스님이란 생각으로, 절밥 먹듯 식사하라”는 최종 처방을 냈다. 두 달 전 서울의 한 사찰에서 발우공양(절에서 여러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밥그릇인 발우에 자기가 먹을 만큼만 음식을 담아 남김없이 먹는 것)을 처음 체험했던 기자는 사연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찰식 저녁 한 끼가 기대 이상으로 심신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사찰전문음식점 ‘발우공양’ 사찰 음식


사찰전문음식점 ‘발우공양’ 디저트


사찰 음식으로 몸을 다스리는 사람들

지난 반세기, 가장 진화한 인간의 장기를 하나 꼽는다면 ‘위장’이 아닐까 싶다. 텔레비전을 켜면 식욕을 부추기는 장면이 가득하고, 유튜브 채널마다 과식과 폭식 내기를 해온 지 오래다.

죽죽 늘어나는 대로 환호를 받았던 위장도 한계 신호를 보인다. 지난 3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4명 가운데 1명은 위장 질환을 앓는다. 원인은 빨리 먹는 식습관, 과식과 폭식 습관, 지나치게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섭취, 음주, 흡연, 스트레스 등으로 꼽혔다. 한국인의 위암 발병률은 세계 1위다.

가지구이


도라지들깨찜


사찰 음식은 육신을 유지할 정도로 적당한 양만 먹고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사찰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을 일컫지만, 불가에서는 재료 재배부터 요리와 식사, 뒷정리까지 수행의 연장선으로 보기에 ‘지혜를 얻기 위해 먹는 음식’이라고도 풀이한다.

기본으로 돌아간 ‘절제의 미학’이 통한 걸까. 종로구에 있는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선 매월 여는 사찰 음식 강좌가 매진 행렬이다.

특화 사찰, 전문식당…사찰 음식 기행

5월12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산중 청명한 공기 속에서 탁발(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과 발우공양의 의미를 더불어 체험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채비를 갖춰 도심 속 사찰로 떠나보자.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절에서 언제든 사찰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그 가운데 북한산 자락인 은평구 진관사에서 선보이는 사찰 음식은 처음 ‘절밥’을 먹는 사람도 편견을 거둘 만큼 평이 좋은 편이다.

칡넝쿨국수


들깨된장쑥국


마당에 줄 맞춰 앉은 장독대 풍경에 먼저 눈이 호강한다. 2009년 진관사 산사음식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사찰 음식을 국내외에 알리면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음식 명장 2호로 선정된 계호 스님이 ‘음식은 식욕으로 먹는 게 아니라 육신을 지탱하고 도업을 이루기 위한 약’이라는 가치로 육류, 생선, 오신채(자극성 있는 다섯 가지 채소류, 마늘·파·부추·달래·양파)를 쓰지 않는 수행식을 선보인다. 조청과 버섯, 다시마, 들깨 등으로 간을 하고, 된장과 간장 효소를 활용해 내놓는 밥상은 제철 재료의 숨은 맛을 한껏 끌어올렸다. 당일형 템플스테이 ‘자연을 먹다’ 혹은 1박2일형 템플스테이 ‘마음의 휴식’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찰 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

입산은 부담스럽고 오늘 점심 한 끼부터 바꿔보고 싶다면, 도심의 사찰전문음식점을 찾아가도 좋다. ‘발우공양’(종로구 우정국로 56)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찰 음식 전문점이다. 절에서 전승된 전통 조리법으로 사찰 음식 원형을 선보인다. 올봄에는 복분자청과 방울토마토로 입맛을 살리며 시작하는 ‘선식’부터, 조리 시연과 음식 설명을 들으며 여러 가지 사찰 음식을 맛보는 ‘법식’까지, 다양한 계절 메뉴를 준비했다.

고수무침


미나리들깨찜


집에서 만들어 먹는 사찰 음식

집에서 바로 해먹는 방법도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운영하는 사찰 음식 누리집(www.koreatemplefood.com)에선 계절별, 식재료별, 명절 음식 등 분류별로 내게 맞는 사찰 음식 조리법을 소개한다.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선 ‘월별 사찰 음식 강좌(4주)’와 ‘사찰 음식 1일 체험’ 등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사찰 음식을 집에서도 응용해 먹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내·외국인에게 활짝 열린 공간은 계절별 사찰 음식 요리책 등을 한국어와 외국어로 마련해두었고, 한국 전통 사찰 공양간을 재현하는 등 사찰 음식 관련 전시를 꾸준히 연다.

사찰식 비빔밥, 두부스테이크 등 ‘계절이 깃든 사찰 음식’ 월별 강좌와 뿌리채소밥, 죽순탕수이, 장아찌 만들기 등 ‘3소식 사찰 음식’ 특강이 있으며, 예약은 수강하는 달을 기준으로 한 달 전에 받는다. 문의 02-733-4650

더 체계적인 배움을 위해 사찰 음식 전문교육관인 ‘향적세계’에서는 초·중·고급별 사찰 음식 정기 강좌(12주)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24일까지 접수한다. 문의 02-2655-2776.

냉이된장죽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 각 사찰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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