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이중위험 금지 / 정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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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동일 인물에 대해 살인 혐의로 일단 유죄를 받았다면 두번째 살인은 범죄 성립이 안 된다.” 1999년 국내에 상영된 <더블 크라임>은 이런 재미있는 법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남편 살해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고 복역하던 부인은 우연히 남편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남편이 음모를 꾸며 자신을 살인자로 만든 것이다. 전직 변호사로부터 “이미 남편 살인 혐의로 유죄를 받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남편을 다시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조언을 받은 부인은 남편을 권총으로 사살한다.

물론 유죄판결을 받은 첫번째 살인은 사법부의 오판으로 인한 것이기에 두번째 살인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누구라도 동일한 범행으로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재차 위협받지 않는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5조가 있다. ‘이중위험 금지 원칙’으로 불리는 이 조항은 국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같은 죄로 두 번 기소당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법 논리다. 영미법계의 이중위험 금지 원칙은 국가 형벌권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대륙법계의 일사부재리 원칙과 비슷하지만 이중위험 금지 원칙이 훨씬 적극적이고 포괄적이다. 일사부재리 원칙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을 다시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이중위험 금지는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면 검찰이 항소할 수 없다는 것까지 포함한다. 미국 등이 그렇다.

대륙법계인 우리는 피의자나 검찰 모두에게 3심을 보장한다. 피의자 권리 못지않게 국가 형벌권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명숙 전 총리 수사에서 보듯 검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사건으로 무죄가 나면 종종 별건수사를 벌여 끝까지 유죄판결을 받아내려 한다. 우리 국민은 국가권력의 ‘이중위험’이 아니라 ‘무한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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