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5일 비싼 미제분유의 시커먼 속내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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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6.05. 오전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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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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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79년 6월5일 시중 유통되던 미제분유 정체는

어릴 적 저희 집 안방에는 ‘외제’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습니다. 테이프 두 개가 들어가는 더블데크였는데, 스피커 부분이 매우 커서 꽤 무거웠습니다. 알파벳 까막눈 시절이어서 브랜드조차 가물가물합니다만, 아버지께서 고장나면 못 고친다고 주의를 주시던 건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보따리상에게 꽤 큰 돈을 주고 사지 않았을까 싶어요.

‘외제’ 하면 무조건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그 시절 그 외제들이 다 진짜였을까요? 4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수억원 어치의 가짜 외제분유, 화장품 등을 만들어 팔아온 업자들이 구속됐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울지검 특수3부는 이들이 만든 가짜 화장품과 외제상표 8만여 장, 가짜 미제탈지분유 2000여 부대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들 중 ㄱ씨는 1년여 전부터 집에 비밀공장을 차려놓고 사료용 전지분유와 콩가루 등을 원료로 인조분유를 만들어 미제탈지분유라고 속여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가짜 분유 2억 5920만원어치를 서울남대문시장 안 도깨비시장 등 외제상품 암시장에 팔아왔다고 합니다.

ㄱ씨는 또 해외 브랜드 로고를 도용해 가짜 화장품도 만들었습니다. 일본산 도아루, 미국산 맥스펙토, 프랑스산 그리오데사 등 상표를 붙인 립스틱, 스킨로션, 레몬로션, 파운데이션 등이 싯가 8000만원어치 정도였다고 합니다.

함께 구속된 ㄴ씨도 2달 전부터 집에서 국산 인조분유를 사용해 만든 가짜 미제 탈지분유 1800만원어치를 팔아왔습니다.

1979년 6월5일자 경향신문 7면


검찰은 이들로부터 물건을 받아 팔아온 전문중간상인들, 일명 ‘여수개구리아줌마’ ‘인천아줌마’ ‘왕벌’ ㄷ씨 등도 수배했다고 밝혔습니다. 90년대 나이트클럽 웨이터 이름 뺨치는 이들의 별명에 왜 여수, 인천이 등장했을까요?

서울에서 만들어진 이 가짜 미제분유와 외제 화장품들은 일단 여수·부산·인천 등을 꼭 거쳐야했습니다. 당시 여수·부산·인천 등 항구 인근에는 밀수품이 많이 나돌았습니다. 덕분에 가짜 물품들도 그곳에서 밀수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죠. 항구에만 다녀오면 ‘외국산’이 되는 기적이랄까요? 이렇게 가짜 밀수품들은 다시 서울과 강원·광주·부산·대구·전주·인천 등 전국 각지로 팔려나갔습니다.

젖소 송아지들에게 전지분유를 먹이고 있는 모습(1998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당시 시중에서 팔리고 있던 미제 탈지분유가 모두 가짜였다고 밝혔습니다. 고급 미제분유를 먹이려던 부모들은 비싼 돈을 치르며 값싼 전지분유와 콩가루를 아이에게 먹인 셈이 되었네요.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요즘. 출산율은 감소하지만 유아용품 시장은 매년 성장한다고 합니다. 특히 유아용품은 비쌀수록 잘 팔리는 제품군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유행에 민감한 것도 있고, 비쌀수록 품질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더 믿을 만할 거라는 기대 덕분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그리 싸지 않은 상품들이 ‘국민 ○○’이라는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립니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 기저귀에서 유해물질이 나오고, 보통 물티슈의 2배 이상 가격으로 팔리던 고급 물티슈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한 세균이 검출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사기꾼들은 예나 지금이나 왜 이리 많은 걸까요?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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