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에 가려진 독립투사’ 김원봉 평가 바꾼 세 명의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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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6.10. 오전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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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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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은 영화 '암살' 조승우, '밀정' 이병헌, 드라마 '이몽' 유지태 등으로 등장해 대중들에게 '항일 독립운동가'라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1898~1958)을 언급하며 그가 창설한 독립무장부대를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 중 하나로 평가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국가 행사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의 공적을 거론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유공자 지정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김원봉의 공적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8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며 그동안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제에 맞서 무장항일운동을 펼친 약산 김원봉


김원봉은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경력 탓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라는 평가를 받아 그동안 보훈처의 국가유공자 선정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국내에서 반쪽짜리 평가를 받았다.

일반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항일 무장독립운동가’ 김원봉의 행적이 대중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영화 ‘암살’과 ‘밀정’ 덕분이다.

2015년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에서는 배우 조승우가 김원봉 역으로 출연했다. 김원봉은 영화에서 의열단 단장으로 소개되면서 애국 투사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 내 영화, 드라마에서 김원봉에 대해 의미 있게 다룬 작품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해방 후 친북 행적 때문에 그동안 방송, 영화 등에서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터부시됐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김원봉은 “선생께 전하시오.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란 짧은 대사로 거물 항일운동가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특히 당시 김원봉의 현상금이 100만원으로, 백범 김구의 현상금 60만원보다 많았다는 사실이 묘사되면서 김원봉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100만원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20억원 수준이다.

다음 해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에서는 배우 이병헌이 김원봉을 모티브로 한 가상 인물 ‘정채’을 연기해 무장 항일투쟁을 이끈 리더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영화에서 정채산은 배포가 크고 무게감 있는 인물로 영화에서 다뤄지는 의열단의 작전 모두를 그가 계획한 것으로 나온다. ‘밀정’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의열단원이 추진했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김원봉의 생애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문화계에서도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이 제작되고 있다.

최근 MBC에서 방영 중인 토요드라마 ‘이몽’도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몽’은 실제 역사와 픽션을 섞은 ‘팩션 드라마’로 배우 유지태가 김원봉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유지태가 연기하는 김원봉은 의열단을 이끄는 리더보다는 신출귀몰한 행동력으로 적진 곳곳에 잠입해 직접 사건을 해결하는 ‘히어로’에 가깝다. 극 중 김원봉은 불같은 가슴과 행동력의 소유자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방식에 반감을 갖고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김원봉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그는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 일제 수탈 기관 파괴와 요인암살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과 군무부장도 지냈다.

하지만 해방 후인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을 하면서 본격적인 사회주의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같은 해 9월 북한 초대 내각의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6·25 전쟁 때는 ‘군사위원회 평북도 전권대표’로 활동하다가 1952년 5월 국가검열상에서 로동상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조국해방전쟁(6·25 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도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내다가 1958년 김일성의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김원봉은 이런 북한에서의 활동 탓에 그동안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서훈 확대를 시도하면서 김원봉 서훈 여부가 쟁점이 됐지만, 보수진영이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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