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들, 재미+감동 잡고 ‘좋은 예능’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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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6.07. 오전 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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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4부작, 평균 78살 문해학교 할머니들
20대 짝꿍들과 함께 한글 공부
될까? 싶었던 황금시간대 편성
첫 방송만에 호평 ‘정규편성’ 요청 쏟아져

개가 ‘공공’ 짖고 찌개가 ‘볼글볼글’
“할머니들 글씨엔 많은 감정 있어”
영화 ‘칠곡 가시나들’ 시리즈처럼
권성민 피디 “따뜻한 웃음 만들고파”


문화방송 제공
“노인들만 나오는데 괜찮을까?” 지난 19일 시작한 4부작 맛보기(파일럿) 프로그램 <가시나들>(문화방송)은 우려 속에 출발했다. 일요일 오후 6시45분. 예능 프라임타임에 주인공이 할머니들이라니. 예능국에서조차 반신반의했다. 첫회가 나가자마자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사생활을 파는 등 자극적인 예능들 사이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았다는 호평이 쏟아진다. 지난 2일 서울 연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권성민 피디는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시나들>은 평균나이 78살의 경남 함양군 문해학교 할머니들과 20대 연예인으로 구성된 ‘애기 짝꿍’들이 함께 한글 공부를 하며 소통하는 이야기다.

권 피디는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쓴 글씨를 인터넷에서 보고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한다. “노년에 한글을 익힌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해’처럼 보면 웃음이 나지만, 한글을 배우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역사가 저 몇 글자 안에서 느껴지는. 할머니들의 글씨는 많은 감정이 들게 만든 하나의 콘텐츠였죠.” 비슷한 아이템인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예 김재환 감독에게 제안해 영화의 시리즈처럼 만들었다. <가시나들>은 <칠곡 가시나들> 제작사에서 만든다. 영화와 달리 젊은 세대가 노년층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기 위해 20대 ‘짝꿍’들을 출연시켰다.

김재환 감독한테 정보를 얻어 함양 문해학교를 찾았다. 일반적으로 문해학교들은 10명 내외가 마을 회관 등에서 공부하는 것과 달리 함양은 할머니들이 진짜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립학교에서 공간을 따로 두고 있다. 15명씩 두 학급이 운영 중인데 프로그램을 위해 특별반을 만들었다. 이를 제외하면 실제 함양 문해학교 수업 과정을 고스란히 따랐다. “할머니들이 비연예인인 만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스태프들한테도 어떤 요구도 하지 말라고 했죠. 20대 짝꿍들도 실제 조부모와 살았거나 관계가 끈끈한 이들로 섭외했어요.” 4월 초 이틀씩 두번 촬영했는데, 할머니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려고 촬영 두달 전 매주 내려가 함께 지냈다. 그래서 <가시나들>은 일상을 그대로 담는 게 특징이다. 할머니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밥 해 먹고 숙제한다. 멀뚱멀뚱 카메라를 쳐다보며 서 있는가 하면, 촬영 중에 제작진을 다 불러 밥을 먹이기도 한다. 다른 예능프로그램 같았으면 편집됐을 장면들은 프로그램을 되려 살렸다.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한다.

권 피디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할머니들이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보통 노년층 콘텐츠를 다루면 서러운 세월을 견디고 산 과거 이야기를 많이 보여주잖아요. 실제로 상당수 할머니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얘기하세요. 하지만 지금도 하루하루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현재의 존재로 비치길 바랐어요.” 그래서 문학시간에 시를 쓰면서 “영감의 꽃으로 살고 싶다”고 쓴 구절이나 “결혼은 해야지”라고 말하는 등 지금 젊은 세대가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말들도 그대로 녹여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시대의 피해자였는데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그것 때문에 시달리고 고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내재화돼서 벗어나면 큰일난다고 생각하고 사셨으니까요. 촬영 중간중간 그런 모습들이 보여지면 생각이 많아졌어요.”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른 짝꿍과 애기 짝꿍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돕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나오는 게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오히려 어른 짝꿍들에게 받는 게 많다. 할머니들의 글씨는 오히려 젊은 세대인 우리가 정해진 틀에 박혀 산 건 아닐까, 곱씹게 만든다. “개 짖는 소리를 적으라”는 말에 ‘공공’이라고 쓰고, “여행 가기 전에 가슴이 어떻게 뛰어요?”라고 물으면 ‘콩닥콩닥’ 등이 아닌 “그래서 약을 묵고 댕기지”라고 답한다. 웃음이 나지만 뒤통수를 치는 한방이 있다. 권 피디는 “전 가장 의아한 의성어가 바로 멍멍이에요. 들어보면 개는 ‘멍멍’ 거리지 않거든요. ‘컹컹?’ 어쩌면 할머니들이 쓰신 ‘공공’이 맞을지도 모르죠.” 프로레슬링을 즐겨보는 등 우리가 몰랐던 노년의 삶도 눈을 크게 뜨게 한다. “실제로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할머니들이 많아요. 노인을 무성의 존재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깼으면 하는 생각에 할머니들이 화장하는 장면도 담았어요.”

<가시나들>은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문화방송> 예능의 가치, 이전에 <칭찬합시다>나 <책을 읽읍시다>가 줬던 재미와 공공성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시청률이 3%대로 화제성만큼 수치가 높지는 않다는 이유로 정규 편성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만든 권성민 피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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