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통령 최측근 행보와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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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楊원장의 거침 없는 광폭 행보

자의半 타의半 외유 금의환향

국정원장과 차기 주자群 면담

역대 정권 실세의 운명은 비슷

권력 쏠린 만큼 뒤탈도 더 커져

國政 성공 아닌 차기 놀음 빈축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기관인 민주연구원의 양정철 원장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의 만남도 그의 동선을 추적하던 기자에 의해 적발됐다. 민주당 회의에서도 카메라 기자들의 앵글이 이해찬 대표나 이인영 원내대표가 아닌 양 원장에게 집중된다.

이 정도 상황이 되면 아무리 핵심 실세라고 해도 자제하는 것이 상례인데 양 원장은 더욱 거침이 없다. 민주연구원과 지방자치단체 연구원의 업무 협약이라는 빌미로 지난 3일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만나 ‘소중한 자산’ ‘획기적 발상과 담대한 추진력’ 운운으로 평가한 데 이어 곧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만날 계획이다. 친문 세력 내에서 ‘안티’가 심한 이 지사와는 저녁까지 함께했고, 이 지사는 양 원장 만남 이후 이튿날 SNS에 지지자들을 향해 “차이를 넘어 단결해야” 한다는 통합의 메시지를 띄웠다. 친문 핵심 양 원장과 비문(非文)인 이 지사의 만남이 효과를 낸 셈이다.

국회의장, 국정원장에 이어 여권의 대선 주자 후보군까지 양 원장 ‘위세’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측근은 양 원장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 김경수 경남지사,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 4명을 꼽는다. 이 중에서도 양 원장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그가 문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운명’이라는 책을 기획해 견인하고, 당 대표에서 대선 후보로 끌어올리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인사가 지난 대선 때 양 원장에게 줄을 댔지만, 그는 해외로 떠났다. 본인은 스스로 떠났다고 하지만 문 대통령이 양 원장에게 쏠린 힘과 각종 인사 청탁이 부담스러워 의도적으로 멀리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자의 반 타의 반’ 외유였지만 지금 그의 파워는 2년간의 희생적인 칩거 생활이 가져다준 ‘보상 효과’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 실세·측근의 뒤끝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이기붕, 김형욱, 이후락, 장세동, 박철언, 김현철, 이상득, 그리고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 의원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측근’은 찾기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실세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던 박지원 의원이 “재벌은 자식이 원수고,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라고 한 얘기는 현실감이 있다. 권력이 한곳으로 쏠리면 탈이 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양 원장이 원하지 않더라도 내년 4월 총선의 여당 공천은 민주연구원에 달렸다는 시선은 피하기 어렵다. 전략통인 이철희 의원과, 민정비서관을 지내 그 누구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 백원우 전 의원, 여론조사 전문가인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이 부원장으로 포진한 것이 시사하는 바 크다. 3선 이상 비문 중진들이 벌써 떨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2016년 총선 때 180석까지 장담한 새누리당이 한순간에 몰락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발언과 진박 감별사 소동이 빚은 결과였다. 국정 성과보다는 계파의 이익을 앞세운 선거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여권 내에서 양 원장의 행보를 우려의 시각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이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라면, 총선은 정부를 심판하는 것이다. 경제 실정에 대한 응집투표의 가능성이 크다. 경제 수치들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문 정권은 경제 실정의 이슈화를 덮기 위해 특단의 카드가 절실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성사돼 ‘평화가 경제’라는 프레임을 만들면 최선이겠지만 현재로썬 난망하다. 이 때문에 범여 승리를 안겨줄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폐 청산과 집권 후반기 관리를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절실하다. 여기에 양 원장은 동분서주하며 대선 후보군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하고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 조기 차기 경쟁을 유도해 현 정권의 실정을 덮고 관심을 돌려보겠다는 심산이다.

“잊힐 권리를 달라”며 떠났던 양 원장은 2년 만에 ‘운명’처럼 요란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경제, 안보, 인사, 코드, 노조 등 문 정부 국정에 대한 국민 걱정이 크게 늘었다. 이런 마당에 실세라는 사람들이 ‘차기 놀음’하는 것을 국민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는 느낌으로 냉철히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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