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계획 없이 찾은 서울역, 역무원 추천해 준 해변으로…불안하다 홀가분해지고, 특별해진 '여정(旅程)']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4시30분. 서울 가는 기차 시간이 1시간40분쯤 남아 있었다. 슬슬 버스타러 갈 요량으로 자릴 떴다. 도로변 슈퍼로 가서 아이스크림 2개를 집었다. 좋아하는 '옥O자'와 '스O류바'였다. "현금 밖에 안된다"하기에 다시 가져다 놓으니, 욕구불만이 생겼다. 꾹 누르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버스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무려 5시20분에 온단다. 기차역에 도착하면 6시15분 정도, 출발 시간이 빠듯했다. 택시를 타려 하니, 그것도 비슷하게 기다려야 한단다.
서울 시내버스처럼 자주 올 거라 짐작한 게 오산이었다. 그만큼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바닷가를 즐기던 낭만이 썰물처럼 밀려갔다. 기차를 놓칠까 초조해졌다. 주인 아주머니는 "아이고, 어떡한대"란 말만 반복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기사를 끝까지 보면 나온다(기사 고정).
여하튼 다소 낯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아무 준비도, 계획도 없었다. 주머니엔 '스마트폰'도 없었다. 최소한의 '정보'마저도 포기했단 뜻이다. 뭐랄까, 그러니까 좀 깔끔하지 않은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게 더럽게 다니고 싶단 뜻은 아니다.
쉽게 말해 '완벽한 정보'를 갖고, 계획대로 딱딱 떨어지는 게 싫었달까.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대다수가 추천하는 여행지에 간다. 당연히 사람이 많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부대끼느라 사진에 사람이 더 많이 찍힌다. 그리고 꼭 후기가 좋은 맛집에 간다. 가서는 필수 메뉴를 시킨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에 좀 지쳤었다. 나만의 '보물' 같은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게 심하게 효율이 떨어지고, 헤매고, 고생할지라도.
'돈 들여 사서 고생하는 게 아닐까' 생각에 주저하기도 했었다. 그때 확신을 준 건 그간 여행이 남긴 추억들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유명하다며 찾아간 카페는 어딘지 잘 기억이 안 났다. 그런데 길가다 우연히 봤던 성당 인근 한 카페. "안경 쓴 바리스타가 왠지 커피를 잘 내릴 것 같다"며 들어갔던 그 곳. 거기 라떼가 정말 최고로 맛있었다. 올 봄 제주에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채꽃이 아니라, 숙소서 아내와 '끝말잇기'를 했던 일이었다. 날씨도 궂으니 들어가서 쉬자고 했다가, 이상한 단어의 열거에 몸살날 만큼 웃었었던.
그런 이유로 더위가 스멀스멀 몰려오던 어느 봄날, 맘 먹은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날짜는 5월14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날씨가 화창해 좋았다. 떡진 머리를 대충 감고, 옷은 가볍게 입기로 했다. 좋아하는 반팔티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었다. 오랜만에 입었더니 뱃살이 자유를 갈구하며 저항했다. 별 수 없이 숨을 '흡' 하고 들이마신 뒤, 단추를 잠갔다. 냉혹했다. 순간 뭉크의 '절규' 그림이 떠올랐다. 가방서 노트북을 빼고, 기자수첩과 펜 하나를 넣었다. 스마트폰을 끄고, 손목시계를 찼다. 단촐한 여행 준비가 끝났다.
바깥에 나와 서울역으로 향했다. '기차여행'이 하고 싶었다. '덜컹덜컹' 바퀴소리를 음악 삼아, 창 밖을 보며 사색을 하고, 시원한 사이다에 삶은 계란을 까먹고(사실 이게 핵심). 어디로든 갈 참이었다. 가능한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여정의 시작은, 홀가분하기보단 사실 좀 불안했었다. 이런 여행은 난생 처음이라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혹시 못 돌아오는 거 아냐?', '얘깃거리가 없으면 어떡하지?', '기사는 어떻게 쓰지?' 그런 물음들이 꼬릴 물었다.
서울역에 도착해 지나가던 남성에게 가서 물었다. "혹시 기차타고 갔던 곳 중에 좋았던 데 있으세요?"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바쁘다"며 갔다. 괜찮았다. 거절당하기에 익숙한 나니까('거절당하기 50번'…두려움을 깼다, 2018년 11월24일자 기사 참조).
서울역 안내데스크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난색을 표하다 잠시 웃더니, 생각에 잠겼다. 한 직원은 "망상(강원도 동해시)이 좋았다"고 했다. 20대 때 동해 여행을 가며 가본 데였다. 어마무시한 양의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또 다른 직원은 "전남 순천"이라고 했다. 안 가본 곳이라, "순천은 뭐가 좋았느냐" 물으니 "와온 해변이 좋았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거기가 그렇게 좋냐"고 하자 "개인적으로 좋았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 미소가 왠지 좋았다. 그리고 발음할 수록 동글동글한 모음(이응) 발음들. 이런 이유로 여행지를 정하는 건 처음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의 불편함은 금세 시작됐다. 여행지를 정했으니 순천(여수EXPO역행) 가는 기차표를 끊으려 줄을 섰다. 매표소 직원에게 물으니, 서울역에서 오전 9시쯤 출발하는 KTX는 좌석이 동났단다. 아마도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다 예매 했으리라. 좌석이 있는 가장 가까운 건 용산역서 출발하는 오전 10시55분 KTX 열차라 했다. 직원은 "지금 용산으로 빨리 가보라"고 권했다.
부리나케 서울역을 나와, 용산역으로 갔다. 도착해서 아까 서울역 직원이 말한, 그 표를 끊었다. 그때 시간은 9시15분쯤. 아무래도 기차 탈 시간까지 너무 많이 남은 것 같았다. 그래서 오전 9시55분 '입석 열차'표로 바꿨다. 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빨리 가잔 맘으로. 입석 열차는 참 오랜만이었다. 사서 고생하는 여행이 시작됐다 생각했다.
그렇게 표를 바꾸고, 그제서야 안심(安心)하는 날 봤다. 비우려 떠난 여행인데, 여백의 시간을 이리 못 견디는구나 싶었다. 그동안 바삐 산 게 몸에 밴 탓이었다. 여행지(地)에 다 내려놓고 오리라 맘 먹었다.
맛있게 잘 먹기 위해 여행을 '덤'으로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곧장 편의점으로 갔다. 노른자가 살아 있는 반숙 계란 2개, 그리고 캔 사이다 하나를 샀다. 그리고 편의점을 나왔다가, 뭔가 아쉬워서 다시 들어갔다. 연양갱(할아버지 입맛)과 추억의 숏다리, 양파맛 감자칩을 추가로 샀다. 빵빵해진 가방을 보며 흡족했다. 역시 이런 게 여행의 묘미다.
일찌감치 승강장에 내려와 열차를 기다렸다. 미리 와 있는 빨간 지붕의 새마을호를 봤다. 한땐 이 기차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믿기도 했었다. 아마도 무궁화호, 비둘기호가 있을 무렵에. 어렸을 땐 기차를 타고도 멀미를 했다. 그래서 봉지 하나씩 챙기는 게 필수였다. 등을 두드려주시던, 머리가 까맣던 부모님 생각이 났다. 주름이 깊어가는 새 새마을호도 KTX에 '빠른 열차' 자릴 내줬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기차 선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가는 여행객(客)들을 보다가. 모처럼 홀가분한 맘이었다. 그런데 그 때, 애틋하게 서로를 안고 있는 부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졌다.
입석 열차 덕에 그걸 알 수 있게 됐다. 3호차와 4호차 사이에 서 있는데, 그 부부도 입석인지 출입문 한 켠에 서 있었다. 뒤이어 열차가 출발하고, 그들이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례식장을 수소문하던 남성은 "제가 아들입니다"라고 했다. 아마도 부모 중 누군가가 돌아가셨으리라. 그리고 경황 없이 내려가는 길일터. 아까 그 포옹이, 부모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 좁다란 공간들엔 입석 승객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상병 계급장을 단, 한 군인은 전자책으로 뭔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내 왼편 간이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는 KTX를 처음 타시는 모양이었다. 허공을 향해(아마도 나를 겨냥한)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서 있는 내가 흔들리는 게 맘이 쓰였는지, 첨엔 "손잡이를 왜 안 달아놨을까?"하고 운을 띄웠다. 그리고는 창 밖을 보며 "와, 헬리콥타보다 더 빠르네", "금방 가겠네" 이런 얘기들을 했다. 배시시 웃음이 나와 나도 모르게 "그러게요, 정말 빠르죠"하며 맞장구쳤다.
전북 전주시쯤 왔을까.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아마 빈 자리가 늘어 앉으러 간 건지. '그래도 입석인데 괜찮을까' 싶어서 홀로 서 있었다. 그러자 승무원 두 명이 다가왔다. "자리 불편하진 않으세요?"라고 묻더니 "빈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안내해줬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 걸어준 맘이 고마웠다. 4호차로 가서 빈 자리에 앉으니 햇살이 창가로 들어왔다. 기분 좋은 졸음에 빠져들었다.
낮 12시33분에 순천역에 도착했다. 2시간 반쯤 되는 여정이었다.
아무 정보가 없으니 막막했다. 가까운 관광 안내센터에 들어갔다. "무(無) 계획으로 왔으니, 추천 좀 해달라" 했다. 직원은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지금 가보면 좋다"고 추천했다. 순천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듯 했다. 그리고 또 추천해달라 했더니 "순천만 습지"를 가보란다. 당일 여행이면 두 곳 정도를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와온 해변'이 궁금해 서울서 달려왔는데, 직원 추천엔 없기에 불안해졌다. 그래서 "와온 해변은 어떠냐"고 물으니 "지금 가도 별로 볼 게 없다"고 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일단 밥을 먹으며 생각해보기로 했다.
안내센터 직원이 알려준 맛집이 두 곳 있었다. 가는 길에 '맘스OO' 햄버거집이 보였는데, 갑자기 확 땡겼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햄버거냐, 정갈한 한식을 먹어야지' 생각하고 지나쳤다. 맛집 한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1인분은 안 된다"고 했다. 다른 한 곳에 들어가 1만5000원짜리 간장게장 정식을 시켰다. 반찬은 정갈했지만, 생각보다 그리 특별한 맛은 아녔다. 그래도 밥은 두 공기 먹었다.
밥을 다 먹고,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에 갔다. '명소(名所)'의 힘을 떨쳐내지 못했다. 버스로 20분쯤 가니 나왔다. 입장료를 끊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정원은 예쁘게 잘 조성돼 있었다. 카메라를 여기저기 세워놓고 셀카 놀이를 했다. 그렇게 1시간쯤 구경을 했다.
볼 게 없다던 '와온 해변'이 계속 생각났다. 정원박람회를 나와 뒤늦게 가보기로 했다. 시간은 오후 3시쯤. 돌아오는 기차 표가 6시20분이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동네 주민들에게 해변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97번이나 98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체육관 정류장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97번 버스를 10분 정도 기다렸는데, 잠깐 한눈 파는 새 휭 하고 지나가버렸다. 몹시 황망했다. 다음 버스는 17분 후 도착이라, 66번 버스를 타고 다짜고짜 "97번 버스를 타려면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일단 타라"는 기사 말을 듣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기사가 일러주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무뚝뚝하게, 하지만 정(情)스럽게, 그는 헤매지 않게끔 친절히 안내해줬다. 쭉 가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그대로 했더니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잠시 뒤 97번 버스가 왔다. 무척 좋았다. 버스를 제대로 타는 게 이리 좋을 수 있다니. 참으로 반가웠다.
시내를 벗어나니 한적한 길들이 이어졌다. 푸른 5월의 논밭을 보며 맘이 싱그러워졌다. 이런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한 버스 정류장에선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타더니, 초성 게임(자음만 알려주고 단어를 맞추는 것)을 했다. 한 초등학생이 ㅅㅂ(시옷 비읍)을 외치자, 다른 아이가 '신발!"을 외치며 정답을 맞췄다. 속으로 다른 걸 생각했던 난, 나쁜 어른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버스 기사가 "와온 해변을 보려면 여기서 내리라"고 했다. 탑승할 때 물어봤던 걸 기억해 준 맘이 고마웠다. 감사 인사를 하고 내렸다. 한 슈퍼 앞이 정류장이었다.
'와온 해변'이란 이름을 서울역에서 처음 들은 뒤, 계속 상상했었다. 여정(旅程) 내내. 어떤 곳일까 하고.
파도 소리를 따라 걸었다. 따스한 햇볕이 온몸을 감쌌다. 걸을 수록 '여기가 그 곳이 맞나' 하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특별할 게 없었다. 바닷물은 꽤 빠져 있었고, 제주 바다처럼 푸른 빛도, 동해 바다처럼 숨막히지도 않았다. 심지어 해변엔 아무도 없었다. 갯벌의 작은 게들만 반겨줬다.
허탈한 맘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걸 보려 여기까지 왔나' 생각에. 오히려 그리 생각하니 맘이 홀가분해졌다. 사실 여행 시작부터 '뭘 써야하나', '뭔가 괜찮은 게 있어야 할텐데' 생각에 시달렸었다. 그런데 막상 별 게 없으니, 긴장을 내려놓게 됐다.
그러니 주위 풍경들이 오롯이 눈으로, 맘으로 들어왔다. 반짝이는 물결, 이따금씩 지나가는 갈매기, 저 편에 자리 잡은 이름 모를 작은 섬까지. 부두 끝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다다랐다. 거기엔 켜지는지 알 수 없는 가로등이 있었다. 그 옆에 그냥 누웠다. 자그마한 조개 껍데기도 보였다.
하릴없이 '와온해변'으로 사행시(四行詩)를 썼다. 와(와, 여기가 와온해변이구나), 온(온안해진다. 분주했던 몸과 마음이), 해(해는 물결에 실려 넘실대는데), 변(변(便)이 마려운 건 긴 여행 화장실을 못 간 탓인가).이런 이상한 감성, 오랜만이었다.
귓가를 적시는 파도 소리가, 지친 맘을 다독였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계획대로 안되면 어때'. 마치 이런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일상에서 잔뜩 들어갔던 힘이 쭉 빠졌다. 개운했다. 드넓은 해변에 홀로 이리 있으니, 그게 특별해졌다.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생각만큼 근사하지 않아도, 홀로 찍은 서툰 사진이라도,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나만의 여행이었다.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스포일러 없이 영화를 보듯, 정보 없이 떠난 여행도 그랬다. 잘 모르니까 여정서 맞는 풍경들을 더 뚫어지게 바라보게 됐다. 지명에 대해서도 쉬이 찾아보지 않고, 자꾸 상상하고 생각했다. 그러니 애정이 더 갔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어찌 보면 '정답'이 정해진 것도 없었다. 맘이 가는대로, 내가 만들어 가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남들이 좋다 하는 걸 해야할 것 같은 맘에 눌려 있었다. 여행도 그랬다. 모든 걸 다 준비하고, 후기를 찾아보고, 괜찮다는 안심이 들어야 움직이고. 그게 나쁜 건 아녔지만, 뭐랄까 좀 심심했다.
어느 여름, 파리에 갔을 때 그리 느꼈다. 한 식당에 갔는데 한국인들만 있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모두가 블로그를 보고 여길 찾아왔구나 하고. 심지어 종업원도 한국말을 능숙하게 했다. 그리고 거기서 먹은 음식은 기억에 길게 남지 않았다.
삶도 그랬다. 위험한 건 피하고 싶으니, 남들 가는 안전(安全)한 길만 최대한 가려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서도, 때론 모험과 도전을 해봐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게 나만의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면. 아무런 준비를 안 하고 떠났던 여행서 얻은 깨달음이다. 서투르고, 헤매고, 근사하진 않았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다. 삶과 여행이 닮아 있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래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선, 점심에 먹고 팠던 '맘스OO' 햄버거를 사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솔직히 낮에 먹은 간장게장 정식보다 훨씬 맛났다.
에필로그(epilogue). 기사 처음서 언급했던 문제는 이렇게 풀렸다. 와온 해변서 순천역까지, 기차 시간에 맞춰 와야했던 그 일 말이다.
택배 기사님이 슈퍼를 찾았는데, 아주머니가 내 사정을 얘기해줬다. "기차 시간에 늦을 것 같다"고. 그랬더니 기사님이 흔쾌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차 안에서 많은 얘길 나눴다.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고마운 기사님은 이런저런 얘길 해줬다. 와온 해변은 일몰(日沒)이 정말 멋지니 그때 와야 한다고. 근처 카페는 어디가 유명하다고.
그리고 기사님이 한 음식점 앞을 지나가며 이리 말했다. "혹시 학생이에요? 나중에 여자친구랑 오면 좋은 밥집이 여깄는데. 꼭 한 번 와봐요." 기분이 째졌다. 결혼한 지 한참 된 유부초밥에게 '학생'이냐니.
계획대로 여행을 했다면, 절대 들을 수 없었을 얘기였다. 그게 묘미(妙味)였다. 오래도록 고맙도록 추억에 남을.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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