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요약 : '주4회' 스피드 재판을 하자는 재판부의 제안에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재판마다 '고령의 연약한 朴이 주4회 재판을 견디기엔 넘나 힘든 것'이라며 재판 속도를 늦추자고 요청한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검찰과 朴네 변호인단. K스포츠재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문체부 인사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과 관련한 국민연금 관계자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증인으로 나와 팩트폭력을 시전한 가운데 朴은 증인과 유영하 변호사의 설전을 지켜보다 빵 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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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이 기소될 때 새로 추가된 혐의 중의 하나가 SK그룹 뇌물 의혹이었던 거, 기억 나? 2017년 6월15일 재판부터는 본격적으로 SK그룹 사건을 다루기로 했어. 이날엔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 김영태 SK그룹 부회장 등 SK그룹 임원들이 증인으로 나왔지.
검찰의 의심과 SK그룹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래. 朴은 2016년 2월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 최태원 회장은 대통령한테 무슨 얘길할까, 그룹 임원들과 함께 상의해서 주제를 미리 정리해 갔지. 워커힐 면세점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CJ헬로비전을 얼른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감방에 있는 동생 최재원 부회장을 가석방 시켜주라 등 SK그룹이 지금 당장 풀어야 할 문제들이었어.
朴과 최태원 회장이 만나고서 며칠 뒤에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 SK그룹한테 연락을 해왔어. K스포츠재단에 대한 자료를 보낼테니 잘 검토해서 협조해달라는 거였지. 근데 그 자료들 중엔 K스포츠재단 말고도 더블루K, 비덱스포츠가 무슨 회사고,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자료도 섞여 있었어. 죄다 최순실이 만들었거나 사실상 접수한 회사들이야.
SK그룹은 '이거 달라는 대로 줬다간 나중에 분명히 크게 탈난다' '정권 바뀌면 청문회 끌려가고 그룹 탈탈 털릴 각'이란 느낌적인 느낌을 받고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 대통령이 관심 갖고 만든 재단이라는데 돈을 안 줄 수도 없고, 개인이 설립한데다 해외(독일)에 있는 회사인 비덱스포츠에 돈을 보냈다간 외환거래법이니 뭐니 법적으로 난리가 날 거 같고 어쩌지? 어떡하지?
결국 SK그룹은 '89억원 지원' 요청을 거절하기로 했어. 청와대 요구를 대놓고 퇴짜놓긴 눈치보이니까 '대신 K스포츠재단에 30억원을 추가로 낼까 생각중'이라고 알렸지. (SK그룹은 나중에 이 30억원 지원마저도 없었던 일로 했어.)
이어서 증인으로 나온 김창근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최태원 회장한테서 들었다는 '대통령 독대 후기'를 증언했어.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은 朴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고, 면세점 사업은 안종범 수석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더라'는 내용이야.
김창근 의장은 검찰이 물개박수를 칠 만한 증언도 남겼어. 'K스포츠재단이 89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한 게 최태원 회장이 朴한테 얘기한 기업 현안이랑 관계 있는 거?'란 검찰의 질문에 'ㅇㅇ 그렇게 생각함'이라고 답한 거야. 이건 朴과 최순실이 짜고(=공모) SK그룹에다가 뇌물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검찰의 의심에 동의보감하는 말이잖아!
이쯤부터 朴네 재판이 주4로 진행된다고 했잖아? 수요일은 쉬고 월화목금, 4일씩. 그런데 수요일에도 법원에 출근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네 재판에서 朴을 증인으로 채택했거든.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의심받는 쥔공들이니까 직접 불러다 얘기를 들어보자는 거지.
朴의 증인 피처링 날짜는 2017년 7월5일 수요일로 결정됐어.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의 재판에 두 번이나 증인으로 채택되고, 검사가 구치소까지 찾아가서 1시간을 설득했지만 끝끝내 증인 출석을 거부한 朴이 과연 이재용 부회장네 재판엔 나올까? 저번엔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했지만 이번에도 그 이유를 대기엔 월화목금 자기네 재판엔 잘만 나오는 것. 설득력이 0에 수렴할 테고.
형사소송법 148조 (근친자의 형사책임과 증언거부)
누구든지 자기나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한 관계있는 자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1. 친족 또는 친족관계가 있었던 자
2. 법정대리인, 후견감독인
☞ 朴 재판 출석 박상진 前삼성 사장 "모든 증언 거부"
최순실 딸래미 정유라의 승마 활동을 지원했다는 삼성 관계자를 불러다가 朴과 최순실이 보는 앞에서 탈곡기를 가동하려 했던 특검은 분노했어. 이재용 부회장을 쉴드 치려고 삼성 그룹 차원에서 작정하고 입꾹 작전을 시전한 거라면서 말이야.
89억원이나 지원하기엔 재단이 건네준 자료가 넘나 부실한 것. 그래서 박영춘 부사장은 현실적인 금액을 계산해서 '20억원 출연'을 제안하는 걸로 승부를 걸었지. 朴이 얘기하고 청와대가 추진한 일인데 금액을 너무 후려쳤나, 싶어서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우리가 진짜 열심히 계산하고 생각한 결과'란 걸 보여주려 했대. 나름대로 밉보이지 않으려 노력을 했지만 K스포츠재단 입장에선 어처구니 없었겠지? 박영춘 부사장은 그 뒤로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한테 찍혀서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다고…
최태원 회장은 1년4개월 전 朴과의 추억을 하나씩 털어놨어. 2016년 2월12일 감방에 있던 동생(=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을 면회했고, 안종범 전 수석한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고, 알고보니 朴이 만나고 싶다는 얘길 하려던 전화였고, SK 임원들을 불러모아다가 朴이랑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까 회의를 했고, 거기에서 '면세점+CJ헬로비전 합병+동생 가석방 ㄱㄱ'도 얘기하기로 결정했고, 실제로 朴을 만났을 때 은근슬쩍 회사 좀 도와달라고 얘기를 했고 등등.
최태원 회장의 얘기에 朴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냥 듣고만 있었대. 그러다가 대화 도중에 뜬금포로 'SK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얼마 낸 거?'라고 물어봤대네? 중간에 합류한 안종범 전 수석이 숫자를 얘기해주니까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이라고 말했대. 그것이 어떤 '관심'과 '협조'였을지는… (생략)
근데 사실 이 무렵 朴의 재판 이야기는 슬슬 사람들의 관심을 잃어가고 있었어. 이제 막 뽑힌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으쌰으쌰 망가진 나라꼴을 다시 세우고 있을 때라 '옛날 사람' 朴은 잊혀져 갔지. 재판을 직관하고 싶다고 신청하는 사람들 수도 훅 줄어들고 말이야.
방청석 경쟁률이 낮아지니까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朴의 열혈팬들 몫이 됐어. 이 팬들은 법정에서도 朴을 향한 덕심을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했지. 朴이 등장하면 박수 치고 환호하고, 朴한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증인한텐 야유를 보내고 수근수근 뒷담화를 하는 등등. 일코따위 1도 모르는 이 朴덕후들의 방청석 지분율이 올라가면서 이러한 법정 소란은 점점 더 심해져갔어. 법정 경위가 아무리 말리고 주의를 줘도 朴덕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어. 재판부가 재판을 시작하고 끝낼 때마다 '자꾸 이러면 쫓아낸다! 감치한다! 벌금 때린다!'라고 경고해도 먹히지 않았지.
☞ "감치요? 먹는 건 줄 알았어요"
삼성 뇌물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꾹 작전을 시전하고 있으니 특검으로선 답답한 노릇. 게다가 2017년 7월3일에 이 사건의 주인공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인데 다른 삼성 사람들처럼 이재용 부회장도 증언을 거부한다면? 특검의 혈압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게 비선실세가 있다는 말이야, 없다는 말이야? 대통령 시절 '불통의 아이콘' 소리를 괜히 들은 게 아닌가봉가. 암튼 朴의 이 알 수 없는 말을 듣고서 김성우 전 수석은 '비선실세 있네, 있어'라 받아들였대. 검찰도 거기에 동의보감하는 부분이고.
반면 朴네 유영하 변호사는 '비참하다'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들리냐고 반박했어. 비선실세니 뭐니, 그딴 얘기가 나왔다는 자체가 얼척없어서 '비참하다'고 말한 건데 검찰이 자기네들 맘대로 희한하게 해석했다면서 말이야.
☞ "朴 전 대통령, '비선실세 있냐'고 묻자 '비참하다'고 해"
검찰은 최순실 가족들을 증인으로 신청했어. 딸내미 정유라랑 정유라의 구남친 신모씨,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과 조카 장시호 등 4명을 증인으로 부르자고 요청했지. 가족은 아니지만 최순실 절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도 신청했고. 朴과 최순실의 변호인이 검찰의 증인 신청에 동의만 하면 법정에서 가족모임이 벌어질 판.
朴의 수많은 혐의들 중에 하나가 '제3자 뇌물수수'야. 공뭔이 자기 업무와 관련해서 부정한 청탁을 받고선 뇌물을 자기한테 바로 쏘지 말고 제3자(예를 들면 베프)에게 주라고 한 경우 이 혐의가 적용되지. 그렇다면 朴의 제3자 뇌물수수에서 '제3자'는 누구다? 'K스포츠재단'이다! 최순실이 만들고 최순실네 사람들이 다 해먹은 걸로 의심되는 바로 그 핫한 재단!
2017년 6월30일 재판엔 이 K스포츠재단 사람 2명이 증인으로 나왔어.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정현식 전 사무총장이지. 이 사람들은 특히 SK그룹과 아주 깊은 인연이 있어. 최순실의 지시를 받고서 SK그룹을 찾아가 '돈 내놔'를 시전했던 그런 인연이지;;
그러면서 한 가지 스릴러 영화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 박헌영 전 과장한테 수첩이 있었단 말이야? 최순실이 뭐라뭐라 지시를 하면 그걸 다 받아적었던. 심지어 성질 급한 최순실이 직접 뭐라뭐라 적기도 했던 수첩이. 박헌영 전 과장은 이 수첩이 너무 일찍 공개되면 대통령 빽이 있는 최순실이 자기를 어떻게 해치울지 몰라서, 자기가 죽을까봐 땅에 묻어두고 숨겨놨었대. 4개월이나 묻어놨다가 2017년 3월에 '이때다!' 싶어서 검찰에 제출했다는 거야.
☞ 박헌영 "최순실 지시 적은 수첩, 땅 속에 숨겼다"
한창 진행중이던 박헌영 전 과장의 증인신문은 朴이 갑자기 책상에 엎드리면서 중단됐어. 잠깐잠깐 졸긴 했어도 책상에 엎드린 건 처음이라 다들 깜놀. 재판부는 朴이 몸이 안 좋아 쉬고 있다면서 오늘 재판은 여기까지만 하고 미안하지만 다음에 박헌영 전 과장을 다시 불러다가 오늘 못 다한 재판을 이어가자고 했지. 이런 유리몸으로 대통령은 어떻게 된 건지 의문.
(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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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 jvdith@mt.co.kr, 홍재의 기자 hjae@mt.co.kr, 박광범 기자 so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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