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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홍영

[ 洪霙 ]

홍영 글씨

〈홍영 편지〉, 『근묵』, 행초서, 19.5×22㎝,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상대방의 벼슬 자리를 금양(錦陽)과 함께 주선할 것임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

이칭별칭 택방(澤芳), 추만(楸巒)
유형 인물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584년(선조 17) ~ 1645년(인조 23)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산(豊山,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대표관직(경력) 첨지중추원사, 공조참의, 한성부우윤, 동지중추원사

정의

1584(선조 17)∼1645(인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택방(澤芳), 호는 추만(楸巒). 사포서별제 홍우전(洪禹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좌찬성 홍수(洪脩)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이며, 어머니는 선무랑 김고언(金顧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사산감역(四山監役)·형조좌랑을 지냈다. 1621년(광해군 1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사예·장악원정을 지냈으며, 1626년 서산군수로 나가서 도적들을 잡은 공으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어 형조참의·첨지중추원사·공조참의를 지내고, 1629년 왕의 특지로 예조참판에 올랐으나 끝내 사양하고 한성부우윤 겸 도총부부총관·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637년 병자호란으로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도총부총관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중추부사를 역임하는 데 그쳤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택당집(澤堂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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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인물고 홍영

국조인물고 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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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역 국조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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