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개 매장 사장님 된 `푸드트럭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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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6.06. 오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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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셰이크로 해외 진출…홍승표 퍼펙트아이스 대표

취업 못하던 20대 취준생
컵군고구마 팔아 종잣돈
푸드트럭 아이스크림 `히트`

현대백화점 지원 힘입어
동남아 매장 30곳 열 계획
"재료비 안아낀게 성공비결"


어떤 이에게 실패는 과거일 뿐이다. 취업 면접에서 두 번 미끄러졌던 취업준비생은 "내가 이 시장에선 안 통하겠구나" 하고 빨리 결론을 냈다. 대신 군대 동기들과 모여 장사를 궁리했다. 껍질 벗긴 군고구마를 컵에 담아 버스정류장에서 팔았다. 신촌, 홍대, 합정에서 손에 묻는 걸 싫어하던 여성들이 '먹기 편하다'며 '컵고구마'를 샀다. 석 달 겨울 장사가 자본금 3000만원이 됐다. 이 군고구마는 푸드트럭 야시장을 거쳐 5년 만에 전국 55개 매장으로 컸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동대문점에서 만난 홍승표 퍼펙트아이스 대표(29)는 "지금도 힘들어지면 고구마를 팔면 되지 한다. 장사했던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며 웃었다. 퍼펙트아이스는 밀크셰이크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디저트 브랜드다. 고구마는 안 판다. 홍 대표는 "다른 요리에 도전하기에는 자신감이 없었다"며 "시작하기 쉬운 걸로 찾다 아이스크림으로 정했고, 밀크셰이크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군고구마를 판 돈으로 푸드트럭과 기계를 사서 시작했다. 푸드트럭 장사 때도 재료는 아끼지 않았다.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의 원가가 500~600원이나 됐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전문점 유행이 막 시작되던 때였어요. 밀크셰이크를 팔면서부터 단골이 조금씩 생겼죠." 밤도깨비 야시장 푸드트럭 시절 손님을 통해 이탈리아 원유 농장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이탈리아에서 원유를 들여왔다. 파우더를 물에 개어 쓰는 대신, 자체 액상믹스를 만들고, 원유를 더해 진하고 고소한 맛을 냈다.

야시장 영업은 이익은 박했어도 브랜드를 알리는 기회가 됐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던 현대백화점에서 판교점 푸드트럭 테마 행사에 퍼펙트아이스를 초청했다. 단기 이벤트가 정식 입점으로 연결됐다. 지난해 8월에는 홍콩식품박람회에 현대백화점과 함께 참가하기도 했다. 해외 진출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말레이시아 현지 업체와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어 4개월 만인 작년 12월 1호점을 열었다.

현재 말레이시아 점포는 쿠알라룸푸르와 이포, 믈라카 등에 7개 있다. 연내 30개까지 안정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홍 대표는 "만약 해외 진출을 못했다면 브랜드 수명은 아마 내년쯤에 끝났을 것"이라고 했다. "말레이시아는 기온이 일정해 찬 음료가 꾸준히 잘 팔려요. 한국 브랜드라는 걸 적극적으로 어필했어요." 동남아에서 K팝과 한류는 홍 대표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가수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제품 케이터링을 했는데,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현지인이 많아 진출 초기부터 인지도가 높았다.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도 탄탄했다. 홍 대표는 "한류는 이제 트렌드라기보다는 소비 패턴으로 굳어진 느낌"이라며 "10년 전부터 한류를 접하고 자란 세대가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한국 제품은 좋다, 믿고 쓴다'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현지화 전략도 꼼꼼히 짰다.

해외 판매가가 한국 가격보다 높은 일부 프랜차이즈와 달리, 퍼펙트아이스는 가격부터 현지에 맞췄다. 현지에서 원유를 공급받고, 패키지를 생산해 원가를 조정했다.

한국에서 7500원짜리인 제품은 말레이시아에서 3300원가량 된다. 홍 대표는 "대신 인건비가 저렴해 마진율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점포당 평균 월 12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판매가를 낮췄는데도 국내 점포(월 1500만원)에 근접하는 매출이 나온다. 오픈 초기인 점을 감안해도 판매량이 적지 않다.

해외 경험이 없는 브랜드가 4개월 만에 해외시장을 두드릴 수 있었던 데는 현대백화점 도움도 컸다. 홍 대표는 "사회 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리다 보니 내 결정에 확신이 없었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 백화점 차원에서 '이건 된다'라고 확신을 줘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 장소부터, 분쟁 시 어떻게 해결한다는 조항까지 현대백화점 자문을 많이 구했다고 한다. 그는 "마라톤은 선수가 뛰지만, 뒤에 백업팀이 있다"며 "중소기업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노하우가 분명 있는데, 자문을 구할 곳이 있어 든든했다"고 고마워했다.

박소영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F&B팀 바이어는 "홍콩에 진출한 백미당이 인기를 끄는 걸 보고, 한국 밀크셰이크도 동남아에 진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시장은 잘 모르지만 진출해보겠다는 대표님 뜻이 워낙 확고해 백화점이 발판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현대백화점이 여는 해외박람회 설명회에는 홍 대표가 '성공 사례'로 나와 발표한다. 1년 만에 도전자가 성공 사례가 된 셈이다.

퍼펙트아이스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유제품 공장을 지어 현재 운영 중인 퍼펙트아이스에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진행 중인 국내 편의점 RTD커피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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