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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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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약사

작성자
주에콰도르대사관
작성일
2008-02-20
 

II 약사


o 에콰도르는 잉카제국의 북부에 해당했던 곳으로 1822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파나마와 함께 시몬 볼리바르의 대콜롬비아 연맹에 속하였다가 1830년 분리 독립함.


o 에콰도르는 크게 서쪽의 해안지방, 중앙의 안데스산악지역, 동쪽의 아마존 밀림 지역으로 국토가 구성되어 있으며 독립 후 정치  권력은 가톨릭 교회와 연대한 안데스 산악지역의 지주가 차지하였으나 은행업 및 상공업의 발전 및 코코아 생산의 빠른 증가로 해안지방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자, 해안 지방의 금융업자 및 부유한 중농층이 정치참여 및 권력분점을 요구하게 되어 상공업 중심지인 Guayaquil 중심의 해안 지역과 정치수도인 Quito중심의 안데스 산악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정치 불안정의 주요원인이 되어 오고 있음.


o 독립 후 국가의 초기 역사 역시 상기한 지역주의와 이로 인한 정부의 불안정성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1920년대의 국제 코코아 시장의 시장 붕괴 및 1930년대의 대공황 같은 외부적 충격으로 1931년에서 1948년까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었으며 이 기간 중 21개 정부가 난립하고 모두 중도에 퇴진하게 됨.


o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증가하는 바나나 수출이 정부의 개발정책을 가능케 하면서 에콰도르는 안정적 문민정부를 맞게 되나, 1960년대부터 산업 혁명이 시작되고 쿠바 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적 소요가 늘자 1963년에서 1979년까지 군사 독재 정부가 에콰도르를 통치.


o 군사 독재 정부는 강력한 반공정책 속에서  1972년부터 석유개발을 본격화하는 등 경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관여 및 공공경제부문이 크게 확대됨.


o 1978년 이후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로 이전된 후 1980년대에는  중도파와 우파간 정권이 교대되다가 1990년대 우파 일변도 정권이 유지되어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국이 유지되어왔음.


o 1996년부터 “대중 영합적이고 선동적인”(Populist) 정당들의 세력이 크게 증가하고 에콰도리안 롤도시스타당의 Abdala Bucaram, 국민민주당의 Jamil Mahuad, 애국사회당의Lucio Gutierrez 등 3명의 선출된 대통령이 중도에 축출되는 등 정치적 불안정이 격화되었음.


o 1996년 에콰도리안 롤도시스타당의 Abdala Bucaram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Bucaram 대통령의 노골적인 파벌주의, 부패, 조야한 통치 행태는 기존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의 반감을 크게 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1997.2월 Bucaram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총파업이 발생하자 이를 기회로 의회는 대통령을 축출함.


o 뒤이어 국회의장인 Fabian Alarcon(소규모 정당인 Frente Radical Alfarista 소속)이 의회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97.5월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이에 승리하여  정권기반을 강화했으나, 의회에서의 지지기반이 협소하여 정치권 및 공공부분 노조의 압력과 지역로비에 굴복, 사회 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됨.


o 1998년 6월 중도정당인 국민민주당의 Jamil Mahuad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1998년 말 발생한 금융위기와 은행과 관련한 부정부패 스캔들 등으로  2000년 1월 수도 키토에서 인디오 주도의 대규모 시위가 촉발이 되고 이를 기화로 2003년 대통령이 되는 Gutierrez 등 군부 일단의 소장 장교들이 Mahuad 대통령을 하야시켜 결국 2000년 1월 22일 부통령 Gustavo Noboa가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됨.


o 국회 내의 어떤 정당과도 연계가 없는 무소속의 Noboa대통령은 전임 Mahuad 대통령의 미 달러 공용화폐화 정책(Dolarization)을 승계하고 달러를 자국 화폐화 하는 상기 정책의 성공을 위하여 IMF와의 협조 정책을 추진하여 2000년 7월까지 미 달러 공용화폐화 정책(Dolarization)을 시행하는 등  일정부문 성과를 거두었으나, 의회, 노동조합 및 인디오단체등의 거센 압력에 직면하여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40%의 임금인상, Guayaquil 정치 경제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일부 수입관세의 폐지, 반독점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으로 경제개혁은 지지부진하게 됨.



o 2002년 11월 Lucio Gutierrez후보는 자신이 만든 애국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 인디오 정당인 Pachakutik(PP)과 민주인민운동(MPD)등의 좌파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통령 취임 후에는 미 달러화통용정책고수, 미국과의 유대강화 및 IMF 등 국제금융기구와의 협상에서 IMF의 제안을 수용하여 경제개혁을 추진하였음.


o 결국 Gutierrez  대통령은 정책차이 및 내각임용 등으로 2003.8월  Pachakutik 및 민주인민운동과 결별하고 여타 정당과 제휴를 추진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법원 및 선거관리위원회를 해산하는 과정에서2005.4야당주도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게 되고  국회는 이를 기화로 Gutierrez 대통령을 헌정질서 파괴를 사유로 탄핵하고  부통령 Afredo Palacio 의 승계를 가결하였음.


o 2006년 11월 Rafael Correa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 2차 선거에서 당선되어 2007.1.15 대통력직에 취임. 동인은 대선당시 신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의회 소집, 정부의 부패척결, 소득 불균형 및 빈곤의 퇴치 등 3대 주요 공약을 하였음.


o Correa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라, 2007. 9.30 헌법개혁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Correa 대통령이 주도하는 PAIS 연합당이 총 130의석중 80석(61.5%)을 획득하여, 과반수 의석을 크게 초과함.


o 2007. 11.29 제헌의회가 공식 개원되어, 제헌의회가 국민들로부터 신헌법 개정은 물론, 정치체제, 정부형태 결정등 전권을 위임받았음을 내새워, 개원 당일인 11.29 현 국회를 무기한 휴회상태로 하고, 법률개정 및 신헌법 개정작업을 본격 추진중에 있음.


o 향후 6개월 이내 신헌법을 제정하고, 동 신헌법에 따른 국민투표를 거쳐 대통령 및 국회의원 등을 새로이 선출함으로써 국가 권력구조를 재편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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