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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유승우

[ 劉承祐 ]

요약 중국 5대10국 시대 후한의 제2대 황제(재위 948~950).
출생-사망 931 ~ 950
국적/왕조 중국 후한
재위기간 948~950년
시대 5대10국 시대
별칭 은제(隱帝)
활동분야 정치

돌궐 사타부(沙陀部) 출신이며, 원적지는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인 병주(幷州) 진양(晉陽)이다. 시호는 ‘은제(隱帝)’이며, 재위기간에 ‘건우(乾祐)’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유승우는 931년 3월 28일(음력 3월 7일)에 고조(高祖) 유지원(劉知遠)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생모는 황후 이씨(李氏)이다. 947년 유지원이 후한(後漢)을 건국한 뒤에 주왕(周王)으로 봉해졌으며, 948년 3월 10일(음력 1월 27일)에 유지원이 죽자 18세의 나이로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유승우가 즉위한 뒤에 하중절도사(河中節度使) 이수정(李守貞)과 봉상절도사(鳳翔節度使) 왕경숭(王景崇) 등이 잇달아 반란을 일으켰다. 유승우는 추밀사(樞密使) 곽위(郭威)와 병마도감(兵馬都監) 왕준(王峻) 등을 보내 이를 진압했다. 그리고 950년 거란의 군대가 남하해오자 곽위를 지금의 한단[邯鄲]인 업도(鄴都)에 주둔시켜 막게 했다.

950년 12월 24일 은제는 곽윤명(郭允明)의 계책에 따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양빈(楊邠), 사홍조(史弘肇), 왕장(王章)을 궁으로 불러들여 모두 살해하고, 곽위의 일가도 모두 죽였다. 그러자 곽위는 반란을 일으켜 951년 1월 1일 도성인 카이펑[開封]을 공격했다. 은제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였으나 크게 패하고 달아나다 다음날인 1월 2일(음력 11월 22일)에 곽윤명에게 살해되었다. 곽위는 유지원의 조카이자 양자인 유윤(劉贇)을 옹립했다가 2월 13일에 카이펑에서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한을 멸망시키고 후주(後周)를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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