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식물원인가 카페인가… 도심에 들어온 ‘플랜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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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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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합정동 카페 어반플랜트 1층 나무 팔레트에 다양한 관엽식물이 자라고 있다. 화분 뒤로 사람들이 숨어 있는 듯 자리했다. 강지원 기자
서울 합정동 어반플랜트 실내에는 곳곳에 다양한 초록 나무들이 있어 쾌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강지원 기자

“어머, 진짜 꽃 향기가 나네.”

서울 합정동 주택가에 있는 카페 어반플랜트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카페 입구는 커피 볶는 향보다 꽃과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카페 안에는 고무나무와 필로덴드론, 드라세나, 아글라오네마 등 잎이 화려한 관엽식물 화분 수백 개가 곳곳에 있다. 마치 식물원 같다. 재활용한 나무 팔레트를 쌓아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키다리 식물 뒤에 숨겨진 듯 놓여있다. 17일 이곳을 찾은 직장인 김보경(28)씨는 “여유롭게 커피 마시려고 왔는데, 새로운 식물들도 마음껏 보고, 숲에 온 것처럼 쾌적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와 강남구를 중심으로 식물원 같은 카페(플랜트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예전엔 교외나 숲 인근 녹지에 자리잡았던 플랜트 카페가 최근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도시 한복판에 자리하는 경우가 늘었다. 미세먼지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도심에서도 쾌적하고 신선한 공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찾으면서 플랜트 카페에 대한 선호도 커지고 있다. 김나영 어반플랜트 공동대표는 “과거에는 사람들이 잘 정돈되고 깔끔한 공간을 선호했지만 그런 공간에서 재미나 여유를 느끼기 힘들어졌다”며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자연에서 쉴 수 있고, 숲에서 일하는 느낌을 주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오래된 2층 주택을 개조해 2017년 말 문을 연 어반플랜트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500그루나 있다. 정원에는 나비와 참새, 벌 등 도심에선 보기 힘든 곤충과 조류도 날아다닌다. 카페에는 식물관리 전담 직원도 있다. 인근 주민 이정경(45)씨는 “커피 마시러 오기보다 꽃 구경하려고 온다”며 “아파트 생활하면서 정원이라는 게 없는데, 내 집 정원처럼 편안하다”고 말했다.

4월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유리온실로 지어진 식물관PH 내부에는 야자나무, 대왕유카, 드라세나 등 열대 관엽식물 100여종이 자라고 있다. 강지원 기자

지난 4월 서울 수서동에 문을 연 카페 식물관PH처럼 아예 식물에 공간을 내준 카페도 있다. 현지혜 식물관PH 대표는 “식물을 감상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카페는 부차적인 서비스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카페가 있는 건물은 유리온실로 만들었다. 건물은 지난해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문주호 건축가(경계없는작업실)가 설계했다. 8m 높이의 온실 지붕에 창문을 설치해 공기가 순환하도록 했고, 식물과 사람이 활동하기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도 갖췄다. 1층 내부에는 황금사철나무, 미선나무, 준베리, 팥배나무, 붓순나무, 틸란드시아텍토룸 등 작은 나무들과 다육 식물 50여종을 전시한 작은 재배 온실이 있다. 박기철 원예사(식물의 취향 대표)가 꾸민 공간이다. 높이 5.5m 야자나무와 대왕유카, 드라세나 등 관엽식물 수십 종이 있는 관엽관과, 이끼와 소나무, 핑크뮬리 등을 심은 야외정원도 딸려 있다.

작은 나무와 다육식물이 자라고 있는 식물관PH의 재배 온실은 마치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같다. 강지원 기자

18일 딸과 함께 카페를 찾은 엄명옥(56)씨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식물 구경을 했다”며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초록빛도 보고, 여유도 생겨서 마치 교외로 여행 온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권도연 사진작가가 재배 온실에 있는 식물을 찍은 작품들을 모아 3층 전시공간에서 카페 개관 기념 전시를 열고 있다. 공간 한쪽 벽면에 큰 창을 내어 대모산 자락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상호의 ‘식물관’은 식물원과 미술관을 합친 이름이다. 식물원이나 미술관처럼 입장료(1만원)를 내면 음료를 제공한다. 현지혜 대표는 “식물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가드닝 수업뿐 아니라 요가 등 다양한 문화활동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식물관PH에는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야자나무, 야생 초목, 아메리칸 소나무 등 식물 100여종이 자란다. 전문 인력3명이 매일 2~3시간에 걸쳐 식물들을 관리한다.

식물관PH에서 서울에서 좀체 볼 수 없는 다양한 열대 관엽식물을 둘러볼 수 있다. 강지원 기자
올해 5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문을 연 카페 식물학은 식물과 사람들이 함께 숨쉬는 공간으로 꾸민 공간이다. 카페 식물학 제공
서울 강남구 신사동 빌딩 1층에 위치한 카페 식물학에는 잎 모양이 개성 있고 조형미가 돋보이는 관엽식물인 몬스테라가 많다. 강지원 기자

콘크리트 건물에 초록 공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2년 전 강남구 신사동 빌딩 1층에 문을 연 카페 식물학은 식물 연구소를 연상시킨다. 바리스타들은 연구용 가운 복장을 하고 유기농 커피를 만든다. 잎 모양이 개성 있고 조형미가 돋보이는 관엽식물인 몬스테라가 많이 배치돼 있다. 연구소처럼 실험관이나 유리병에 몬스테라를 꽂아 두었다. 1층 야외에 작은 테라스를 뒀고, 건물 뒤편에는 소규모 유리온실도 마련했다. 천장에 걸린 박쥐란과 고사리 등도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오가닉 카페를 9년간 운영해 온 박영환 식물학 대표는 “도심에 갇혀 사는 이들에게 건강한 것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뿐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 등 자연친화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고 말했다. 식물학은 지난해 말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아크앤북과 올해 5월 용산 아이파크몰 등에도 새로 공간을 냈다. 정창윤 브랜드 기획 컨설턴트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유기농 등 친환경 제품을 통해 소비 문화가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자연을 직접 느끼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 문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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