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걷고, 떠난다...자코메티 조각에 담긴 인간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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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8.21. 오후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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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27]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가, 1901~1966)



◆ '고도'와 '걷는 사람'

사뮈엘 베케트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남자 두 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앙상한 나무 곁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두 남자는 나사 몇 개가 빠진 기계처럼 어수룩하다. 어제 있었던 일을 가물가물해 할 정도다. 둘의 대화는 대부분 동문서답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을 뿐이다. '고도'를 기다리다 무료해진 그들은 죽고자 결심한다.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는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는 이런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고도가 누구야?'. 누군가는 '고도'를 신이라고 확신했다. 죽음, 구원, 희망으로도 여겨졌다.

이 작품이 세상이 나온 지 70년 가까이 지났다. 그 사이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도 고전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몇 번을 읽어도 난해한 이 작품이 고전 반열에 오른 이유는 명확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바보 같은 두 남자는 우리 모습과 닮았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조리가 없듯, 우리 삶도 종종 조리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창을 밟고 수렁에 빠진다. 계획은 계획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삶이라는 불확실한 여행길을 뚜벅뚜벅 걷게 하는 가장 큰 힘은 관성이다. 살아지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우리는 잠시 멈춰 자신에게 철학자 같은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이게 다 무엇인가' '왜 사는 걸까' '이 끝엔 뭐가 있을까'. 모두 답 없는 의문이다. 질문은 금세 허공에 흩어진다. 다시 걷는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아일랜드 출신 무명 작가였던 베케트는 부조리극을 개척했다는 평가 속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1961년 공연 무대 미술을 친구에게 맡겼다. 무대 위 장치는 앙상한 나무가 전부였다. 이 나무를 만든 인물은 알베르토 자코메티다. 1960년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사람'을 완성했다. 이 조각은 뼈만 남은 인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서 있기도 버거워 보이는 이 인간은 그럼에도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라도 묵묵히 걷는다. '걸어가는 사람'과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딘가 닮았다. 베케트가 자코메티에게 무대를 맡긴 이유다.

자코메티가 1930년에 만든 조각 `매달린 공`.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은 작품.


◆ 초현실주의와의 결별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예술가들은 다짐한다. 절대로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겠다고.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한 인간이 저지른 비극은 논리로 설명 불가능했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민낯을 들추어내려 했다. 그들은 하나둘 파리에 모여들었다. 프로이트의 책을 끼고 무의식, 꿈, 상상, 욕망을 탐구했다. 세상은 이 예술가들을 초현실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조직화한 인물은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앙드레 브르통이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황제로 군림했다.

스위스 출신 자코메티는 1922년 파리로 넘어왔다. 처음엔 그림을 그렸지만 금세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장르를 조각으로 바꾼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형상을 빚었다. 자코메티는 금세 앙드레 브루통 눈 안에 들어왔다. 브루통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코메티를 보고 확신했다. 이 남자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구현할 예술가라고. 자코메티도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자코메티는 오래 안주하지 않았다. 여동생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이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자코메티는 낯선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약한 인간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다. 그에겐 죽음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꿈꾸는 환상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진다. 당시 파리에는 자코메티처럼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실존주의자'라고 불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Pointing Man, 1947).


◆ 자코메티와 사르트르

1938년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자코메티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실례지만 여기서 당신을 종종 보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돈이 하나도 없는데 제 술값 좀 대신 내주실 수 있습니까?" 자코메티는 이 남자의 술값을 대신 치렀다. 자코메티에게 다가온 남자는 장 폴 사르트르다. 자코메티는 우연히 20세기 지성계 거인을 만났고, 금세 친구가 됐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정치, 사회,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오래 대화를 나눴다. 자코메티는 자연스레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흡수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미국으로 탈출했다. 자코메티는 스위스로 피난을 떠난다. 사르트르는 프랑스에 남아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나치와 싸운다. 안전한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이 미웠을까. 전쟁 중 자코메티의 편집증과 자기 파괴적 성향은 더 짙어졌다. 파리에서 교류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죽음의 공포는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를 바꿔버린다.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자코메티는 앙상한 인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를 위대한 조각가로 만들어준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자코메티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1947)를 완성한다. 세로 길이가 1.8m에 달하는 인간 청동상이다. 이 남자는 고초를 겪은 전쟁 포로처럼 삐쩍 말랐다. 나뭇가지에 살점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모양새다. 고독한 인간을 대표하는 듯한 분위기도 풍긴다. 금방 무너질 것 같지만 나약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확신과 결의에 차 있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누군가를 부르며 오른손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내가 어떤 길을 발견했으니 함께 걷자"고 웅변하는 포즈다. 2015년 이 작품은 경매에서 1550억원에 낙찰되며 가장 비싼 조각품이라는 지위를 얻는다.

◆ "피카소는 그저 천재에 불과했네"

자코메티 주변엔 초현실주의 예술가, 실존주의 철학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유독 예술가들이 좋아했던 예술가였다. 자코메티는 화가, 조각가라는 영역을 넘어 철학자라는 지위까지 두르고 있었다. 자코메티는 사르트르에게 실존주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사르트르 역시 자코메티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사르트르는 인간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했던 자코메티를 두고 "아무도 그보다 멀리 갈 수 없다"고 평했다.

자코메티에게 반한 예술가 중에는 피카소도 있었다. 괴팍하고 거만했던 피카소는 스무 살이나 어렸던 자코메티만큼은 인정했다. 그는 종종 자코메티를 찾아 자신의 작품을 비평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은 피카소는 자신이 이룬 것들을 보란 듯이 누린 인물이었다. 금세 끓어오르고, 어느 순간 폭발할지 모르는 괴물 같은 마력을 지닌 예술가였다.

자코메티는 피카소와 전혀 다른 기질을 지닌 예술가였다. 그는 명성을 얻은 후에도 묵상하듯 초라한 작업실에서 창작에 매달렸다.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에 정치적 메시지를 선명히 반영할 때, 자코메티는 순수하게 자신이 탐구하는 영역만을 파고들었다. 자코메티를 향한 피카소의 감정은 질투로 바뀐다. 피카소는 자코메티 앞에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도 험담을 늘어놨다. 끝내 둘의 교류는 끝난다. 자코메티는 피카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그저 천재에 불과했네."



◆ "나는 걸어야만 한다"

2017년 서울 예술의전당에 자코메티 작품 120여 점이 왔다. 이 작품들 가치는 약 2조1000억원이었다. 자코메티는 오늘날 피카소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가로 통한다. 그의 조각에 후한 값이 매겨진 배경엔 희소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현존하는 자코메티 작품 수는 그가 활동한 기간에 견주면 매우 적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을 부숴버리기 일쑤였다. 실패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여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전쟁 속에서 인간의 불안, 고독, 소외, 외로움, 고통을 봤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여겼고, 자신이 본 것을 조각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을 완벽히 정의하는 건 우주의 신비를 풀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에겐 나쁜 실패와 나은 실패만 있었을 뿐이었다.

1960년 완성된 '걸어가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와 함께 자코메티 대표작으로 꼽힌다. 바스스 무너질 것 같은 인간이 우뚝 서 있다. 이 불안한 존재는 큰 보폭을 그리면서 앞으로 발을 내딛는 중이다. 여러 해석이 나왔다. 누군가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고도 우뚝 일어나 앞으로 향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느꼈다. 반대로 온몸이 풍화하는 고통에 부딪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고단한 인간을 본 사람도 있다. 자코메티에게 이 조각의 의미를 물었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아마도 그의 친구였던 베케트가 '고도'의 정체를 캐묻는 세상에 했던 말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베케트는 "내가 고도가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고도'라는 괄호 안에 자신만의 답을 채워 넣었듯 '걸어가는 사람'의 보폭은 누군가에겐 희망, 누군가에겐 고행일 것이다.

자코메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숭고한 인간이든, 고독한 인간이든 모두 걷는다.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누구나 걷고, 걸을 수밖에 없다. 종착점이 어떤 풍경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그곳으로 가야 한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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