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쉬어도 돼요?"... <리틀 포레스트> 보고 궁금했다
[리뷰] 정말 쉬어도 괜찮은 사회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
[오마이뉴스 김벼리 기자]
보는 내내 눈과 귀, 마음은 좋았다. 영화 속 음식처럼 혓바닥을 자극하는 소금도, 자극적인 조미료도 치지 않아 입안이 평화로웠으며, 오늘날 지친 우리들이 사랑하는 < ASMR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소리를 가리키는 신조어),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 속 요소들이 아름다운 영상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눈과 귀의 긴장이 풀린 채 마음이 잔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자기 전 ASMR을 듣는 것 마냥 귓가를 포근하게 해주었고,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을 볼 때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의 아름다움, 식재료의 싱그러움, 자연과 닿아있는 삶에 넋 놓고 있게 만들었다.
영화관에서의 짧은 힐링
귓가가 포근했고, 자연과 맞닿은 삶은 행복이고,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의 아름다움, 식재료의 싱그러움에 넋 놓을 수 있는 것. 여기까지가 <리틀 포레스트>의 '좋았던 점'.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출출할 때 요리해 먹고, 옛 친구들과 늘 함께 할 수 있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옆에 낀 나날은 도시나 시골이나 행복할 것이다.
임용고시 실패 후 시골로 내려온 주인공 혜원(김태리)의 노동은 고모의 농사일을 돕는 게 전부이다. 나머지 시간은 밭에서 따온 식재료를 가지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들고, 문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고, 계절 내음을 맞고, 옛 친구들과 만나 마음을 나누며 보낸다.
영화 속 세 명의 인물은 우리 시대의 지치고 아픈 청춘들을 보여주는 모양새를 띤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현재에서 혜원이 도망쳐올 수 있는 곳, 현재를 버리고 재하가 돌아올 수 있는 곳 말이다. 이 '돌아갈 수 있는 곳'에는 좋은 집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땅도, 혹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밑천도 존재한다. 때문에 영화 타이틀이 이야기하듯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라는 말이 쉽다. 아니, 사실 쉬다 가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준비된 이곳에서 쭉 살아도 된다. 혜원과 재하처럼.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 혹은 영화화된 '힐링 예능'같았다.
귓가를 관통하는 티 없이 맑은 소리와 자연과 보색을 이루는 옷가지들이 만들어낸 영상의 아름다움은 원초적 감정과 감각을 건드려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 줄거리에서 내밀었던 '시험, 연애, 취업 등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지친 청춘을 위로'라는 메시지는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과 하나 되는 삶',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의 행복'을 타이틀로 가져가는 게 더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후자의 메시지는 잘 전달되었지만, 전자의 메시지는 공허한 울림이 되었다. '다 내려놓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다른 세상사람 같았으니. 그래서 영화관 안에서는 마음이 평온해 질지라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을 나가는 순간 "나도 저렇게 모든 게 준비된 곳이 있으면 이미 갔지...."하는 짧은 불평이 새어 나왔다.
차라리 마지막에 혜원이 서울에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작은 숲을 뿌리내리는 결말이었더라면 더 와 닿았을 것 같다. 지금의 결말은 현실을 벗어난 목적지가 누가 봐도 이상적인 곳이고, 그래서 당연하게 다시 그곳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나 그런 곳에 집 있고 가족 있으면 당장 내려가 살고 싶지 않을까(농촌 생활도 좋은 것만 앵글에 담아냈겠지만).
'쉬어도 된다' 전에 '쉬어도 괜찮은' 사회
물론 돌아갈 곳, 쉴 수 있는 곳이 꼭 영화 속처럼 완전한 숲,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 않을 수 있다. 마음가짐과 지향에 따라 그곳이 어디든 쉴 수 있는, 나 자신을 보살펴줄 수 있는 작은 숲이 될 수 있으니까.
아마도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쉬어도 된다'라는 메시지 이전에 '쉬어도 괜찮은' 사회인 것 같다. 취업준비에, 시험에, 사회생활에 지쳐 택한 우리의 '쉼'을 철 없는 응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마음 편히 쉬어도 굶어죽지 않는 사회라면. 쉬어도 괜찮은 사회라면.
그땐 기꺼이 쉴 것이다. 나의 작은 숲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힘들 땐 잠시 쉬어가도, 돌아가도, 도망쳐도 된다는 거,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아쉬움을 주되게 서술해서 그렇지, '리틀 포레스트'는 자극적인 소재 없이도, 못된 악역과 정의로운 주인공 없이도 맛있었다. 사계절의 흐름만으로 무염식을 맛보듯 담백함이 매력적인 영화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연호의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바로가기]
☞ 오마이뉴스 자발적 유료 구독! [10만인클럽]
[오마이뉴스 김벼리 기자]
▲ 영화 <리틀포레스트> 메인 포스터 _ |
ⓒ 영화사 진진 |
보는 내내 눈과 귀, 마음은 좋았다. 영화 속 음식처럼 혓바닥을 자극하는 소금도, 자극적인 조미료도 치지 않아 입안이 평화로웠으며, 오늘날 지친 우리들이 사랑하는 < ASMR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소리를 가리키는 신조어),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 속 요소들이 아름다운 영상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눈과 귀의 긴장이 풀린 채 마음이 잔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자기 전 ASMR을 듣는 것 마냥 귓가를 포근하게 해주었고,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을 볼 때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의 아름다움, 식재료의 싱그러움, 자연과 닿아있는 삶에 넋 놓고 있게 만들었다.
영화관에서의 짧은 힐링
▲ 영화 <리틀포레스트> 스틸 이미지 _ |
ⓒ 영화사 진진 |
귓가가 포근했고, 자연과 맞닿은 삶은 행복이고,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의 아름다움, 식재료의 싱그러움에 넋 놓을 수 있는 것. 여기까지가 <리틀 포레스트>의 '좋았던 점'.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출출할 때 요리해 먹고, 옛 친구들과 늘 함께 할 수 있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옆에 낀 나날은 도시나 시골이나 행복할 것이다.
임용고시 실패 후 시골로 내려온 주인공 혜원(김태리)의 노동은 고모의 농사일을 돕는 게 전부이다. 나머지 시간은 밭에서 따온 식재료를 가지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들고, 문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고, 계절 내음을 맞고, 옛 친구들과 만나 마음을 나누며 보낸다.
영화 속 세 명의 인물은 우리 시대의 지치고 아픈 청춘들을 보여주는 모양새를 띤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현재에서 혜원이 도망쳐올 수 있는 곳, 현재를 버리고 재하가 돌아올 수 있는 곳 말이다. 이 '돌아갈 수 있는 곳'에는 좋은 집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땅도, 혹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밑천도 존재한다. 때문에 영화 타이틀이 이야기하듯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라는 말이 쉽다. 아니, 사실 쉬다 가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준비된 이곳에서 쭉 살아도 된다. 혜원과 재하처럼.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 혹은 영화화된 '힐링 예능'같았다.
귓가를 관통하는 티 없이 맑은 소리와 자연과 보색을 이루는 옷가지들이 만들어낸 영상의 아름다움은 원초적 감정과 감각을 건드려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 줄거리에서 내밀었던 '시험, 연애, 취업 등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지친 청춘을 위로'라는 메시지는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과 하나 되는 삶',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의 행복'을 타이틀로 가져가는 게 더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후자의 메시지는 잘 전달되었지만, 전자의 메시지는 공허한 울림이 되었다. '다 내려놓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다른 세상사람 같았으니. 그래서 영화관 안에서는 마음이 평온해 질지라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을 나가는 순간 "나도 저렇게 모든 게 준비된 곳이 있으면 이미 갔지...."하는 짧은 불평이 새어 나왔다.
차라리 마지막에 혜원이 서울에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작은 숲을 뿌리내리는 결말이었더라면 더 와 닿았을 것 같다. 지금의 결말은 현실을 벗어난 목적지가 누가 봐도 이상적인 곳이고, 그래서 당연하게 다시 그곳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나 그런 곳에 집 있고 가족 있으면 당장 내려가 살고 싶지 않을까(농촌 생활도 좋은 것만 앵글에 담아냈겠지만).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이미지 _ |
ⓒ 영화사 진진 |
'쉬어도 된다' 전에 '쉬어도 괜찮은' 사회
물론 돌아갈 곳, 쉴 수 있는 곳이 꼭 영화 속처럼 완전한 숲,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 않을 수 있다. 마음가짐과 지향에 따라 그곳이 어디든 쉴 수 있는, 나 자신을 보살펴줄 수 있는 작은 숲이 될 수 있으니까.
아마도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쉬어도 된다'라는 메시지 이전에 '쉬어도 괜찮은' 사회인 것 같다. 취업준비에, 시험에, 사회생활에 지쳐 택한 우리의 '쉼'을 철 없는 응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마음 편히 쉬어도 굶어죽지 않는 사회라면. 쉬어도 괜찮은 사회라면.
그땐 기꺼이 쉴 것이다. 나의 작은 숲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힘들 땐 잠시 쉬어가도, 돌아가도, 도망쳐도 된다는 거,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아쉬움을 주되게 서술해서 그렇지, '리틀 포레스트'는 자극적인 소재 없이도, 못된 악역과 정의로운 주인공 없이도 맛있었다. 사계절의 흐름만으로 무염식을 맛보듯 담백함이 매력적인 영화였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이미지 _ |
ⓒ 영화사 진진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연호의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바로가기]
☞ 오마이뉴스 자발적 유료 구독! [10만인클럽]
기자 프로필
Copyright ⓒ 오마이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사라면?beta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버튼을 눌러주세요.
집계 기간 동안 추천을 많이 받은 기사는 네이버 자동 기사배열 영역에 추천 요소로 활용됩니다.
레이어 닫기
이 기사는 사용자 추천으로 모바일 메인 연예판에 노출된 이력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에서 선정하며 언론사 페이지(아웃링크)로 이동해 볼 수 있습니다.
광고
많이 본 TV연예 뉴스
- 1이준·곽튜브, "학폭으로 자퇴→근육 파열될 때까지 맞아" 시청자 울린 고백 [Oh!쎈 이슈]
- 2"교통사고, 이건 아니잖아"…'눈물의 여왕' 전개에 ★들도 분노+답답 [엑's 이슈]
- 3'혐한' 日 아이돌이 국내 화장품 기업 광고에?…서경덕 교수 "소비자 무시"
- 4아날로그 수사물에 자막까지…MBC, 영리하게 넓히는 시청층 [D:방송 뷰]
- 5자유 찾아 둥지 떠난다…방송사서 스튜디오로, 예능PD 대이동
- 6결별 후 "자유 원했다"…제니, 뒷말 무성한 하이브와도 '당당' [엑's 이슈]
- 7'강석우 딸' 강다은, 4세대 걸그룹급 여신 비주얼..더 섹시하게
- 8김지호, 으리으리한 자택서 몸매 가꾸기 열심..환상적인 유연성
- 9"죽겠더라, 불편한게 한둘 아냐"…이용식, 원혁♥이수민 신혼합가 결정에 절친들 '결사 반대'('조선의 사랑꾼')
- 10‘42세’ 이시영, 길거리 캐스팅 안되나요~...‘동네 예쁜누나 바닥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