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유튜브 인스타그램 아프리카TV… 떴다 ‘실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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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1.12. 오후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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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하는 新노년

유튜브 스타

72세 박막례 뷰티 동영상

시도때도 없이 “염병할…”

거침없는 솔직함으로 대박

81세 김영원·77세 이경자도

인스타그램 유명인

66세 패셔니스타 여용기

사진마다 “멋있어요” 댓글

수채화 올리는 77세 이찬재

BBC 소개되며 팔로어 30만

아프리카 방송 BJ

24시간 방송 78세 ‘오작교’

300만이 시청, 베스트BJ로




“뚜드려 패부려. 이렇게. 톡톡톡 뚜드려. 인자 눈썹을 한 번 그려볼게요. 느그들 봉께(너희들 보니까) 항상 눈썹을 길게 그리더만. 나 이상해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스펀지를 이용해 얼굴에 파운데이션 바르는 법을 설명하는 영상의 주인공은 일흔 살을 넘긴 박막례(72) 할머니다. 젊은 여성들의 ‘뷰티 동영상’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상에서 박 씨는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저렴한 로드숍 브랜드 화장품들을 이용해 경기 용인 시내에서 본 ‘요즘 것들’의 메이크업을 따라 한다.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박 씨의 찰진 ‘염병’은 젊은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뷰티 감각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보는 이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예를 들어 스펀지가 파운데이션을 과도하게 흡수하는 바람에 짜놓은 파운데이션이 모자라면 “염병할 스펀지다. 기계로 만든 거라…”라며 스펀지를 내려놓고 손으로 퍽퍽 두들기며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식이다.

할머니 유튜브 스타가 탄생하게 된 건 그의 손녀 덕분이었다. 박 씨의 손녀 김유라(28) 씨는 언제 치매에 걸릴지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 케언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만든 여행 영상이 너무 재미있어서 유튜브에 올린 것이 ‘대박’을 터뜨렸다. 김 씨는 할머니의 치매 예방을 위해 지속해서 영상을 제작해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계모임에 갈 때 메이크업’ ‘욕으로 깊은 맛을 낸 박막례 햄버거’ 등 기존 유튜버들에서 본 적 없던 이야기들을 ‘할머니’ 코드로 풀어낸, 거침없는 솔직함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박 씨의 유튜브 채널은 현재 구독자가 30만 명이 넘는다. 지난해 8월에는 팬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AP통신과 미국 보그 등 해외의 유수한 언론 매체도 박 씨를 주목한다. 박 씨는 패션 잡지 보그 인터뷰에서 “손녀에게 스타일 조언을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방부터 치웠으면 좋겠다. 손녀에게 문제는 스타일이 아니라 침실부터 치우는 것”이라고 답하면서 특유의 유쾌함을 뽐냈다. 보그는 화려한 색상과 독특한 프린트로 가득 찬 할머니의 복장을 돌체앤가바나 같은 명품 브랜드에 빗대기도 했다.

◇실버 세대 SNS 이용 활발해져 =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장년층의 SNS 이용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중장년층(4050세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4년 81.6%, 2015년 88.5%, 2016년 93.6%로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 특히 50대의 경우 2014년에는 10대보다 스마트폰 보유율이 낮았으나 2015년부터 10대(79.3%)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중장년층이 더 이상 디지털 소외 세대가 아니라는 뜻. 이에 따라 SNS 이용도 전에 비해 훨씬 활발해졌다. 4050세대 SNS 이용 비율은 2014년 33%에서 2016년 42.7%로 크게 뛰었다. 6070세대에서도 2014년 2.75%에서 2016년 6.2%로 급증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2016년 하루 평균 SNS 이용시간은 전체 응답자 기준 전년도인 2015년에 비해 소폭 감소했지만, 중장년층의 SNS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57분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57분은 20대(76분), 10대(72분) 다음으로, 30대(53분)를 앞섰다.

◇고령 SNS스타 등장 잇따라 = SNS가 중장년의 일상을 파고들면서 칠순을 넘긴 SNS 스타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SNS가 세대를 아우르는 ‘자기표현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박막례 할머니와 비슷하게 손녀와 함께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 김영원(81) 할머니는 시골의 여느 할머니처럼 푸근한 인상과 순박한 웃음을 담은 ‘영원씨TV’로 11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타이거새우·자메이카통다리구이 등을 먹는 ‘먹방(먹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김 씨는 나지막한 목소리의 특징을 살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까지 도입했다. ASMR는 조용한 일상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려줌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으로 최근 부쩍 수요가 높아진 장르다.

‘국내 최초 대가족 유튜브 채널’을 지향한다고 밝힌 ‘공대생네 가족’에서 이경자(77) 할머니의 영상은 걸쭉한 입담과 대비되는 자그마한 몸집으로 시청자들을 웃음 짓게 한다. 이 씨는 “조져뿔라(고장날라)” “처음 해보이께네 알아야 말이지”라고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내며 가족들과 함께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한 장난감 ‘액체괴물 슬라임’을 함께 만든다. 지난해 3월에 올린 해당 영상은 조회수 88만1758회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후 가족들은 이 장난감을 이 씨의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노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여용기


◇인스타그램에도 노년 세대 등장 잇따라 = 2030의 이용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SNS인 인스타그램에서도 백발의 SNS 스타들은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부산 닉우스터’ ‘남포동 꽃할배’로 불리는 여용기(66) 할아버지는 젊은이들 못지않은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5만 명이 넘는 이의 마음을 훔쳤다. 닉 우스터는 ‘세상에서 제일 옷 잘 입는 아저씨’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패션 디렉터다. 여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색 도트 무늬 셔츠에 회색 슬랙스, 빨간색 카디건에 발목이 보이도록 둥둥 걷어 올린 청바지와 스니커즈, 거울처럼 비치는 미러 선글라스와 갈색 벨트 등 20대도 소화하기 힘든 패션스타일을 매일 선보이고 있다. 여 씨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에는 여 씨가 제작한 옷의 구입 방법을 묻는 댓글은 물론 ‘존경합니다’ ‘멋있어요’라는 인스타그래머들의 댓글로 북적인다.

2030세대를 기죽이는 7080 할머니 패셔니스타들은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구불거리는 스타일의 짧은 머리, 약간 헐렁한 바지에 티셔츠로 홍대 거리에서나 볼법한 세련된 스타일을 소화하는 대만 할머니 문린(88) 씨는 국내외에서 인기가 많다. 문 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88세가 되고 좋은 건,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팔로어 수가 200만 명에 이르는 80대 할머니 베디 윙클과, ‘어드밴스드 스타일(advanced style)’이라는 패션 블로그를 운영하는 60대 아리세스 코언 등도 대표적인 SNS 패션 스타다.

멀리 타국에 떨어져 사는 손주들을 위해 매일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할아버지도 있다. 동화책 삽화 같은 따뜻한 색감의 수채화를 그리는 이찬재(77) 할아버지는 팔로어를 30만 명 이상 확보했다. 브라질 이민자인 이 씨는 2015년부터 딸 식구들의 한국행으로 손자들과 떨어지게 되면서 그리운 마음을 그림으로 풀게 됐다. 그림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과 마음의 끈을 이어 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 셈이다. 할아버지가 게재한 640여 개 사진의 주제는 가족들이 함께하던 순간의 추억들부터, 할아버지의 평범한 일상과 풍경, 손주에게 하고 싶은 말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할아버지의 사연은 BBC 등 해외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면서 지난해 팔로어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인기는 세대를 넘어 = 노년층의 이 같은 도전은 같은 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의 마음도 사로잡고 있다. 24시간 방송을 켜두며 자신의 일상을 전하는 아프리카 개인방송 진행자(BJ) ‘오작교’의 방송은 자극적인 콘텐츠로 넘쳐나는 다른 BJ와 달리 담백하고 심심한 편이다. 그런 만큼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악플’ 대신 혹시나 나빠졌을 BJ의 건강을 염려하는 ‘선플’로 가득하다. 오작교는 올해 78세를 맞은 진영수 할아버지의 방송용 예명. 노래를 부르거나 독자들의 질문에 진지하게 호응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사랑받았다. 해당 방송의 누적 시청자 수는 300만 명을 넘어섰으며 2014년에는 베스트 BJ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근 은퇴한 김철환(63) 씨는 12일 “그렇게 쉬고 싶었는데도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딱히 할 게 없었고, 그렇다 보니 뉴스나 SNS를 기웃거리게 되더라”며 “무엇이 됐든 자기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게 부럽다”고 넋두리했다. 페이스북 등 SNS 활동을 하는 게 일상의 낙이라고 밝힌 직장인 김현희(여·59) 씨는 “우리 어머니만 해도 이렇게 삶을 잘 못 즐겼던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고 좋아 보인다”며 “나도 좀 더 나이 들고 멋있어지면 SNS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옷을 살 때마다 여용기 할아버지를 포함한 여러 패션블로거 등을 참고한다는 직장인 류성헌(28) 씨는 “나이와 관계없이 진짜 ‘패셔너블’하다는 느낌이라 즐겨 본다”며 “여자친구와 ‘저렇게 늙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 “세대 간 간극 좁혀”= 전문가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젊은 네티즌들과 소통하는 이들의 활동은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히고 이해의 폭은 넓히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신(新) 노년층의 삶의 의지가 반영된 현상”이라며 “광고업계에서도 노인 모델을 적극 기용하는 등 더 이상 중장년·노년층은 소외된 세대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기표현을 하고 여론을 이끄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동시대적인 감수성이 드러나는 콘텐츠가 살아남을 뿐”이라며 “인터넷의 사용이 세대와 관계없이 보편화 되면서 콘텐츠를 올리는 이의 나이가 걸림돌이 되진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이 부모 세대와의 교감은 많아도 조부모 세대와의 간극이 있다 보니 가족에 대한 향수도 작용했을 것”이라며 “이처럼 서로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세대갈등을 줄이는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수민·조재연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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