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시장냉면집,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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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5.31. 오후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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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평양냉면 등장

최근 강남에 신생 냉면집 많아져

값싸고 부담 없는 재래시장 냉면집도 인기


역사가 오래된 재래시장엔 인심 좋은 냉면집이 많다. 값이 싸 부담도 없다. 사진은 경동시장의 ’춘천막국수’. 식당 이름에 막국수가 들어가지만, 이 집에서 파는 건 평양냉면이다.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냉면 먹기 좋은 시절이다. 평양냉면이 대중적인 미식으로 부상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터라, 평양냉면 맛을 즐길 줄 안다고 ‘평냉부심(평양냉면 자부심)’을 뽐내는 이를 봐도 피식 웃게 된다.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오른 옥류관 평양냉면의 낯선 모양새는 ‘면스플레인(면+explain. 평양냉면 먹을 때 참견하면서 지식을 과시하는 태도)’을 늘어놓으며 평양냉면을 가르치려드는 이들의 참견마저도 쏙 들어가게 했다. 서울 강북지역 전통의 노포들이 강남에 분점을 내고, 신생평양냉면 집들이 이들과 맛을 겨룬다. 비교하며 즐길거리가 늘었다. 새로 생긴 냉면집에 가는 길엔 역사적인 유행어도 곁들인다.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4.27 남북정상회담 당일 점심에는 평양냉면집마다 긴 줄을 선 풍경과 냉면 인증 사진이 에스엔에스(SNS)에 올라왔다. 아는 집 냉면이면 반갑고 모르는 집 냉면이면 설렌다. 육수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완냉’한 빈 그릇 사진에 ‘하트’와 ‘좋아요’를 찍기도 한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사진만 보고 어느 집 냉면인지 얼추 맞춘다. ‘평냉탐정’ 놀이를 위해 먼저 살필 단서는 냉면 위에 올라가는 고명이다. 백김치와 채 친 배가 보이면 ‘우래옥’, 삶은 달걀 대신 지단을 올리면 ‘봉피양’. (‘능라도’와 ‘피양옥’도 지단을 올린다.) 살얼음이 있는 육수는 ‘을밀대’, 얼음을 뺀 ‘거냉’이라도 부채꼴 배 한 조각이 보이면 ‘을밀대’다.

경기도 의정부 ‘평양면옥’과 그 계열인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은 파와 풋고추, 고춧가루를 뿌려 낸다. 이 세 냉면을 구분하는 것부터 난도가 올라간다. 달걀 반쪽을 면 위에 엎어 놓으면 을지면옥, 달걀이 육수에 잠겨 있으면 필동면옥이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길게 썬 무절임이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뿌리고 긴 무절임이 있다면 의정부 평양면옥이다.

의정부 계열과 함께 평양냉면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서울 장충동 계열은 고춧가루가 없다. 논현동 ‘평양면옥’과 ‘진미평양냉면’, ‘경평면옥’은 맛 차이는 살짝 있지만 사진으론 그 차이가 아리송하다. 얼마 전까진 냉면 그릇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서울 논현동의 스테인리스스틸 냉면 그릇은 수세미로 자주 닦아서 흠집이 많이 나 있고, 신흥 강자로 주목받는 냉면집인 진미평양냉면은 냉면 그릇이 반짝거렸으나 손님이 많이 오는 요즘은 광이 슬슬 죽어서 별 차이가 없다. 고명의 구성이 비슷한 신생냉면집 ‘경평면옥’은 면 인심이 후한 편이라 사리가 눈에 띄게 크다.

정답은 아래.


평양냉면 얘기로 시작했지만, 냉면 사랑에 ‘시장냉면’을 빼놓을 수 없다. 전통시장 안이나 그 주변에 위치한 시장 냉면은 평양냉면 붐이 일기 전부터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켜왔다. 저마다 개성이 있고 대를 이어 냉면을 파는 집도 수두룩하다. 값싼 냉면을 판다고 불친절하리라는 걱정은 그야말로 선입견이다. ‘청량리할머니냉면’을 들렀을 때의 일이다.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데 어느덧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여러 팀의 손님이 생겼다. 그중 한 팀이 빈자리가 많은데 왜 합석을 시켜주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상황이었다. 주인은 ‘합석의 원칙’을 설명했다. 1인 손님이 있는 테이블에 2인 손님을 합석시키면, 그 두 사람의 대화가 혼자 온 손님에겐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리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명한 평양냉면집에 갔다가 커플이 앉은 테이블에 합석하고 머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5000원짜리 냉면집의 원칙이 한 수 위였다.

그런가 하면 서울 강남권도 멀게는 2년 전, 짧게는 두 달 전 문 연 평양냉면집들로 강북 못지않은 냉면 전쟁터가 되고 있다. 비단 평냉족들은 냉면만 순위 매기진 않는다. 만두, 수육 등 평냉의 친구들도 수다 상에 올린다. 이번 호 ESC를 기대하시라. 지구에 유일한 ‘평냉 퀴즈’까지 담았다.






값싸고 정 많은 시장 냉면을 찾아서~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만 노포가 있는 게 아니다. 시장 안팎에 자리를 잡고 동네 주민과 함께 수십년씩 나이를 먹은 시장 냉면들. 1~2시간 줄을 서야만 맛보는 냉면집만이 명가가 아니다. 진짜 ‘냉면’은 어쩌면 ‘살아가는 얘기’가 가득한 시장에 있는지 모른다. 우리 곁의 친근한 그 맛을 찾아 ‘ESC’가 나섰다.



춘천막국수.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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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을 만난 평양냉면, 경동시장 ‘춘천막국수’


지난 15일 경동시장을 어슬렁거리다 재미있는 간판을 만났다. ‘춘천막국수’라는 이름 아래 ‘옥류관 평양냉면 40년 전통’이란 플래카드가 걸린 집이다. (지금은 플래카드를 뗀 상태다.)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의 냉면 열풍이 재래시장까지 닿았나 보다. 구수한 면수를 홀짝이며 ‘춘천의 옥류관 막국수(?)’를 기다렸다. 메밀껍질이 박혀 검은 듯 푸르스름한 면에 육수를 부어 먹는다. ‘물 막국수’로 표기되어 있는데, 면이나 육수는 평양냉면에 가깝다. 주인도 “평양식 냉면을 내는 집”이라고 말한다. 완성도야 차이가 있지만 통 메밀을 직접 갈아 제면기로 뽑은 수고를 6000원에 받아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바로 근처에는 가자미회 무침을 서비스로 주는 ‘25년 전통 함흥냉면’과 ‘한성함흥냉면막국수’가 마주 보고 있다. 80살 넘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평양냉면’도 가볼 만하다. (동대문구 고산자로38길 25/02-966-1496/물 막국수 6000원)




청량리할머니냉면.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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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매운맛, 청량리시장 ‘청량리할머니냉면’


청과물시장과 도매시장, 재래시장이 있는 청량리에는 매운 냉면으로 유명한 ‘청량리할머니냉면’과 ‘춘천냉면’이 있다. 함흥냉면을 파는 ‘다미옥’도 있다. 제일 손님이 많은 ‘할머니집’의 메뉴는 단 하나다. 양 차이만 있는, 그저 비벼 먹는 ‘냉면’이다. 앉자마자 살얼음 육수가 나오고 육수는 ‘셀프’다. 설탕이 왕창 깔린 냉면 그릇에 면과 오이채, 양념장을 올린 모양새다. 비벼보니 예상보다 덜 매웠지만, 설탕 맛이 그대로 느껴져서 실망하다가, 옆식탁의 손님처럼 얼음 육수를 부었다. 간은 심심한데 계속 당기는 묘한 감칠맛이 생겼다. 살짝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면발을 육수에 푹 적셔서 호로록 빨아올리면서 생각했다. ‘이 냉면은 육수를 부어야 완성된다!’ 얕잡아봤던 매운맛이 시차를 두고 올라오는 바람에 울면서 가게를 나섰다. (동대문구 왕산로37길 51/02-963-5362/냉면 5000원)

청량리할머니냉면 전경.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곰보냉면.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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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한 맛, 의정부제일시장 ‘곰보냉면’


의정부제일시장에서 장사한 지 40년이 넘은 ‘곰보냉면’의 비빔냉면은 채 썬 양배추를 넣고 주방에서 비벼 내오는 쫄면 스타일이다. 지난 15일 따스한 육수를 먹고 있으니 비빔냉면 한 그릇을 나눠 먹는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현업에서 은퇴한 단골로 이 식당의 전대 주인의 안부도 물을 정도로 애정이 많은 이들이었다. 시장에 터를 잡은 비빔냉면집들은 전반적으로 단맛과 신맛이 도드라진다. 곰보냉면은 그 대표격이다. 한번 먹으면 이름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이렇게 각인된 맛은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단서가 된다. 냉면을 포장해가는 손님이 많은 것도 가족에게 추억을 맛보여주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매콤한 쪽이 취향이면 바로 옆집 ‘조원냉면’도 좋다. (의정부시 태평로73번길 20/031-848-1755/물냉면 5000원)




옛날뚱보냉면.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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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참기름이 기선을 잡는 광명시장 ‘옛날뚱보냉면’


아케이드를 설치한 시장 통로를 걷다 보면 여러 냄새를 지나친다. 삶은 족발을 식히는 냄새, 건어물 가게의 고릿한 냄새, 생선 가게의 냉랭한 비린내. 반찬가게의 젓갈 냄새와 전 지지는 냄새. 비 오는 날 들른 광명시장은 이 냄새들이 훨씬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장 들머리에는 이 냄새들에 지지 않는 인상적인 냉면이 있다. ‘옛날뚱보냉면’의 비빔냉면은 첫입에 달다 싶은데 참기름 향이 훅 풍기고, 이어서 알싸한 마늘 맛이 올라온다. ‘스뎅(스테인리스스틸)’ 국그릇에 담아주는 따스한 육수는 손으로 들고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뜨끈하고 소뼈를 여러 차례 고았나 싶게 뽀얗다. 간간하고 구수한 따스한 육수 한 숟가락으로 혀를 달래고, 다시 냉면을 먹는다. 여전히 달긴 단데, 두껍게 썰어낸 무가 새콤하게 씹혀서 균형을 맞춘다. (광명시 오리로 966/02-2619-9056/비빔냉면 4500원)




부평막국수.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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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식 평양냉면 파는 부평시장역 ‘부평막국수’


부평은 지상에 부평자유시장, 부평깡시장, 부평종합시장이 있고 가장 큰 규모의 지하상가로 기네스북에 오른 부평시장 로터리 지하상가가 자리한 지역이다. 지하철 1호선 부평시장역에 내리면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더해 먹는 백령도식 냉면 ‘부평막국수’를 만날 수 있다. 간판은 막국수지만 가게 유리창엔 ‘메밀 냉(막국수)면’으로 표기되어있고 메뉴도 ‘물 막국수(물냉면)’로 냉면을 강조한다. 뽀얀 육수는 동치미 향과 단맛이 먼저 느껴지고, 그다음 순서로 진한 사골 맛이 입에 남는다. 깔깔한 면의 식감을 천천히 즐기다가 젓가락 통 옆에 놓인 까나리액젓에 도전했다. 두어 방울만 떨어뜨려 휘휘 저었다. 마른오징어 풍의 감칠맛이 생각났다. (인천 부평구 부평대로63번길 10-8/032-514-5535/물 막국수 7000원)




골목냉면.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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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골목 안 식당, 금남시장 ‘골목냉면’


할머니냉면에는 할머니가 없고, 곰보냉면에는 곰보가 없으며 뚱보냉면도 뚱보가 없지만, 금남시장 ‘골목냉면’에는 진짜 골목이 있다. 시장 입구 왼쪽으로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큼 좁은 골목길에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매운 냉면과 만둣국 주문 전화가 연신 울리는 사이로 따스한 육수를 떠다 마셨다. 1966년부터 3대째 이어온 집이라니 물냉면이 궁금했다. 해물 등으로 우린 육수에 칼칼한 양념장이 깔려 있어 잘 풀어 먹어야 한다. 이곳 냉면의 산미는 식초보다 숙성시킨 김치에 가깝다. 퍼지거나 미끄덩거리지 않는 면도 괜찮다. 다만, 기성품 면을 쓰는 여타 시장통 냉면집과 비교하면 가격이 조금 높은 편이다. (성동구 독서당로 295-7/02-2235-2540/물냉면 7000원)




송월냉면.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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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운치가 최고인 천호시장 ‘송월냉면’


천호시장 옆에는 냉면 거리가 있다. ‘송월냉면’, ‘꽃집냉면’, ‘삼거리냉면’ 등, 30년 전부터 하나둘씩 자리 잡은 냉면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여기 냉면 거리의 식당들은 겨울엔 유부를 띄운 멸치 국물을, 여름에는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준비한다. 송월냉면에 자리를 잡고 바가지로 옥수수차를 퍼다 마셨다. 이 동네 냉면들은 주로 사골국물을 육수를 써 희뿌연 것이 특징이다. 매운 양념장 때문에 새큼함 뒤에 알 듯 모를 듯 구수함이 남아 입맛을 다시게 한다. 문을 닫을 무렵 늦은 시간에 들러서일까? 그래서 정성이 덜한 것일까? 애써 살얼음을 띄운 육수가 금세 미지근해진 게 아쉬웠다. 그래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길가로 난 문을 시원하게 열어둔 덕분에 빗줄기를 감상하며 냉면을 먹는 운치는 충분히 즐겼다. (강동구 구천면로29길 26/02-484-1910/물냉면 5000원)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옥류관 & 평양냉면

평양냉면 차게 식힌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는 음식.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서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냉면(冷?)을 음력 11월의 시절음식으로 소개했다. 냉장기술이 발달한 현재는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냉면을 즐길 수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만찬메뉴로 등장하며 ‘평양냉면’과 ‘옥류관’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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