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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서 평화약속 했지만…한반도 정세 1년간 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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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선언 1년…文대통령 중재외교 다시 시험대

GP 허물고 지뢰제거 성과
이산상봉·의료협력 돋보여

하노이 회담결렬 후 급경색
비핵화·평화구축 공회전
폐기약속 동창리 되레 복원

1주년 행사도 北불참 `반쪽`
사진설명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에서 시작해 6·12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을 거쳐 9·19 평양 정상회담에서 정점을 찍었던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1년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올해 들어 북한 비핵화 의지가 약화되면서 남북 관계 또한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지난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는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양상이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이해 매일경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대북제재나 미·북 대화 상황과 연관성이 낮은 △군사적 긴장 해소 △문화·체육 교류 △산림·의료 협력 관련 합의 이행은 일정한 성과를 냈다. 2017년 115명에 불과했던 남북 간 인원 왕래도 2018년에는 7498명으로 증가했다. 2017년에는 한 차례도 없었던 남북 회담이 작년에는 36차례 열렸다. 24시간 남북 당국자들이 상주하며 대화와 협력을 상의하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문을 열었다.

3년 만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됐다. 지난해 말에는 우여곡절 끝에 경의·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현대화 착공식이 열려 반도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길을 내기 위한 첫 이정표를 세웠다.

하지만 비핵화·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합의는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2018년 내 종전 선언 채택 합의는 미·북 간 힘겨루기 속에서 불발됐다. 지난해 내내 세계 곳곳에서 종전 선언 채택을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 노력도 무위에 그쳤다.

남북 정상이 지난해 9월 해외 전문가 참관하에 폐기하기로 했던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는 되레 복원되며 합의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한 영변 핵시설 폐기 합의는 '하노이 노딜'로 공식 폐기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도 요원하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판문점선언을 통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남북 간 평화 번영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군사적 긴장 완화가 상당히 현실화한 것은 성과"라고 평가하면서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말 대 말'에서 '행동 대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하노이 회담이 결렬돼 실질적 행동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미회담 결렬로 인해 남북 간 합의 이행과 교류 협력이 (대북제재에) 영향을 받으면서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지난달 북한은 판문점선언의 상징적 성과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인원을 일방적으로 철수했다가 복귀시켰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한국을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5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 연합 공군훈련을 '배신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군사 분야 합의는 적대행위 중단과 우발적 충돌 방지,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한강 하구 공동 이용 준비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있다.

정부가 군사긴장 완화에 집중한 배경에는 유엔 회원국에 부과된 대북제재를 이행하면서 동시에 남북 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말 급부상했던 종전선언 논의도 긴장 완화 로드맵의 일부였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 북한 관계가 꼬이면서 올해 들어서는 군사긴장 완화 방안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9·19 군사합의 이후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이 말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유엔군사령부는 군사합의 이행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웨인 에어 유엔군 부사령관부(캐나다 육군 중장)는 지난 18일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찾은 기자들과 만나 "유엔사의 최우선 과업은 남북 군사합의서의 성공적 이행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비무장화, 긴장 상황이 정말 많이 낮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9·19 군사합의서를 빌미로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군의 전력 증강 계획에 딴지를 걸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은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핵심 기구인 군사공동위원회도 꾸리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NLL을 인정했는지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군사 분야 합의에 대한 적절성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의 군사대비 태세가 약화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남북 간에 적대행위 중지 등 합의사항이 대체적으로 잘 지켜졌다"면서 "비행금지구역 등 우리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면 감수할 수 있다"고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국방부 정책실장을 역임한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남북 군사합의가 발효된 작년 11월 1일 이후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된 측면도 있지만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며 "북한이 갖고 있는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재래식 군사위협의 실체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안두원 기자 / 김성훈 기자 /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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