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오전 11시쯤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은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이 시작될 즈음인 오후 12시20분쯤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들었다”며 “비무장지대(DMZ)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오래 만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기의 ‘이벤트’가 공식화된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모두 종료된 뒤 바로 DMZ로 향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2시40분쯤이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DMZ 군사분계선과 가장 가까운 오울렛초소(오울렛OP)에 들러 DMZ 상황을 조망했다. 과거 DMZ를 찾았던 미국 대통령들은 군 통수권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부분 군복을 입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이날 양복을 입었다. ‘군복’을 입을 이유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DMZ 내 미군 부대인 캠프 보니파스의 장병 식당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한미 장병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세기의 이벤트는 장병 위문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DMZ 도착 1시간이 지난 오후 3시45분쯤 양복 차림으로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와 군사분계선(MDL)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계단을 내려오기 전 북측 판문각을 나서는 김 위원장 쪽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위에서 김 위원장과 악수한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잠시 넘어가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문 대통령이 넘어갔던 그 자리였다. 양 정상은 북측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악수를 했다. 그리고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이동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남측으로 내려온 김 위원장은 자유의 집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긍정적인 사건이 있었고 아주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우리는 굉장히 긍정적인 일들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처음 회담했을 때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많은 진전을 이뤄냈고 훌륭한 우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함께 자유의 집으로 이동하다 마중 나온 문 대통령과 만났다. 남북미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설만 많았던 ‘세기의 이벤트’가 현실화한 순간이었다. 세 정상은 서로 반갑게 악수한 뒤 4분가량 환담을 했다. 3국 정상을 보호하기 위한 경호가 삼엄해 카메라 생중계도 원활히 진행되지 못할 정도였다. 이후 3국 정상은 자유의 집으로 들어갔다.
자유의 집에서는 사실상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께서 친서를 보내서 미리 사전에 합의된 만남이 아닌가 하는 말도 했다”며 “아침에 의향을 표시한 걸 보고 깜짝 놀랐고 정식으로 만날 것을 제안하신 사실을 오후 2시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하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훌륭한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하루만의 상봉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 훌륭한 관계가 남들이 예상 못 하는 그런 계속 좋은 일들을 만들면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그런 난관과 장애들을 극복하는 그런 신비로운 힘으로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도 마찬가지로 감사 말씀을 드린다”며 “목소리에 힘이 느껴질 겁니다. 이런 목소리 처음 들어보죠? 우리가 만나는 게 역사적 순간입니다”고 화답했다. 이어 “제가 SNS로 메시지 보낼 때 여기까지 안 왔으면 내가 민망했을 텐데 감사하다”며 “다시 한번 제가 또 선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에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이후 만든 관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오후 4시쯤 시작돼 50분가량 진행됐다.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도 양국 정상과 만나 김 위원장 배웅에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했고 문 대통령과는 포옹을 나눴다. 김 위원장은 오후 4시53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짤막한 기자회견을 갖고 “성공적인 것이 우리 관계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며 “지금 우리는 문 대통령, 저와 제 주변에서 이런 것들을 보여줘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노력으로 지금 앞으로 몇 주간 어떻게 일을 진행해 나갈지 봐야 할 것”이라며 북·미간 긴밀한 북핵 실무 협상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만남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평화프로세스가 큰 고개를 하나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 접근 방식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원래는 오울렛 초소 공동방문까지만 (일정이) 예정돼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한 제안에 따라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와 우리 남북 칠천만 겨레에 큰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측에서 실무협상 대표를 선정해 빠른 시일 내에 실무협상에 돌입하기로 한 것만으로도 앞으로 좋은 결과가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한다”고 기대를 표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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