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57> 창원 진해 굴암산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폭염 비켜가는 계곡 산행의 묘미

굴암산 정상에서 보이는 웅동만과 남해바다에 떠있는 섬들이 하늘과 이어지며 마치 떠다니는 구름처럼 느껴진다.


굴암산(662m)은 부산, 김해, 창원의 경계점을 안고 있는 근교산이다. 어느 등산로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김해 굴암산이라 불리기도 하고, 진해 굴암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렇게 장대하지 않으면서 잘 정비된 계곡이 있고, 그리고 근교에 있어 도시 생활에 찌는 현대인의 심신을 씻어 주기에 적당한 산이다. 굴암산은 산 아래 바위굴에 암자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오며 낙남정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이다. 성흥사 뒷산 굴암산은 팔판산의 한 봉우리에 속한다. 팔판산이라는 지명은 땅의 형국이 천귀낙지형(天龜落地形)인 명당이 있어 3정승, 8판서, 4왕비, 3현인이 나는 길지여서 이름 붙여졌다 한다. 팔판산의 남쪽 대장동 계곡을 팔판천이라 부른다. 이 계곡은 성흥사 계곡 등으로 불리고 있다. 팔판산의 동쪽 능선 끝머리에 있는 작은 계곡 끝에는 용추폭포가 있어 여름철이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부산·김해·창원 경계 다양한 등산로

계곡 품은 성흥사 뒷산 팔판산 봉우리

장유·진해 대장동 출발 원점회귀 가능

부산 신항·웅동만, 남해 풍경 조망

편백 숲길 피톤치드 삼림욕객에 인기

하산길서 만나는 김달진 시인 문학관

팔판산은 김해 장유에서 오르던, 진해 대장동 성흥사에서 오르던 둘 다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두 개의 등산로가 다 계곡을 품고 있어 알탕을 꿈꾸는 이들에게 여름 산행지로 많이 선택받기도 한다. 부산 사람은 접근이 쉬운 장유 코스를 많이 이용하기도 한다. 그 코스는 계곡을 타고 오르고 다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시원한 물소리에 잡목 우거진 계곡이어서 여름 산행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성흥사 기점 산행은 특히 성흥사 뒤쪽 기슭에 널리 분포된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삼림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원점회귀를 위해 성흥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성흥사 왼쪽 계곡 초입에서 노거수 한 그루를 만난다. 수령 230여 년 된 느티나무다. 노거수를 지나 전원주택 모양으로 잘 지어진 화장실을 지나면 처음 만나는 이정표에 ‘굴암산 2.2㎞’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곳이 바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행 들머리다. 왼쪽으로 뻗어간 길은 하산할 때 내려올 계획이다. 처음에 땀을 흘리고 나중에 계곡 그늘 길을 쉬엄쉬엄 내려오면서 계곡 찬물에 알탕도 하고 편백 숲에서 충분한 힐링을 할 생각이라면 초입을 오른쪽 정상 쪽으로 가는 등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편백 숲길은 바닥에 깔린 마대포가 걷는 촉감을 부드럽게 하고 쾌적하다. 송전탑을 지나고 편평한 안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죽염으로 염분을 보충한다. 짠 소금이 달다는 느낌이 오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니 꽤 규모가 큰 무덤이 있다. ‘이 높은 곳에까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무덤을 지나면 길은 다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정상 주 능선은 가까운 듯하면서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늘 더디 오게 마련인갑다. 애간장 타게 기다린 끝에 출발한 지 1시간 30분 만에 주 능선에 도착한다. 남녘 바다의 시원한 전망이 힘들게 오른 피로를 가셔준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200여m 가면 굴암산 정상이다. 사방을 조망하며 쉬다가 정상 인증샷을 하고 진행 방향으로 400m 지점에 있는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는 주변 나무가 일부 조망을 가리고는 있지만 상쾌한 바람과 함께 남쪽 신항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어 좋다. 흐린 날씨 탓에 뿌연 연무가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부산 신항과 웅동만이 눈앞에 펼쳐져 바다와 섬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멋진 남해 풍경이다. 도심에서 생활하며 건물에 갇혀 있던 시야가 가림막 없이 먼 데까지 볼 수 있어 오랜만에 눈이 제 기능을 다하는구나 느낀다. 전망대 뒤쪽에 장유 쪽으로 가는 하산길이 나 있다.

대장동 계곡 입구쪽이 잘 정비돼 휴가철이면 사람들이 몰려 난장을 이룬다.


눈을 한동안 호강시켜 주다가 다시 굴암산 정상 쪽으로 백 코스를 하여 화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주 능선에는 작은 봉우리들이 여럿 솟아 있다. 이정표에는 굴암산이라는 명칭보다는 팔판산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등장한다. 화산의 다른 이름이 팔판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굴암산이나 주 능선이 모두 화산 줄기이기에 팔판산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행선지의 목표 지점은 능선에 있는 헬기장이다. 주 능선에는 요소마다 전망대가 있고 바라보이는 풍경은 굴암산 정상에서 보았던 그 조망이 계속 따라붙었다. 기다리는 헬기장이 더디다. 여기인 듯하면서도 가보면 아니어서 몇 번씩이나 실망감을 안고 다시 헬기장을 향해 간다. 인내심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헬기장에 당도한다. 기다리던 일은 언젠가 이루어진다. 한 걸음씩 꾸준히 떼어놓다 보니 목적지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헬기장은 나무숲에 가려져 모습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약한 빗방울이 들었기 때문에 더 내려가서 계곡 물가에서 먹기로 작정한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가니 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는다. 경고문과 더불어 이전에 지뢰밭이었다는 표시가 붙어 있는 철조망을 오른쪽으로 끼고 가파른 내리막을 갔다.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 성흥사 2.2㎞로 표시된 이정표가 나선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길은 울창한 편백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천귀낙지형의 명당자리는 어디일까? 자꾸 지형을 살피게 된다. 찾을 수 없다. 범인의 눈에는 띄지 않는 법이라고 위안하며 편백나무 숲을 가로질러 가서 계곡 물가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땀에 젖은 몸인지 비에 젖은 몸인지, 분간이 안 간다. 물소리를 들으며 먹는 식사가 운치를 더해 준다.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은 계곡 물소리가 몸속에 찌든 노폐물을 배출시켰는지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트 향이 몸을 씻어 주었는지 피로감이 싹 가셔서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산등에 업히니 눈이 트인다

남녘 바다를 보고 가다가

섬을 찾아 섬을 보고 가다가

갈매기 날개에 눈을 얹어

다시금 뭍을 되돌아다 본다

뭍은 겹겹 산 일색이고

산에 든 티끌 한 조각이

거친 숨 몰아쉬며 하산한다

편백숲을 지나쳐 오니

티끌 몸에서도 새잎이 난다

간벌이 이뤄지지 않은 무성한 편백 사이로 하산길이 나 있다. 계곡으로 길이 나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숲길은 계곡에서 멀리 벗어난 지점으로 나를 끌고 간다. 그리고 계곡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이 있다. 식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진해구에서 설치했다는 안내판도 친절하게 세워져 있다. 물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땀을 씻겠다고 단단히 벼르던 ‘알탕’은 날아가 버렸다.

하산하면서 땀에 젖은 몸은 내리는 비에 또 젖었다. 그랬다. 애초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젖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산을 가다 보면 햇살에 맞을 때도 있고 비에 젖을 때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좋아하는 산에 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전에 섰던 갈림길에 오후에 다시 그 이정표 앞에 섰다.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고 보행기로는 1만 8800보가 찍혀 나온다.

다시 성흥사를 둘러본다. 고찰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고즈녁한 산사가 편안하게 다가온다. 성흥사는 신라 흥덕왕 8년에 무염국사가 웅동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불력으로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창건한 고찰이란다. 그동안 잦은 화재로 여러 차례 중건과 이전으로 초창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대웅전만이 창건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장동 아래쪽 마을에는 김달진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그곳에 들러 시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보고 시인에게 문학적 자양분을 준 생가를 둘러보는 즐거움도 가져 볼 수 있어 좋다.



강영환

시인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