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홍보야 우(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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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1 07:59  |  수정 2019-07-01 07:59  |  발행일 2019-07-01 제22면
[문화산책] 홍보야 우(울)지 마라!
박인성<미술작가>

요즘 홍보 문구 중에 심심치 않게 ‘지역작가’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지역 작가의 재조명’ ‘지역 작가의 발견’ 또는 ‘지역 예술가’ 등등. 괜한 의구심이 들었다. 저 문구 속에서 ‘지역’이 지칭하는 대상과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고, 자라고 그리고 거주하고 있으니 ‘지역작가’인가? 혹은 관련된 무언가를 이용하기 때문에 ‘지역작가’인가? 전자와 후자, 두 문장 속 ‘작가’는 ‘지역’을 수식하고, 지역과 영토의 경계 속에 상주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지역(시)민 또는 지역인구 등의 용어와 혼재된 듯한 ‘지역작가’라는 표현은 통계의 수치로 포함되는 통상적 ‘지역인구’ 등의 표현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작가는 지역에 거주하지만 상주하지 않으며, 지역의 특색만을 반영하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드물다. 작가는 대부분 지역, 국가 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자신만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하고 수많은 관계들을 형성하며 작품을 제작한다. 그렇기에 예술작품은 자족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뉘른베르크는 흔히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도시’로 불린다. 그가 1509년부터 1528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은 약간의 보수를 거쳐 현재 그 자리에서 미술관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그의 생가 소개문 속 그 어디에도 ‘뉘른베르크를 대표하는’ ‘뉘른베르크를 빛낸’ 등의 미사여구는 없다. 단지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 살며 작업했다 정도가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 뒤러는 당시 작품 판매를 위해 전 유럽을 여행했고, 지역적인 특성에 대해 고심하거나 표현하지 않았다. 미사여구 없이 담담히 자리하고 있는 뒤러의 생가와 그 안에 전시되어 있는 자료들은 그저 ‘예술가 뒤러’를 수식하기 위해 그곳에 있다. 그렇기에 관람객들은 예술가의 삶과 예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빛의 연금술사’ ‘색채의 마술사’ 등 미사여구 붙이기 좋아하는 한국인이다. 마치 매년 출시되어 평생토록 다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필독 권장도서 100권’처럼 너무 많은 수식과 치장은 오히려 진정한 가치마저 포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역신문으로 둘둘 포장된 예술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와 작품을 만나고자 하는 관객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실적 소개와 추상적 감상을 할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작품은 관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정의될 것이다.

그러니 홍보야 서럽게 우(울)지 마라, 관객이 있다. 박인성<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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