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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창업주 함태호 명예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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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식품외길…카레·케첩 국내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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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거액을 기부하고도 세상에 알리지 않았던 자선사업가이자 47년 동안 식품산업 외길을 걸었던 함태호 오뚜기 창업주(명예회장)가 12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오뚜기는 함 명예회장이 이날 오후 2시 37분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30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69년 풍림상사를 창업할 당시 그의 머릿속에는 '식품보국(輔國)'이라는 단어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난한 땅에서도 훌륭한 먹을거리를 우리 국민에게 어떻게 하면 선보일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는 한국에 처음으로 인스턴트 카레를 선보였고 2년 후인 1971년에는 풍림식품공업으로 사명을 바꿔 토마토 케첩을 내놨다. 이듬해 1972년에는 마요네즈를 국내 처음으로 생산·판매했다.

1973년 오뚜기식품공업에 이어 1980년 오뚜기식품으로 다시 한 번 사명이 바뀌었다. 오뚜기가 국민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계기는 1981년 4월 '3분카레'가 출시되면서부터다. 국내 최초 레토르트형 건조식품으로 출시 첫해 400만개 판매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3분짜장 등 3분 요리가 대중화됐다.

경쟁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1980년 '베스트푸드 마요네즈'로 유명한 미국 다국적 식품업체 CPC인터내셔널과 세계 최대 케첩 제조사 미국 하인즈가 동시에 한국시장에 진출했지만 함 명예회장의 오뚜기는 10년간 경쟁한 끝에 이들을 물리쳤다. 당시 정부 수입자유화 정책으로 국내 식품시장이 외국에 개방돼 많은 국내 기업이 두려움에 떨었지만 함 명예회장은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품질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아무리 외국 기업이라도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며 "오뚜기 제품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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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식품 외길만 걸었다. 먹거리만큼은 최고로 맛있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한때 매주 금요일마다 신제품 개발 시식회에 참여해 맛을 평가하고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등 제품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챙겼다. 오뚜기는 제품 개발과 생산시설 투자에는 적극적인 반면 번듯한 건물 한 채 보유하고 있지 않다가 창립 40주년을 맞은 2009년에야 지금의 서울 대치동 오뚜기센터를 매입했다. 함 명예회장에게는 건물 매입이나 재테크보다는 질 좋은 식품 개발이 훨씬 큰 가치였다.

그는 2010년 아들 함영준 오뚜기 회장(57)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겨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고인은 근검절약했지만 남에게는 아끼지 않고 베풀었다. 평소 어린이와 장애인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해 11월 315억원 상당의 개인 주식 3만주를 공익재단인 밀알복지재단에 전격 기부하기도 했다. 당시 함 명예회장의 보유주식 60만543주가 57만433주로 줄어들었다고 밝힌 공시에는 별다른 이유가 적시되지 않았지만 이후에야 줄어든 3만주 용도가 개인 기부로 밝혀졌다.

오뚜기는 19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 후원사업을 통해 지난해 7월까지 무려 3966명 환우의 심장병 수술비를 지원했다.

유족으로는 장남인 함영준 회장을 비롯해 장녀 함영림 씨(59)와 차녀 함영혜 씨(55) 등 두 딸과 손자인 함윤식 씨(25), 뮤지컬 배우로도 잘 알려진 함연지 씨(24)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서진우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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