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한국 근대사를 담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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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4   |  발행일 2019-01-04 제33면   |  수정 2019-01-04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사진작가 이재갑
20190104
지난 연말 사진인생 30년전을 독립영화 전용 오오극장 갤러리에서 가진 이재갑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는 그동안 11번의 개인전, 5권의 사진집을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베트남전쟁 파월장병 역사까지 잊히고 있는 뼈아픈 한국 근대사의 이면을 사진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그의 웃음은 초점을 벗어나고 프로필 사진도 하나같이 반듯하지 못하다. 그것은 숱한 타인의 트라우마를 체험한 탓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해. 그리고 새날이 밝았다. 모두 신년 덕담으로 들떠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사는 게 불편한 게 아니라 불편한 삶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행복감을 유보하게 하는 게 아닐까. 그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잠시 보류하는 것이리라. 그게 빛나는 ‘시민정신’ 아닌가.

문득 거울에 비친 이재갑, 그래 내 얼굴을 노려본다. 지난 30년, 난 11번의 개인 사진전, 그리고 모두 5권의 사진집을 냈다. 무지개, 솜털구름 같은 사진은 눈을 닦고 찾아봐도 없다. 항상 저승에서 발원한 서풍이 어둑하게 분다. 사진 전시회 준비로 밤샘이 길어지면 내 얼굴은 더없이 강파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햇살 들지 않는 그 감방의 어둠. 그런 막막함 같은 게 내 광대뼈에서 묻어난다. 언젠가부터 내 얼굴에선 도무지 긍정적 수식어를 발견할 수가 없다. 탄식이 되레 ‘위안’이 된다. 내 웃음은 늘 어색함으로 추락하고 만다.


사진인생 30년은 내 신념의 연장
11번의 개인 사진전·사진집 5권
우리 시대의 어둑한 역사 연대기
희망적 메시지 보다 고발 투성이
희생자 시선으로 본 불편한 기억
소수·소외자 절망 가감없이 촬영



난 다큐멘터리 전문 사진작가다. 막 쉰의 고개를 넘어섰다. 지난 연말은 내게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정말 조촐했지만 나름 내 사진인생 30년을 가슴 뭉클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회를 독립영화 전용관인 오오극장 갤러리에서 열게 된 것이다. ‘사진으로부터 오는 기억’, 그런 주제를 달았다. 침침한 갤러리에 걸린 내 사진에선 그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고발투성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진마다 막장에서 방금 캐낸 석탄에 서린 ‘어둑한 빛(暗光)’ 같은 기운이 떠다녔다. 망각되고 있고 굳이 직시하지 않으려는 우리 시대의 어둑한 역사의 연대기를 가감 삭제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마음을 보태주었다. 총괄기획한 권미강씨(문화에디터·작가)를 비롯해 한상훈(대구민예총 사무처장)·정교휘(대구민예총 간사), 디자인을 맡은 홍옥(디자인 과수원 대표), 권현준(대구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조연희(프리랜서 피디), 천수림(아트저널리스트) 등 17명이 의병처럼 힘을 모았다. 권미강은 나를 ‘사진 속 순례자’로 불렀다.

난 사진이 취미가 아니다. 사진은 내 신념의 연장이다. 사진이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기에 굳이 캡션(설명)을 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촬영 날짜와 장소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보는 사람의 몫.

메시지를 온전히 담으려면 몸을 맘으로 치환시켜야 한다. 그럼 사진가의 일상은 더없이 고달프다. 피사체와 일심동체가 된다는 것. 말은 쉽지만 실천하려면 팔자가 좀 기구해져야 된다. 관광객처럼 어떤 사물을 건성으로 보고 넘어가선 절대 피사체의 본성을 볼 수 없다. 어떤 떨림·전율 같은 게 느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멋진 구도의 문제가 아니다. 피사체가 스스로 셔터를 누르게 될 때까지 한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작품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 작업하는 사람이지 결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작품은 작업자의 주변 환경이 만든다. 한 예술이 시대와의 공감대가 클수록 작품으로 건너갈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에 어떤 진영의 흐름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냥 ‘인간’ 그 자체를 촬영한다. 인간은 사회의 연장. 아니 역사의 연장 아닌가. 인간 하나만 봐서 그 인간을 알 수 없다. 인간을 파고들면 그 사회, 그 나라의 자화상, 세상의 모든 뿌리가 다 보인다. 다 연결된 세상인 탓이다. 잘 나가는 인간이 아니라 절벽으로 절망으로 내몰린, 아무리 고함치고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사각지대의 삶. 난 지난 세월 그 현장을 기록하려 동분서주했다.

내 사진은 우리가 늘 회피하고 싶어하는 한국근대사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 나라는 완전한 국가가 아니다. 아직 독립국이 아닌 것 같다. 내 불편한 기억은 일제강점기 학살과 강제징용, 광복과 한국전쟁기 좌우 이데올로기에 의해 학살된 민초들, 그리고 미군이 남긴 혼혈아,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부끄러운 이면들에 닿아 있다. 한국·일본·베트남·중국·러시아 등에 남아 있는 치욕스러운 근대사의 그늘을 희생자의 시선에서 보여주려 한다. 뭘 고발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인식’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사진예술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소수·소외자의 절망을 가감없이 촬영해 나갔다.

당연히 내 사진은 돈이 될 수가 없다. 지인들은 날 위로하려고 툭하면 그런 말을 던진다. “재갑이 사진은 국가가 사 주어야 한다”.

지금 나는 세 아이를 둔 가장이다. 혼자면 더 좋으련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1992년. 난 그해 사진가로 걸음마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줄곧 내 집은 ‘길’이다. 길에서 오래 머물다가 잠시 집을 스쳐 지나간다. 집으로 오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길로 오기 위해 잠시 집에 오는 것 같다. 이 시대 모든 다큐 작가의 운명이다. 나보다 누구의 길을 챙겨줬기 때문에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보람’을 얻는 것이다. 그게 담보되지 않으면 내 작업은 한갓 ‘일’에 불과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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