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 아내 "남편이 샌드백 치듯 나를 때렸다"

입력
수정2019.07.09. 오전 8:35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현지언론과 인터뷰 "출산 후 다신 안 때리겠단 약속 믿었는데…"


8일 오전 전남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 다가구주택가에는 중국어·태국어 등 다국어로 쓰인 상가 간판이 줄지어 있었다. 간판은 '중국·베트남·필리핀 결혼 서류, 영주권 취득 (처리 대행)'을 홍보하고 있었다. 이곳은 베트남 출신 아내를 두 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마구 폭행해 공분(公憤)을 산 김모(36·구속)씨가 사는 마을이다. 목포 시내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1㎞ 남짓 떨어진 대불국가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산다. 중국·베트남·태국·필리핀 등에서 온 외국인이 많다. 영암에 사는 외국인 3688명 중 3207명(86%)이 삼호읍에 몰려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주민은 "산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 여성이 마을 주민의 대다수"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한국인 남성과 이주 여성이 이룬 가정도 많다고 한다.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김모씨가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 실질 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동네에서 한국인 남성이 외국인 아내를 폭행한 사건은 올해에도 수차례 일어났다. 경찰은 "남편과 이혼하면 강제 추방된다는 생각에 이주 여성들이 신고를 꺼린다"고 말했다. 알려지지 않은 폭력 사례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김씨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영장 실질 심사에 앞서 "아내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감정이 쌓였다"며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복지 회사에서 신경을 써달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전날 경찰은 보복 범죄가 우려된다며 김씨에게 특수상해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김씨와 베트남 아내 R(30)씨는 지난달 16일부터 다가구주택 4층 33㎡(10평) 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3만원이었다. 대불산단에서 일용직 용접공으로 일하는 김씨는 상습적으로 아내를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그전에 한국인 여성들과 두 번 결혼해 자녀 두 명을 뒀다. 폭행 당일인 지난 4일에는 오후 3시부터 4시간 동안 소주 2병과 캔맥주 3개를 마셨다. 귀가한 김씨는 주먹과 발, 소주병으로 아내를 오후 9시부터 3시간 동안 마구 때렸다. 아들도 낚싯대를 이용해 발바닥을 세 차례 때린 것으로 조사됐다.

아내 R씨는 이날 베트남 온라인 매체인 징(Zing)과 인터뷰에서 "남편이 샌드백 치듯 나를 때렸다"며 "이번에는 폭행이 너무 심해서 신고했다"고 말했다. R씨는 지난 2014년 조선소에서 일하다 김씨를 만났다고 했다. 이때도 김씨는 자주 폭행했다고 한다. 임신한 R씨는 고국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고 김씨와 연락을 끊었다. R씨는 "어느 날 남편이 처량한 목소리로 연락해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꼈다"며 "더는 때리지 않겠다는 말을 믿고 한국으로 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R씨가 김씨의 지속적인 폭행을 견딘 것은 대한민국 영주권을 얻고 귀화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에 최소 2년의 국내 체류가 필요하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둘은 지난 4월 혼인신고를 했다. R씨는 지난달 입국 당시 결혼이민비자(F6)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자가 있으면 1년간 국내 체류가 허가된다. 결혼 이주 여성은 국내 체류 1년 뒤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혼인의 지속 여부 등을 심사받는다. 이때 남편의 신원 보증이 필수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다시 1년 체류 기회를 얻는다. 경찰은 "이 때문에 대다수 결혼 이주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견디고 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R씨의 경우 남편의 폭행 장면이 동영상으로 입증되면서 남편의 귀책사유가 인정될 확률이 높다"며 "추방당하지 않고 체류 연장으로 국내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암=조홍복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네이버 메인에서 조선일보 받아보기]
[조선닷컴 바로가기]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