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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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한국인 남편이 두 살배기 아들 앞에서 베트남 이주여성인 부인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을 놓고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내를 주먹과 발, 소주병으로 마구 때린 남편을 엄중 처벌해달라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이번 사건은 이주 외국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인권의식의 민낯이 극단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너무나 참담하다. 강력한 처벌로 경종을 울려야 한다.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여성 920명 가운데 42.1%가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폭력 시 도움을 요청했는지에 대해선 "안 했다"는 응답이 31.7%나 됐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가 국적 취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주여성의 체류자격 연장허가 시 배우자의 신원보증을 요구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은 2011년 폐지됐다. 하지만 아직도 국적 취득이나 비자 연장, 영주권 신청 등을 할 때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하다. 이러니 배우자가 이주여성을 협박하거나 폭력을 휘둘러도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 결혼 이주민은 30만명에 달하고 이들의 약 80%는 여성이다. 하지만 이주여성 상당수는 가사노동과 자녀양육 등 가정 내 의사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학대를 당하고 있다. 다문화시대에 이주 여성들도 엄연히 우리 사회의 일원이자 이웃이다. 결코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편견과 혐오, 차별적 시선을 가져선 안 된다.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피해자들이 신고해도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시스템과 안전망을 촘촘히 정비해야 한다. 신원보증제의 경우 자녀가 초등학교 취학연령이 되면 혼인의 진정성을 인정해 이주여성이 단독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인권의식을 높이는 길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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