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경제보복' 명분 쌓고있는 日…'치킨게임' 자제하자는 韓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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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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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韓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北과 관련 있다"…자국 내에서도 부정 여론 커지자 북한 문제 끌어들여 '경제보복' 합리화하려는 듯 / 근거도 없이 북한 문제 끌어들인 건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반일 정서 누그러뜨리기 보다는 되레 이용하는 꼴 / 우리 정부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하는지 모르겠다"…전문가들 "北으로부터 유출 가능성 없다" / 日 추가 경제보복 위한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 실제 경제보복 조치 확산시 피해입는 건 대한민국…더이상 확전은 피해야 한다는 시각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가 마치 북한과 관련성이 있다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자신이 주도한 수출규제 조처를 두고 일본 안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자 억지로 북한 문제를 끌어들여 경제보복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강제징용 배상 확정판결 이후 양국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경제보복 카드까지 꺼내든 아베 총리가 근거도 없이 북한 문제를 끌어들인 것은 도가 지나치다며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확산하는 반일 정서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불난 데 부채질하는 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한국이 유엔의 대북제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부인했고, 우리 관련 기업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전문가들도 북한으로의 유출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일본이 수출규제 논리로 근거 없는 안보카드까지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규정하고 제소 방침을 천명한 우리 정부에 맞대응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자유무역에 어긋나는 규제를 강력히 제한하는 WTO도 명백한 안보전략 차원의 수출규제는 허용하고 있기 때문. 추가 경제보복을 위한 명분 쌓기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본은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우대조치를 해주는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빼는 절차에 들어갔다. 이미 규제를 발동한 3개 품목 외에 다른 품목으로 규제가 확대될 공산이 커졌다.

일본 정부의 논리가 터무니없지만, 실제 경제보복 조치가 확대되면 더 큰 손해를 입는 쪽은 우리 쪽이다. 일본의 의도가 분명해진 만큼 국제사회에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면서 한편으로는 확전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지난주 일본 맥주의 판매량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마트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발표된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일본 맥주 매출이 직전 주간의 같은 요일과 비교해 14.3% 줄었다고 8일 밝혔다.

이 기간 수입 맥주 매출은 2.9%, 국산 맥주 매출은 3.6% 신장한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들이 일본 대신 국산이나 다른 나라 맥주를 구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롯데마트의 집계에서도 같은 기간 일본 맥주의 매출이 10.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편의점 CU에서는 1∼7일 일본 맥주 매출이 직전 주 같은 요일보다 11.6% 감소했다. 이는 이 기간 전체 맥주 매출이 2.6% 늘어난 가운데 국산 맥주는 4.3%, 수입 맥주는 1.5%의 신장률을 보인 것과 대비된다.

GS25에서는 3∼7일 닷새 동안 일본 맥주 매출이 한 주 전 같은 요일보다 23.7% 감소했다. GS25에서도 전체 맥주 매출은 1.2%, 국산 맥주는 8.4% 증가했으나 일본 맥주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GS25에서는 특히 이 기간 500㎖ 대용량 캔맥주 매출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해온 아사히 캔맥주가 국산 맥주인 카스에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3∼7일 사이 대용량 캔맥주 매출에서 일본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7.7%로 직전 주 같은 요일(23.8%)보다 감소했지만, 국산 맥주 매출 비중은 26%에서 31%로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에서도 국산 맥주 매출은 3.2%, 수입 맥주는 1% 증가한 데 반해 일본 맥주는 9.2% 감소했다

일부 마트와 편의점주들은 지난주 일본산 제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지난 6일 일본산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증샷'을 올렸다.

이 점주는 가게 입구에 '저희 편의점은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고 쓴 문구를 부착했고 그간 일본 제품을 전시해온 판매대에는 '일본 제품'이라는 표시를 한 뒤 제품을 모두 철수했다.

지난 주말부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추세여서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맥주 판매량이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日 맥주 판매량 감소 미미? "이번주부터 판매량 급감할 듯"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어 규제 대상 확대를 검토하면서 국내 증시의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필수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증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반도체 등 3대 핵심소재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내놓은지 1주일 만에 한국 측이 개선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규제 대상 품목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신은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계기로 한국 측에 수출 원자재를 적절히 관리하도록 촉구할 방침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이미 규제를 강화한 대상 외에 품목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반도체와 유기 EL패널 제조 등에 쓰는 3개 핵심소재에 관해 한국 수출시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는 조치를 발표했고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경제 및 증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뉴시스에 "한국은 수출의 5%가량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전체 수입의 10.2%를 일본에서 수입한다"며 "특히 기계류, 철강, 플라스틱, 전기기기 등 다양한 품목을 수입하고 각 품목의 일본 비중은 대부분 50%를 상회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장 경제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향후 제재가 확대돼 장기화될 경우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日 수출규제 장기화, 우리 증시도 상당한 타격 입을 듯

정부는 일본 고위 인사가 한국에 수출한 화학물질의 북한 유입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대북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고위 인사가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전용될 수 있는 불소 관련 물품을 한국에 수출했는데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우리는 4대 다자 수출통제체제 참가국으로서 이에 따른 의무사항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하에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4대 다자 수출통제체제는 핵물질과 관련한 원자력공급국그룹(NSG), 재래식무기 관련 바세나르체제, 생화학무기 관련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 관련 미사일기술통제체제 등이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지난 5일 BS후지TV에 출연해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군사 용도로의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FNN(후지뉴스네트워크)는 그러면서 여당 간부를 인용해 "어느 시기 이번 불소 관련 물품에 대량 발주가 갑작스럽게 들어왔고 이후 한국 측 기업에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며 "불소 관련 물품은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행선지는 북(한)"이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일본이 한국의 강제징용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경제보복 조치에 나섰으면서도 이를 대북제재 훼손에 대한 우려 때문인 양 억지스러운 설명을 한 데 대해 황당하다는 분위기가 많지만 일단은 차분히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외교 소식통은 "하기우다 간사장 대행의 발언은 일단 정치인의 주장일뿐 책임 있는 각료의 입장은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전날 BS후지TV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의 이유로 한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 과거사 갈등을 경제 갈등으로 키운 데 이어 이를 '안보 갈등'으로까지 확전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베 '北 유입 의혹' 제기, 즉각 대응 자제하는 정부…추가 보복 가능성 등 신중 대응 분위기

하지만 정부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선 즉각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상대국 정상의 정치적 발언에 정면 대응하면 상황을 악화시킬 뿐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본이 추가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정부가 신중 대응으로 기조를 정한 배경으로 보인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해결 절차인 '중재위원회 구성'을 한국에 제안해 놓았는데, 오는 18일이 시한이다. 일각에선 이때까지 한국이 중재위 구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으면 추가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이 보수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어 21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이후에 어떻게 나올지 주시해야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외교부는 일단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최대한 관리하며 일본이 스스로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펼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보복 조치가 한일 갈등을 크게 악화시켜 미국이 강조하는 한미일 협력에도 적잖은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文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 한일 양국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일본의 무역제한조치로)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최근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전 세계 공급망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며 이같이 언급한 뒤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만 문 대통령은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발표 이후 문 대통령이 직접적인 발언으로 대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현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일본의 감정적인 '보복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맞불로 양국 간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일본의 조치로 국내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불가피성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돼 향후 한일 양국 정부의 조치가 주목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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