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사고 전면폐지’를 주장해온 진보 교육계는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결정이 ‘봐주기식 평가’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교육청이 부실한 재지정 평가로 온갖 학사비리가 드러난 자사고의 수명을 연장하는 ‘심폐소생술’을 행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이번 결과가) 조희연 교육감이 스스로 밝힌 ‘자사고 폐지는 시대정신’ 기조에 부합하는지 되묻고 싶다”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 교육감의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였다는 점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매우 부족한 결과”라고 저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국민과 약속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가 시·도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자사고 존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1조의 3조항을 삭제하고 서열화된 고교체제 개편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
전국교직원노조,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 일반고 중심의 평준화 체제 재편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보수진영도 “정치이념에 따라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국민 합의 없는 독단적 결정”이라고 성토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현재의 자사고 존폐 논란은 학교 각각의 재지정 여부를 넘어 고교체제를 정권과 교육감 성향에 따라 좌우하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며 “고교체제라는 국가 교육의 향배가 특정 정치성향에 따라 좌우되고, 정권과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학교 만들기와 없애기가 반복된다면 자사고 존폐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고교체제 구축은 국가 차원의 검토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며 “고교의 종류, 운영 등을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직접 규정하는 ‘교육법정주의’를 확립해 교육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회복하는 데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8곳 지정 취소라는 강수를 두면서 고등학교 입시 현장에도 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지정 취소가 확정되면 대입 성적이 좋은 일반고와 자사고 등이 공교롭게 강남·서초·양천구 등에 쏠리는 결과가 생긴다. 이미 ‘교육특구’로 불리는 이들 지역이 학부모들에게 ‘신흥 8학군’으로 인식되면서 교육특구의 지위가 더 공고해진다는 뜻이다.
9일 입시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낙제점을 받은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8곳 자사고 중 세화고(서초구 반포동)를 제외한 7곳은 교육특구가 아닌 곳에 자리한다. 반면 살아남은 5개교 중 중동고(강남구 일원동)와 한가람고(양천구 목동) 2곳은 교육특구에 있다. 재지정 평가 전 자사고 22곳 중 31.8%인 7곳이 교육특구에 있었는데, 재지정 평가 후에는 14곳 중 42.9%인 6곳이 교육특구에 남게 되는 셈이다.
|
서울 마포구 숭문고등학교의 모습. 뉴시스 |
|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 부속이화금란고등학교의 모습. 뉴시스 |
또 상산고 지정 취소가 확정되면 전국 단위 자사고로 이번에 살아남은 하나고와 민족사관고 등으로 성적 우수 학생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서울 서초구 세화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뉴시스 |
|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배재고등학교의 모습. 뉴시스 |
현행 고입 체제가 사실상 그대로인 상황에서 더 좁아진 자사고의 문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선행학습 사교육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지정취소 소식을 접한 자사고 재학생들은 입시에 큰 영향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교사를 비롯한 학교 관계자, 동문 등은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진 데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남혜정·이강진·이천종 기자 hjnam@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