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사고 무더기 탈락…보수도 진보도 '만족할 수 없었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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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일제히 반발 / 전교조 “비리 자사고 수명 연장 / 정부, 일반고 전환 약속 지켜야” / 교총 “국민합의 없이 결정 문제 / 고교 체제 법률로 직접 규정을” / 술렁이는 고교 입시현장 / 탈락 8곳 중 7곳이 非교육특구 / 지역·학교별 격차 심화 가능성 / ‘기사회생’ 하나고 인기 오를 듯

서울시교육청이 9일 재지정 평가대상인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13개교 가운데 8개교에 대해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보수·진보 진영 양측 모두 ‘만족할 수 없는 결과’라며 반발했다.

‘자사고 전면폐지’를 주장해온 진보 교육계는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결정이 ‘봐주기식 평가’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교육청이 부실한 재지정 평가로 온갖 학사비리가 드러난 자사고의 수명을 연장하는 ‘심폐소생술’을 행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이번 결과가) 조희연 교육감이 스스로 밝힌 ‘자사고 폐지는 시대정신’ 기조에 부합하는지 되묻고 싶다”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 교육감의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였다는 점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매우 부족한 결과”라고 저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국민과 약속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가 시·도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자사고 존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1조의 3조항을 삭제하고 서열화된 고교체제 개편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조,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 일반고 중심의 평준화 체제 재편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32개 진보 교육단체로 구성된 ‘서울교육단체협의회’와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도 이날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울시교육청의 ‘눈치보기 평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교육감의 권한으로 주어진 자사고 재지정평가로 오히려 상당수 자사고에 면죄부를 준 실망스러운 결과”라며 “오늘 지정 취소된 8개교 중 7개교는 이미 2014년에 60점 미만으로 지정취소가 예고됐던 학교로, 결국 1개교만 추가로 지정을 취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재지정평가 결과에 대해 모든 법적, 제도적 수단을 강구해 ‘봐주기 평가’ 의혹을 철저히 파헤치고 자사고 완전 폐지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진영도 “정치이념에 따라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국민 합의 없는 독단적 결정”이라고 성토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현재의 자사고 존폐 논란은 학교 각각의 재지정 여부를 넘어 고교체제를 정권과 교육감 성향에 따라 좌우하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며 “고교체제라는 국가 교육의 향배가 특정 정치성향에 따라 좌우되고, 정권과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학교 만들기와 없애기가 반복된다면 자사고 존폐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고교체제 구축은 국가 차원의 검토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며 “고교의 종류, 운영 등을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직접 규정하는 ‘교육법정주의’를 확립해 교육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회복하는 데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학부모중심 시민단체인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들은 “이번 결과는 처음부터 조희연 교육감의 뜻을 받들어 ‘무더기 폐지’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짜맞추기한 교육농단”이라며 “조 교육감은 자사고가 폐지된다고 해서 교육 불평등, 경쟁과열 등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밀어붙인 것은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 교육을 유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결정을 취소시키기 위해 조희연 교육감 퇴진 운동, 형사 고발, 유은혜 장관 낙선운동 등을 통해 유린당한 교육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도 “자사고는 1974년부터 시행된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나타난 하향 평준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했다”며 “자사고 폐지는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 ‘교육특구’ 자사고 비중 되레 커져 … “쏠림 부채질”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8곳 지정 취소라는 강수를 두면서 고등학교 입시 현장에도 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지정 취소가 확정되면 대입 성적이 좋은 일반고와 자사고 등이 공교롭게 강남·서초·양천구 등에 쏠리는 결과가 생긴다. 이미 ‘교육특구’로 불리는 이들 지역이 학부모들에게 ‘신흥 8학군’으로 인식되면서 교육특구의 지위가 더 공고해진다는 뜻이다.

9일 입시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낙제점을 받은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8곳 자사고 중 세화고(서초구 반포동)를 제외한 7곳은 교육특구가 아닌 곳에 자리한다. 반면 살아남은 5개교 중 중동고(강남구 일원동)와 한가람고(양천구 목동) 2곳은 교육특구에 있다. 재지정 평가 전 자사고 22곳 중 31.8%인 7곳이 교육특구에 있었는데, 재지정 평가 후에는 14곳 중 42.9%인 6곳이 교육특구에 남게 되는 셈이다.

서울 마포구 숭문고등학교의 모습. 뉴시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 부속이화금란고등학교의 모습. 뉴시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교육특구가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비교육특구 지역 학부모들은 가까운 자사고가 없어지면서 불안감이 가중되고, 노원구 중계동처럼 그나마 가까운 교육특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입시업체 전문가들은 교육특구에 있던 자사고의 경우 일반고로 전환돼도 지역 명문고로서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교육특구와 비교육특구 간 학교 격차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 상산고 지정 취소가 확정되면 전국 단위 자사고로 이번에 살아남은 하나고와 민족사관고 등으로 성적 우수 학생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 세화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배재고등학교의 모습. 뉴시스
이래저래 지역·일반고 간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고입을 준비할 중 3학생은 물론 내년도 자사고를 준비하던 중2 이하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서울 유일의 전국단위 자사고로 탈락 1순위에서 재지정 평가를 통과한 하나고의 인기는 올라갈 전망이다. 학생부종합전형에 강해 ‘수시형 자사고’로 불리는 하나고는 그동안에도 9개 전국단위 자사고 가운데 입학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현행 고입 체제가 사실상 그대로인 상황에서 더 좁아진 자사고의 문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선행학습 사교육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지정취소 소식을 접한 자사고 재학생들은 입시에 큰 영향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교사를 비롯한 학교 관계자, 동문 등은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진 데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남혜정·이강진·이천종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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