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영돈씨를 만난 적이 없다. 그의 방송에 딱 한 번 출연한 적이 있을 뿐이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 ‘착한 식당’ 편 1회에 평가단으로 참여했다. 〈먹거리 X파일〉이 기획 단계에 있을 때 PD와 작가가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착한 식당’ 포맷을 말하며 의견을 물었다. 나는 고발보다는 모범에 강조점을 두며 말했다. 여느 식당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개선될 일을 지적한 후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이를 따라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평가단도 신뢰할 만한 이들로 꾸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첫 회 주제가 밥이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밥이 가장 중요하니 그렇게 한 것이다. 모범이 될 착한 식당은 내가 선정해주었다. 이 식당은 반찬으로 보자면 그다지 맛있는 편이 아니다. MSG도 쓴다. 허름하여 위생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집을 선택한 까닭은 밥솥을 대여섯 개 놓고 그때그때 갓 지은 밥을 손님에게 제공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스테인리스 공기에 밥을 보관하는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개선점(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첫 회 녹화가 마무리될 즈음 김재환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JTBC에서 〈미각 스캔들〉을 하게 되었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김 감독과는 〈트루맛쇼〉에서 처음 보았고 이 다큐멘터리를 확장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이미 한 적이 있었다. 나와의 접촉을 보자면 〈미각 스캔들〉이 먼저였다. 그래서 〈먹거리 X파일〉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평가단에서 빠졌다. 대신에 자문에는 언제든 응하겠다고 했다. 이후 〈먹거리 X파일〉 작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전화를 했고 나도 정성껏 정보를 주었다. 방송 내용에 조금 미흡한 점이 보여도 사정이 있겠거니 했다.

ⓒJtbc 화면 갈무리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위)는 <먹거리 X파일> ‘착한 식당’ 편 1회에 평가단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는 고발보다는 ‘모범’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러다 메밀국수 편에서 사건이 터졌다. 작가가 전화를 해 100% 메밀로 만든 국수를 찾아 착한 식당으로 선정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 일이 의미 없음을 설명했다. “메밀은 원래 끈기와 찰기가 없어 밀가루나 전분을 조금 섞는 게 보통의 일이며, 또한 이게 더 맛있다. 전통적 방법으로 보아도 메밀국수에 녹말을 섞는다고 조선 문헌에 나온다. 메밀국수는 일본이 발달해 있는데, 여기서도 밀가루를 20~30% 섞는 게 일반적이다. 100% 메밀국수야 누구든 만들 수 있지만 맛으로 보자면 그렇게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러니 100% 메밀국수는 착한 식당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제작진은 100% 메밀국수 식당을 찾아내 ‘착하다’고 딱지를 붙였다. 밀가루 등을 섞는 메밀국수집은 사기를 치는 곳인 양 다루었다.

그때 평가단 중 한 명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는 식품공학을 전공한 일간지 음식전문 기자였으며, 일본 특파원까지 지내 메밀국수에 대해 너무나 잘 알았다. 두 전문가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방송이었다. 나는 제작진에게 항의하고 자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 후 인연을 끊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시청률이 터졌다. 착한 식당이 100% 메밀국수 방송으로 크게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식당도 대박을 쳤다. JTBC 〈미각 스캔들〉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100% 메밀국수가 의미 없음을 찬찬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오히려 〈미각 스캔들〉의 방송을 의미 없다고 보았다. 나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방송에서 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실감했다.

이후 비슷한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미각 스캔들〉에서 ‘조미료 냉면 육수’를 다루었다. 인간의 미각은 허술하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수준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먹거리 X파일〉에서도 이를 다시 다루었다. MSG를 악의 축으로 몰았다. 〈미각 스캔들〉에서 도가니 없는 도가니탕을 취재하다 닫았다. ‘진짜 도가니탕’을 찾아서 이를 확인하니 소 한 마리에 달랑 네 쪽 나오는 도가니를 두고 이게 들었네 어쩌네 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로 보였다. 소힘줄탕을 도가니탕이라 잘못 부르고 있을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먹거리 X파일〉은 ‘진짜 도가니탕’을 찾아내어 여기에 ‘착하다’는 딱지를 붙였다. 도가니탕이라는 이름의 소힘줄탕을 파는 식당들은 졸지에 나쁜 식당이 되었다.

반찬 재활용해도 ‘착한 식당’이 될 수 있다?

조작 방송이건 억지 방송이건 간에 〈먹거리 X파일〉은 시청률이 높았고, 이 시청률 덕에 이영돈씨는 ‘착하지 않은’ 식당의 죄를 사면해주는 권력까지 쥐게 되었다.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한 김치찌개집이 반찬을 재활용하다가 손님에게 걸렸다. 이는 법을 어긴 것이고 행정처분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이영돈씨는 이 식당에 친히 왕림하여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는 훈시를 하고 착한 식당 명패를 계속 달게 두었다. 법 위에 이영돈씨가 군림하게 된 것이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이 ‘착한 식당’ 명패를 달고 있다. <먹거리 X파일>이 선정한 착한 식당이 화제가 되면서 선정된 식당들도 이른바 ‘대박’을 쳤다.

나는 여러 방법으로 꾸준히 〈먹거리 X파일〉의 제작 행태를 문제 삼았다. 그러다 이래서 얻는 게 뭔가 싶어 이영돈씨가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시청자가 안 보면 이영돈씨도 사라질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릭 요구르트를 들고 음식문화 판에 돌아왔고, 〈먹거리 X파일〉 때와 유사한 일이 또 벌어졌다.

그는 국내 그릭 요구르트 식당의 메뉴판 하나 살피지 못하는 눈으로 그리스에 날아가 그릭 요구르트 운운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살피지 못하는 눈’이라 했으나 의도적으로 보지 않고 조작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이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 가게의 메뉴판을 보면 안다. 탐사보도의 1인자라는 이가 어찌 한 메뉴판에 적혀 있는 가당과 무가당 요구르트를 자신에게 필요한 하나만 찍어서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와 같이 일하는 PD와 작가, 그리고 평가단도 이 일에 대해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방송은 시청자 수준에 맞춰 제작될 수밖에 없다. 이영돈씨의 방송이 먹히는 것은 시청자의 수준이 딱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조작의 의심이 가든 억지든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면 이영돈씨는 언제든 돌아와 다시 방송을 할 것이다. 이때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나는 ‘이영돈’을 다시 볼 생각이 없다.

기자명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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