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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훈의 ‘아버지 되기’ <어린왕자>
이영진 2008-01-16

주의! TV 속 탁재훈의 현란한 개인기를 원했던 관객이라면 대략난감

종철(탁재훈)은 폴리아티스트다. 영화의 사운드를 몸으로 만들어내는 게 그의 몫. 소리를 빚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그는 휴일도 반납하고 일에만 매달린다. 여름휴가를 미룰 수 없다며 아들 은규와 함께 집을 떠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충분히 쉴 수 있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여긴다.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아내와 아들, 그러나 두 사람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죄책감 앞에서 종철의 삶도 끝없이 허물어져내린다. 매일 술에 절어사는 종철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눈앞에서 쓰러진 영웅(강수한)을 구하다 유괴범으로 몰리는데, 관상용 철갑상어를 끼고 사는 이 엉뚱한 소년과의 인연이 그의 망가진 삶에 온기를 조금씩 불어넣는다.

‘부모 되기’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는 흔히 별볼일 없는 인생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한다. 까불대는 조폭이거나 가망없는 사형수거나 심드렁한 양아치 백수거나 개차반 막장 인생이 대부분이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길이 더욱 험난하고 드라마틱하다는 관성화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어린왕자>의 종철은 좀 남다르다. 최선을 다하지만 슈퍼맨은 아니기에 불행이 찾아든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또 거부감이 덜하다. (환상의) 소리를 만들지만 (일상의) 소리를 거부하던 주인공이 고통을 맛본 뒤에 우연히 만난 불치병의 아이를 위해, (일상에서 환상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설정도 나쁘지 않다. 탁재훈이라는 걸출한 입담의 소유자를 발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초반에 웃기려드는 손쉬운 유혹을 받아들이는(유사 영화들의 전략에 익숙하다면 종철과 영웅이 친해지는 과정이 다소 심심할 수 있다) 대신 폴리아티스트라는 주인공의 생소한 직업을 적절히 활용해 (애니메이션까지 끌어들여) 종철의 ‘아버지 되기’ 스토리를 끌어간다.

다만 매 국면 변하는 인물들의 감정과 정서의 높낮이를 설득력있게 전달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복수를 하려면 내게 하라”고 종철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의 마음은 마지막 장면에서 조금 설명되긴 하지만 얼마나 전해졌을까. 외딴 별에서 지구를 찾은 ‘어린왕자’일지 모를 아이의 시점을 좀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러시아국립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최종현 감독의 데뷔작 <어린왕자>는 적어도 밉살맞고 낯간지러운 휴먼드라마는 아니라는 평가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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