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눈 멀어 ‘가짜 의사’에게 수술 떠넘기는 ‘불법 관행’

박용하 기자

②메스를 든 영업사원

[병원, 안전합니까]돈에 눈 멀어 ‘가짜 의사’에게 수술 떠넘기는 ‘불법 관행’

관절병원이나 지방 정형외과
수술 많이 해서 수익 올리려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 맡겨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

지난 5월 부산 영도구의 한 병원에서 어깨 수술을 받던 40대 남성이 숨졌다. 의사 때문이 아니었다. 수술을 맡은 의사는 사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20분도 되지 않아 수술실을 떴다. 뒤이어 그를 집도한 건 바로 수술복을 걸친 의료기기 영업사원. 의사가 면허도 없는 이에게 대리수술을 시킨 것이다. 수술 중 응급 상황이 벌어졌으나, 전문 지식이 없는 ‘가짜 의사’는 제대로 손을 쓸 수 없었다. 환자는 뇌사에 빠졌고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대리수술 문제가 불거졌다. 수술과 상관없는 전공을 가진 의사들이나 간호조무사들이 하는 대리수술도 있지만, 심지어 영업사원들이 나서서 메스를 잡기도 한다. 의료기기 사용법을 설명하기 위해 수술을 지켜본 것이 전부인 이들에게 수술대를 맡기는 것이다. 영업사원들은 어깨너머로 봤거나 인터넷에서 ‘배운’ 정도의 지식만으로 환자의 몸을 연다. 대개는 인공관절 등을 넣고 봉합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환자들은 부작용이나 사고 가능성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

조무사의 수술은 오랜 관행
3년간 710여번 수술 사례도
환자는 사고 가능성에 노출

“신문기사로 나온 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척추·관절 수술을 하는 지방의 준종합병원에서는 대리수술이 상당히 이뤄지는 편이죠.”

지난 22일 만난 의료기기 영업사원 ㄱ씨는 ‘의료계의 대리수술이 실제 얼마냐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대리수술이 워낙 많지만 이 중 일부만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라, 현장에선 안전불감증이 팽배하다고 했다. 직원들 몇 명의 입만 단속하면 문제가 새 나갈 일이 적어 지방병원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대리수술은 환자안전보다 돈을 우선하는 일부 병원장과 의사들, 의료기기 회사의 이익이 맞아 떨어진 ‘전략’이기도 하다. 지역 병원의 한 의사는 “척추·관절 전문병원이나 지방 정형외과에서는 일단 수술을 많이 해 수익을 올리려 한다”며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다보니 한 의사가 동시에 여러 수술을 맡고, 그러다 보니 대리수술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기 회사는 이런 요구를 거부하지 않는다. ㄱ씨는 “의사의 요구를 들어주면 기기를 팔 가능성이 높아지니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대리수술 요구를 받아들인다”라며 “일종의 영업전략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사원 중에는 아예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병원에선 ‘영업사원들이 수술을 더 잘하니 이들에게 시키는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ㄱ씨는 “영업사원들이 장비를 잘 아니 대리수술을 오래 하면 실력도 늘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해야 할 수술을 맡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리수술 관행에 젖지 않은 의사들이 많지만, 일부 의사들이 불법 행위로 돈을 많이 챙겨가면 이들에게 유혹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조무사들이 하는 대리수술은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됐다.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지방의 중소병원에서는 의사 가운을 걸친 간호조무사들, 속칭 ‘오더리(orderly)’가 수술하는 일이 일상이 됐을 정도다. 오더리란 의사의 지시(오더)를 받고 일하는 간호인력을 뜻한다. 올해 5월 울산의 한 병원에서는 간호조무사가 3년이 넘도록 제왕절개 봉합 수술, 요실금 수술 등을 710여 차례나 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익에 매몰돼 환자 안전을 내팽게친 오늘날 의료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범죄 저질러도 의사면허는 ‘안전’

성범죄 등 중죄 저질러도
의료 관련 없으면 자격유지
면허 취소돼도 되찾기 쉬워

의사들의 범죄도 추락한 의료윤리 실태를 보여준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강력범죄·폭력범죄·지능범죄·보건범죄·교통범죄·특별경제범죄 등으로 검찰에 송치된 의사는 총 5873명이었다. 강제추행과 강간 등 성범죄가 115명이었으며 사기가 667명, 보건 분야 범죄가 1650명이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 수는 2016년 기준으로 법조인이나 교수, 종교인 등 전문직들 중에서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록됐다.

문제는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들도 환자를 계속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진단서를 허위로 쓰거나 마약류 관리법을 위반한 경우,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하는 등 의료 분야와 관련된 범죄를 지은 경우에만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했다. 성범죄나 살인 같은 무거운 범죄를 저질러도 의료행위와 관련 없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없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2000년 이런 내용으로 법이 개정될 때 의사협회 측은 “의료 행위와 상관없는 범죄로 면허까지 취소하면 중복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료행위로 처벌받는다 해도 면허 취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법원에서 대개 ‘면허를 잃지 않을 정도’의 판결을 받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면허를 빼앗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라는 법원의 인식도 솜방망이 처벌의 한 요인인 셈이다. 최근 3년간 의사들에게 내려진 행정처분 현황을 보면 무면허 의료행위 47건 중 3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격정지 처분만 이뤄졌다. 심지어 면허가 취소돼도 되찾기가 어렵지 않다. 정부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면허를 다시 내달라’고 신청한 41건 중 40건을 허락해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의사 면허를 ‘철밥통’이라고 비판한다. 2000년 이후 의사들의 면허 규제를 강화하는 법 개정안이 7차례 나왔으나 철회되거나 폐기됐다. 의사협회가 최근 대리수술 논란을 의식해 “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영구적으로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기는 했지만, 의료행위와 무관하게 성범죄나 살인을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거나 의료인의 징계 정보를 공개하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다.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대리수술을 막자는 제안도 의협이 거부하고 있다. 의협 측은 “대리수술은 일부 의사들의 일탈일 뿐”이라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면 의사들을 위축시키는 효과만 부를 수 있다”고 반대했다.

젊은 의사들은 면허 규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20·30대 청년의사 15000명이 소속된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성범죄나 무면허 의료행위는 더욱 강하게 면허를 제재할 필요가 있다”라며 “의협은 의사들 보호를 우선하지만,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자칫 의사 전체가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내부 감시·견제 활성화해야

의사들의 일탈을 막으려면
의료계 내부 감시·견제 필요
폐쇄적인 병원 문화 바꿔야

의사들의 일탈을 막으려면 법·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의료계 내부의 감시와 견제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국내 의료계는 문제가 되는 행동이 있어도 감싸는 경향이 있다”라며 “대리수술 문제나 주사기 재사용 문제도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인 사이의 감시·견제를 활성화하려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의료계는 교수의 권위가 강하고 ‘보복’ 위협이 많아 문제를 공론화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몇몇 교수의 성추행과 폭언이 드러나 전공의와 교수들이 간담회를 여는 등 공론화를 시도했으나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교수의 보복성 폭언과 압박이 이어졌다”는 증언이 나왔고, 전공의 2명이 동반 사직을 했다.

한미정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의료계의 문제를 용감하게 지적해도, 다음날이면 병원 관계자가 ‘어느 병동의 누군지 다 안다’며 추적하는 게 현재의 분위기”라며 “대리수술 문제도 병원 눈치를 보느라 용감히 말해주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병원 문화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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