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전시회 개최
독립운동 이끈 항일민족운동 선구자 이동휘 조명
  • 김형태 기자
  • 승인 2019.06.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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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
이동휘.

[충남일보 김형태 기자]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동휘를 7월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29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이동휘는 187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고, 1890년 아버지 주선으로 하급관리 통인이 됐다. 1896년 관직을 포기하고 상경한 이동휘는 무관학교에 입학해 근대 군사기술을 습득했으며, 졸업 후에는 참위와 삼남검사관을 거쳐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임명됐다. 

일찍이 근대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이동휘는 일본 침탈이 본격화되자 군직을 사임하고 보창학교를 설립해 계몽운동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다. 계몽운동에 대한 탄압 속에서도 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를 통해 민중계몽과 실력양성에 힘썼고, 관서·관북지역에서 계몽운동을 주도하던 서북학회 임시회장을 맡아 지회와 학교설립운동을 전개하고 기관지를 발간했다. 

이동휘는 애국계몽운동 지도자로 활약했지만 일제의 주요 감시대상이 돼 수차례 체포되면서 국내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이동휘는 새로운 독립운동 방략을 전개하기 위해 북간도로 향한다.

북간도로 이주한 이동휘는 한인사회 근대교육 보급을 위해 힘쓰는 한편, 항일운동단체를 규합해 대일무력항쟁을 준비하기 위해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웠다. 또한 사회주의 수용이 성공적인 독립운동 방략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1918년 4월 최초 한인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창당에 나섰다. 한인사회당은 기관지를 발행하고 반일반전 선전활동을 전개하는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 대중화를 위해 힘썼고, 특히 군사학교를 설립하고 무장투쟁단체인 적위대를 편성해 무력항쟁을 위한 기반을 갖췄다.

1919년 이동휘는 독립운동 세력 통합을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취임했고, 1920년에는 한인사회당을 고려공산당으로 개칭하고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주도해갔다. 이후에도 적기단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관여하던 이동휘는 국제혁명운동희생자후원회(MOPR)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35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친 이동휘 공적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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