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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울산출신 독립운동가
비공개 조회수 2,890 작성일2018.06.19
과제를 울산출신 독립운동가를 알아와서 하는건데 울산출신 독립운동가 최현배선생님이랑 박상진선생님 밖에 몰라서 지식인에게 물어 봅니다 누가있나요?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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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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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선생님과 박상진선생님을 제외하고 올려드립니다.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1.서진문 (1903~1928)


일본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일제 경찰의 고문에 희생되었다.


서진문은 1926년 신내천현 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으로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지도하였다. 1927년 고려공산청년회에 입회하여 일본부에 배속되어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10월 25일 일왕의 즉위식인 소위 ‘어대전’을 앞두고 횡빈경찰서 형사들이 신내천 조선노동조합 횡빈지부를 습격하였을 때 서진문을 비롯한 한국인 항일운동 지도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서진문은 잡혀가기 전부터 심장 맥박이 105까지 올라갈 정도로 병세가 위급하였다. 이에 동지들은 서진문의 석방을 일경에 요구하였으나 이를 들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사를 불러 주지도 않았다.


서진문은 거의 빈사상태가 되어 그해 11월 16일 석방되었고, 그 휴유증으로 출옥한지 불과 이틀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거의 죽어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진문은 유치장에서도 “얼른 이군을 구원하라! 나는 벌써 살아나지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같이 검거되었던 동지들을 걱정하였다 한다.


서진문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일제 경찰의 가혹한 고문때문이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김선일 (?~1910)


울산 출신으로, 1880년(고종 17)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해 외교권을 박탈한 뒤, 1907년 7월에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다음달 1일에는 대한제국의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자 전국 각지에서 항일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다.


을사조약에 분개해 일어난 의병을 통칭 을사의병이라 하고, 1907년 정미년에 일어난 의병을 정미의병이라고 하는데, 김선일도 이 무렵에 의병에 투신해 정용기 의진에서 활약하였다.


정용기는 1906년 영남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주로 경상북도 영천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는데, 김선일은 정용기의 지휘 아래 일제의 주요 요인 및 친일 앞잡이 처단, 일제의 기관 파괴 등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0년 1월 대구공소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3월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서상봉 (1869 ~ 1920)


자 기견, 호 포송. 경상남도 울산 출생. 젊어서 목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종교활동과 사회사업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을 폈다. 그리스도교 양동교회를 설립하였으며, 3·1운동 때는 태극기 수만 장을 만들어 볏섬에 감추었다가 3월 10일을 기하여 교인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선도하였다.

그때 일본 경찰에 의하여 중상을 입고 체포되어 수감된 지 반년 만에 상처가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이듬해에 병사하였다. 목포의 만세시위를 그리스도교 중심으로 전개하는 데 큰 몫을 하였다.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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